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리듬도 사계절 같은 게 있다. 원래 디톡싱 주간은 시험기간마다 돌아오는데, 요즘은 막바지라 계속 시험을 쳐서 계속 유지중이다. 머리를 아주 예민하게 만들고 공부를 한다. 심신이 갈증이 나니깐 성격부터 버린다. 통 속의 뇌가 된 기분이다. 자는 방을 일부러 온통 하얗게 꾸몄다.
성격을 버리고 수면 패턴이 흉측해진다. 어떤 때는 몇 시든 간에 정확히 정각에 저절로 잠을 깬다. 그러면 카톡으로 친구들한테 자랑을 한다. 5시 정각. 6시 정각. 또 해냈다. 미친거 아냐? 알람 없이 무조건 정각에 눈이 번쩍 떠진다. 심장이 두근두근 하면서.
멋지게 정각 기상을 노리면서 밤새 꿈까지 꾼다. 그중에 맘에 드는 꿈은 날아가기 전에 샅샅이 적어둔다. 같은 꿈을 여러 번 꾸기도 한다. 그냥 기시감인지 정말 같은 꿈인지를 보려고 또 적어둔다. 나는 어떤 숲 속에 있는 커다란 산장 꿈을 몇 번 꿨다.
채도 낮은 침엽수림이다. 정오의 볕이 비치고, 날씨는 조증을 부르는 초가을처럼 투명하게 맑다. 풀냄새를 맡은 것 같다. 90년대 비디오 게임에 나올 법한 나무로 된 낡고 거대한 산장 앞에서 시작한다. 대충 벌초한 앞마당 언덕엔 본 적 없는 이들이 오르고 내리며 기웃댄다. 뭐 하러 온 거지? 왠지 기분 나빠. 외국인도 보이는데 투어를 온 손님들 같다. 꿈의 기억들은 장면을 건너뛴다. 일순간 들어간 적도 없는데 들어와 있다. 걸어서 세계 속으로 동유럽 편에서 본 것 같은 층고 높고 쿰쿰한 산장 내부에 그래피티가 지저분하게 되어 있고, 여기저기 박살 난 천장 사이로 햇빛이 쨍하게 들어온다. 나는 빈집에 빨래를 걷으러 나무 계단을 타고 위층으로 올라간다. 가위에 눌리지 않으려면 꿈속에서도 조심해서 다녀야 한다.
2층으로 올라가서 중정을 돌아 또 반 계단 올라가면 지붕이 반투명인 좁디좁은 발코니에 푸세식 화장실이랑 빨래터가 붙어 있는데, 길이 매우 좁아서 몸을 세로로 틀어야 한다. 한 번은 발을 헛디뎌 널빤지로 된 변기 아래로 떨어지다 잠을 깼다. 10초 안에 재빨리 잠들면 목숨이 하나 더 생긴다. 그 장면에서 다시 시작. 한번 배웠기 때문에 그다음엔 무사히 변기를 잘 건너서 빨래를 걷어왔다.
한 번은 이 산장이 사실은 누구의 집도 아닌 신당이었다. 아무도 그런 말 안 했는데 찰나의 느낌이 그랬다. 착한 신은 아니었던 것 같다. 갑자기 모든 걸 알 것만 같고 그럴수록 등골이 오싹해져 하던 일을 멈춘다. 여기 들어오면 안 되는 거구나. 목조 기둥이, 마룻바닥이, 다 낡아서 희뿌얘진 창문들이 불길한 눈초리로 쏘아댄다. 바깥에서 웅성대던 사람들 소리가 단숨에 멎고 진공상태로 질식하기 직전이다. 시야가 점점 좁아진다. 서둘러 나가야만 한다. 그런데 나는 왔던 문을 도저히 다시 찾을 수가 없다.
또 언제는 집안일을 다 하고 나왔는데 아까 들어간 집이 아닌 거다. 꿈이 바뀌었나? 의아해서 둘러보니 토토로의 동굴처럼 덩굴풀이랑 이끼랑 이것저것이 벽을 타고 자라나 볼품없던 외관이 운치 있어졌다. 아까는 루마니아 촌구석의 농가 같은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지유가오카의 전통찻집 같은. 나는 자연스럽게 1층에 딸린 꽃집에 들러 무슨 꽃을 한 단 샀다. 나오는 길에 문에 달린 종이 흔들리면서 짤랑짤랑 예쁜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꿈 속인데도 다 들렸다. 눈으로 들리는 종소리.
다른 버전에선 행운처럼 너른 뒤뜰을 발견했다. 아니 뜰이라기엔 좀 컸고, 뒷길이 난 숲이었던가. 사실은 불 꺼진 거대한 온실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지금 다시 기억해 보니 언덕진 수풀이 보인다. 그날의 풍경은 떠올리려다 실패할수록 진짜랑 더 멀어진다. 영화에서 본 거랑 좀 섞였나… 봤던 잔상이 흐린데 감촉은 남았다.
편안하고 더운 공기가 땅에서 올라와 얼굴까지 닿았다
고 적혀있다.
해몽 같은 건 정말 모르겠다. 가본 적도 없는 장소에 향수를 갖다니 이상한 일이다. 가끔 그 집을 생각한다.
그냥 그랬다는.
속아도 꿈결 속여도 꿈결, 아시는지?
꿈 얘기를 하면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