봄이 오는 방식에 대하여.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출석 인원 과반수의 찬성이 필요한데, 과반수를 차지하여 주문으로 채택된 그 의견이 다수의견 나머지가 소수의견이다.
소수의견을 대변한 반백년 전 판결문의 말미를 옮긴다.
(…) 한 마리의 제비로서는 능히 당장에 봄을 이룩할 수 없지만 그가 전한 봄 젊은 봄은 오고야 마는 법, 소수의견을 감히 지키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 대법원 1977. 9. 28. 선고 77다1137 전원합의체 판결의 소수의견에서.
판결문을 쓴 고 민문기 전 대법관은 이후 10.26 사건에서 김재규의 내란 혐의에 대하여도 소수의견을 낸다. 범행 목적이 유신의 종식이고 국헌 문란은 증거가 없으니 자연인으로서의 박정희를 살해한 것이어서, 내란이 무죄라는 것. 직후 정년을 반 년 앞두고 법복을 벗게 된다. 당시에 김재규는 다수의견대로 내란죄를 받고 1980년 처형당했으나, 이 사건은 45년이 흐른 올해 2월에서야 재심 청구가 인용되어 새로 심판 중에 있다.
다수의견은 현실을 지배하고, 소수의견은 미래를 예고한다. 소수의견은 이름 그대로 소수의 의견에 불과하여 판결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아직은 힘이 달려서 시간이 더 필요하다. 시간이 흘러 생각들이 무르익고 과거의 그릇된 해석과 법리에 대한 성찰로 목소리를 보태면, 소수의견은 다수의견이 되어 마침내 판례를 변경해 낸다. 한 걸음 더 내딛는 것이다. 그렇게 젊은 봄이 온다. 낡은 것들을 씻어내고 만물이 촉촉하게 젖어드는, 봄.
이 봄이 지나도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오고, 겨울을 지나, 또 봄이 온다. 언제고 다시 봄이 온다. 계절이 순환하고 삶이 계속되는 한, 역사는 변주하며 다음 장으로 다음 장으로 이어진다. 궤적을 따라서 이야기들이 축적된다. 끝을 알 수 없이 자유로운 나선의 행로를 그리며*, 나의 몸 안에. 사는 것의 아름다움은 그 이야기 속에서 발견된다.
봄은 오고야 만다니,
얼마나 희망적인가.
* “나선형 곡선이란 상승하며 이어지는, 결코 원을 완성해버리지 않는 가상의 원이다.” —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219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