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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로 Aug 08. 2024

Lester Burnham

책상은 미세하게 자세를 트는데 학생들만 그것을 모르고 있다. 책상은,


집에 두고 나온 물건이 있다.

또는

고데기 불을 껐던지가 불분명하여 내내 마음이 조급한 것이다. 생각하기를 멈출 수 없다… 집에 두고 온 그 물건에 대하여… 고데기 선을 뽑고 나왔던가에 대한 기억을 곱씹으며 이 잡듯 뒤진다. 한데 골몰한 지만 오래되어 물어뜯은 손톱은 이미 다 닳아 없어졌으며 기억은


불안으로


기운다. 이내 확신이 드는 것이다. 고데기의 작은 불씨는 선반부터 녹이더니 타닥, 타닥, 하고 도화선 따라 번지듯 화장대를, 그다음은 나무로 된 옷장을, 나무로 된 옷장 안의 옷들을 하나씩 태우고선 흰 커튼과 흰 창틀과 온 사방의 벽, 벽과 벽을 타고 건너가 거실 소파와 책장까지도


활활

태워먹고


가지러 가야 할 물건까지도 다 태워먹었을지 모를 일이다. 유유히 2층으로 가는 계단을 타고 올라 침실과 베란다와 마침내 지붕 끝까지 집어삼켜 미친 듯 활개 치는 뜨겁고 시뻘건 그것을 상상한다, 상상하면서


이리저리 발광하는 불구덩이

한 무더기 재가 되어 주저앉은 집에를

너무

늦게

당도하노라면

아아, 매워!

매캐한 연기로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어서는

그만 망연자실하여 119를 부르는 것까지도 계획에 넣었다.


잿더미가 된 집을 차마 볼 자신이 없다.

자신이 없으므로 도저히 발길이 떼어지지가 않는 것이다.


라고,

책상은

그런 척을 하고 있다.

책상은

두고 온 물건이 없으며

자기 집이 없으며

그 집을 태워먹을 고데기도

가져본 적이 없어서

집에 가야 하는 척을 한다.


갈 것처럼 군다, 매일 제자리에서

발을 동동 구른다.

발을 동동 구르면 집에 가야 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오늘은 책상이 큰맘 먹고 조금 더 가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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