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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로 Jul 19. 2023

열대어 소매넣기범

1

외숙모한테서 받아온 구피 여섯 마리가 화근이었다.


하필이면 암수 정답게 세 쌍, 어항에 물을 가득 붓고 사료를 넣어줬더니 며칠밤새 스무 마리가 됐다가 또 며칠 후엔 마흔 마리 그러다 이제는 어항을 다 채울 만큼 불어난 것이다. 기하급수적인 번식력이다. 정말이지 자다가도 근심이 들게 하는 번식력이다. 우글대는 구피들은 숨이 모자라 주둥이를 수면 위로 내놓고 헐떡댄다. 헐떡대기에 산소 만들어주는 기계를 사다 붙이고 간밤의 똥을 치우고 물을 대다 계절이 바뀌었으며 어항은 금세 작아져 새로 사고 또 작아져 새로 사기를 반복한다. 어항이 커지는 대로 구피 일가는 만족하여 활개 치듯 알을 깐다. 맘 놓고 알을 까대는 통에 숫자 세기는 이미 관두었다. 관둘 수밖에 없는 연유는 수를 세는 중에도 쉬지를 않고 새로 낳기 때문이다. 이제 구피라면 신물이 나는데, 그러고 나서 생각해 보니 일전에 아침밥상에 올랐던 굴비가 예전에 사실은 구피였다는 내막은 나의 착각이 아닐 것이다. 꼬리지느러미가 호랑무늬였던 구피였던 굴비는 있는 힘껏 살을 찌우고 얼굴을 좀 고치고 기름을 발라 찜기에 쪄지고 식탁에 올라 젓가락으로 픽, 픽, 난도질당하였건만 이 구피 같은 미물들은 날이 가도록 살이 오르기는커녕 도통 스스로 돌볼 줄을 모르는 것이 걸핏하면 아픈 구피들은 증상도 병명도 치료법도 다채로워서


- 등이 굽은 구피: 가위병

- 치료제: 천일염 한 줌

- 용법: 천일염 한 줌 섞은 물에 구피를 넣어 반대 방향으로 구부렸다 펴 준다


- 배가 풍선처럼 부푼 구피: 구루병

- 치료법: 3일간 금욕하고 충분히 숙면할 것


- 지느러미가 오그라붙은 구피: 부채병

- 치료법: 없음


이고 그리하여 고칠 수 있는 구피라면 밤낮으로 돌보니 한 마리가 나으면 다른 세 마리가 아프고 그 소식을 들은 친구들도 몸져누웠으며 아픈 구피 어미가 아픈 구피 자식을 낳고 아파서 눈 뜨고 죽은 구피 삼촌의 부패가 물을 썩게 하여 그의 부모와 처자식과 이웃사촌의 사돈의 팔촌의 구피들을 아프게 했다. 구피 시체는 물에 가라앉거나 물 위에 동동 뜬다. 하얀 배를 뒤집어 깐 채로 또 어떤 때는 머리부터 동동 뜬다. 구피 장례식장이 있다기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키우던 구피가 죽어서 장례를 치르려고 하는데요.” “이런, 너무 늦었어요. 올해도 화장터가 만석이라 내년 1월까지 예약이 꽉 찬걸요.” “죽을 걸 미리 알고 내년까지 예약도 하나요?” “예약을 하지요. 구피들은 매일 수백 수천 마리씩 죽어나니까요. 내일도 내일모레도요. 미리 알고서 태어나자마자 예약을 하지요. 지금도 화장터 앞에 산채로 어항에 담긴 구피들이 줄을 섰단 말입니다.”


죽은 구피가 가라앉은 물엔 역한 내가

고여있고 죽은 구피를 뜰채로

건져 변기에 털어 물을 내린다.

변기물을 타고 내려간 故 구피 구 씨 236대손

애도할 새도 없었다.


2

신발을 치우고 창문이란 창문은 다 실리콘을 발라버리고 대문은 잠갔다 부엌과 화장실 수도꼭지마다 호스를 달아 거실 바닥에 놓고 물을 채웠다 미리 구해둔 사람용 아가미는 양 겨드랑이 아래에 달았다 순전히 구피들이 원하여 벌인 일이었다 나는 구피 일가와 동거할 작정인 것이다 헤엄을 치며 귀가를 한다 이제 온 집안이 다 어항이다


3

며칠밤을 꼴딱 샜다

놈들은 대서양의 참치 떼처럼 몰려다니며 살림살이를 다 헤집는다

가구들의 위치를 맘대로 바꾸더니 냉장고의 음식은 물론이고

내가 먹으려고 차려놓은 밥상까지 넘보기 시작하였다

빼앗기지 않으려면 밤잠도 거르고 감시해야 하는 형국이다

나는 실핏줄이 다 터진 눈으로 소리쳤다 귀가 먹은 구피들을 향하여,


사람 음식엔 손대지 않기로 했잖아!

- (…)


그날 말고도 몇 번이고 동거 수칙을 어긴 구피들을

더 이상 놓고 볼 수가 없는 나는

구피들이 낮잠 자는 오후 한 시를 틈타

가장 싹수 노란 놈들만 골라 주머니에 넣었다

주머니에 구피들을 넣고 이마트 애완동물 수족관 코너를 닌자처럼 맴돈다 주변이 안전한지

확인하면서 구피 수조에 몰래 접근할 기회만 노리던

순간


열대어 소매넣기범이다!!!!


째지는 외침에 놀라 뒤도 안 돌아보고 그대로 내달렸다 달리면서

스친 표지판을 보니 과연 이렇게 쓰여 있었다

<<열대어 넣기 절대 금지!!! 적발 시 열대어 10배로 가져가야 함. CCTV 가동 중>>


순식간에 뭔가에 발이 채였는지 걸음이 똑바로 걸어지질 않는 것이 의아하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이미 헤엄치지 않고서는 앞으로 나갈 수가 없는 것이다


4

구피들이 어디로 갔는지 말할 수 없다.

말할 수 없는 이유는 정말 모르기 때문이다.

영문을 모르는 나는

그러나 이제 완전한 자유의 몸으로 자축을 하고

밀린 잠을 사흘 내리 잤다.

거실부터 모조리 물을 뺐다.

거실 다음엔 침실 침실 다음엔 서재 서재 다음엔 부엌까지

구피들이 옮겨놓은 소파를 제자리에 놓고

이끼 낀 바닥과 벽과 집기들을 광나게 닦았다.

어항이던 전신은 온데간데없는 새 집이다.

쓸모 없어진 어항은 중고장터에 내놓았다.


[무료나눔] 일주일 쓰고 처분합니다. 무거워서 가지러 오셔야 돼요. ㅇㅇ역 근처.


- 10초 후-

구매자: (이모티콘) 똑똑.

나: 안녕하세요

구매자: 님 혹시 테트라도 키울 의향 있으신지요 있으시면 10마리 무료 분양해 드릴 건데 원하는 만큼 더 드릴 수도 있어요

나:


멋대로 번식한 지구상 열대어 인구의 절반 이상은 떠넘기기 숙명의 굴레에 있다 수건 돌리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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