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의시험을 3차까지 모두 치렀다. 장하다 내 자신! 모의시험은 본시험과 마찬가지로 휴식일 제외 총 나흘간 친다. 아침 10시부터 저녁 6시까지 공법과 형사법, 민사법, 선택법(국제거래법) 네 과목 시험을 봤다. 8월까지만 해도 시험 마치고 일주일은 팡팡 놀았는데 이제부터는 정말 하루도 못 쉰다.
마지막날에 채점기준표가 올라오자마자 예의 있게 정자세로 앉아서 읽었다. 사례형 문제는 뭘 몰라서 못 쓴다기보다 쓸 말이 많은데 비중을 잘못 둬서 점수를 깎인다(물론 그냥 틀리기도 함). 득점 키워드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민사법의 경우는 210분 동안 약 1만 7천 자를 써내야 하는 무아지경 속에서 쟁점만 잘 골라내 똑똑하게 써야 한다.
민사소송법이 쟁점 잡기가 까다롭다. 기판력 문제는 재소금지, 법정소송담당, 공동소송에 실체법 쟁점까지 한꺼번에 들이닥치면 마구잡이로 쓰게 된다. 상위개념 일반론은 줄이고 문제 되는 판례의 판시사항대로 목차를 배분해야 된다. 아는데, 알고 있지만. 이번엔 작용국면에 모순금지설에 엉뚱한 썰만 달달 풀고도 최신판례의 결론을 틀려서 바보짓을 했다.
대법원 2022. 7. 28. 선고 2020다231928 판결
항소 또는 부대항소를 제기하지 않은 당사자의 청구에 관하여 항소심에서 판결 주문이 선고되지 않고 독립당사자참가소송이 그대로 확정된 경우, 취소되거나 변경되지 않은 제1심판결의 주문에 대하여 기판력이 발생하는지 여부(적극)
따라서 권리주장참가한 甲의 제1심판결은 확정되었고, 확정된 부당이득반환소송과 동일한 소송물(법률상 원인없는 사유는 공격방어방법에 지나지 않음, 차단효)인 후소는 기판력에 반하므로 기각판결.
형법의 재산죄는 쟁점이 많기 때문에 어렵다. 각론 판례를 많이 안 봐서 얄밉게 결론에서 틀렸다. 채무면탈 목적으로 살인했는데, 망자의 상속인이 있으면 어차피 언젠가는 집행당할 거라 재산상 이익 취득이 부정된다. 내가 보기엔 완전히 강도살인이었는데…. 판사들 마음을 알다가도 모르겠다.
대법원 2010. 9. 30. 선고 2010도7405 판결
채무를 면탈할 의사로 채권자를 살해하였으나 일시적으로 채권자측의 추급을 면한 것에 불과한 경우, 강도살인죄가 성립하는지 여부(소극)
잠을 줄였더니 두통이 등까지 내려오는지 어깻죽지 부근부터 쓰라린다. 밥을 어쩌다 한 번 먹으면 혈당쇼크 오듯이 한꺼번에 잠이 쏟아진다. 정말 나는 왜 이럴까? 나도 막 잘하는 애들처럼 도도한 강물과도 같이 흐르고만 싶다. 현실은 막판까지 새벽부터 도서관에 나와 공부해야 된다.
어제는 호텔 복도에 딸린 작은 극장에 관한 시를 읽었는데, 주인공(이 시에는 소설처럼 주인공이 있다)은 복도에서 무서운 일이 일어날 때마다 그 극장으로 도망을 간다. 개구멍으로 입장하는 극장에서는 공포영화만 상영한다. 영화는 항상 틀어져 있고, 1열이 비어있어서 혼자 맨 앞에 앉을 수도 있다. 주인공은 겁이 많기 때문에 공포영화를 싫어하는데 자꾸만 극장에 간다. 복도 끝 공용 화장실에서 신원불명의 혈흔을 발견하고는 겁에 질려 극장으로 달아나며, 복도를 살아내는 내내 그런 식의 이탈을 반복한다. 복도에서 험한 일을 자주 당하나 보다. 그래서 공포영화만 트는 극장은 현실로부터 개구멍으로 연결된 포근한 공포 주머니가 된다. 공포영화는 어느 지점에서 놀라게 될지 몰라서 공포고, 실제로 죽거나 다치지는 않으니 영화다. 공포 주머니 속의 공포 시뮬레이션이라니. 공포영화를 보면서 살아진다는 건 이상한 속셈인데도 말이 된다. 항상 영화를 틀어놓는 영화관도.
요즘은 열두 시까지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집에 가면 잘 준비를 하고 그 시집을 읽는 시간을 기다린다. 나는 이야기가 있는 시를 좋아하는데, 작은 이야기들은 강냉이 같아서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을 것 같고 맛도 강냉이 맛이 나기 때문이다. 채점기준표라든지, 형법 사례의 흉악범 甲乙丙丁이 실제 사람이라면 얼굴을 한 대씩 세게 패주고 싶다(인간답게 살렴!).
시험은 정말 몸에 해로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