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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새벽 Aug 27. 2018

로스쿨일기: 2학년 2학기에 들어서며

2018. 8. 26. 폭풍전야

이번학기는 무조건 매일 집에 오면 그날 일기를 쓰고 자야겠다고 다짐했다. 로스쿨 생활 절반을 돌아오니 조금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기기도 했고, 바쁜 학교 생활 속에서 내가 왜 입학했었는지 이유를 자꾸 잊어버리는 것 같기도 하고,  이 시절의 기록을 어떻게든 남기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 매일 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작한다, 로스쿨 일기! 쓰는 내용은 그날 따라 아무말이나 쓸 예정이다, 형식도 목적도 없이. 말 그대로 일기니까. 그러면, 들어가볼까? 



I. 개강하며


내일이면 개강이다. 달콤했던 방학을 뒤로하고 다시 그 격렬함 속으로 돌아가야 한다. 2학년 2학기는 조금은 여유가 있다고들 하는데 사실 그러할런지는 겪어봐야 알 일이다. 선배들은 다 지나보면 안 다고, 바빠보이지만 가장 할만한 학기라고 하는데 시간표만 보면 납득은 잘 안간다. 다만 아직 시간표는 확정되진 않았다. 기본으로 듣는 과목은 1) 형사재판실무 2) 형사특별법 3)  검사실무, 이렇게 3개고, 여기에 추가로 4) 민사집행법, 5) 요건사실론을 듣고 6) 법률토론과 스피치를 교양으로 넣고, 선택과목으로 7) 자본시장법을 넣었다. 이렇게 해서 총 18학점이다. 여기에 국제금융법을 추가해서 듣고 싶은데 현재 수강정원이 모자라서 폐강 위기다. 대안으로는 M&A 혹은 기업금융이 있다. M&A는 간지나는 반면, 기업금융은 꿀이라고 한다. M&A는 평가도 엄격할 것으로 보이는 반면 기업금융은 너그러울 것으로 보인다. 가장 듣고 싶은 것은 국제금융법이지만 못 들을 경우에는 과연 어떤 것을 선택하는 것이 맞을까? 이 고민을 이번주 초반에 해결해야 한다. 여기서 고려할 것은 내가 들어가서 소수강의(학점평가 기준이 완화된다)가 안 되는 것 때문에 다른 수강생들한테 욕먹을 수 있다는 것도 들어간다. 그런 면에서 기업금융이 제일 좋은 선택으로 보이기는 하는데 아직 마음의 결정은 못했다. 모두 월요일 수업이므로 일단 들어보고 결정해야겠다.  


II. 학기 목표 


이번 학기 목표는 다음과 같다.  

1. 형사재판실무 잘 해내기 (형재실 + 특형 + 검찰실무) 

2. 민사법 기초 다잡기 (요건사실론 + 민사집행법)

3. (기후)금융 관련 베이스 유지 (자본시장법 + 국제금융법 or 기업금융 or M&A) 

4. 모빌리티 향상 - 10월 서울 부산 자전거 종주 (중간고사 기간?) / 11월 마라톤 완주



III. 오늘의 일기 - 여름의 끝자락의 병림픽 


어제는 집에 가는 자전거를 타고 갔기에 오늘 학교 올 때도 자전거를 타고 와야 했다. 나의 작은 자전거는 그래도 타이틀이 미니스프린터라 제대로 된 로드자전거들 처럼 애초에 샤방샤방 라이딩에는 적합하지 않은 자전거다. 하지만 오늘은 기어비를 적당히 낮추어서 천천히 올 생각이었다. 운동할 겸 가져간 것이긴 하지만 집에서 가져오는 이것저것 물건들이 든 등가방을 메고 속도경쟁을 할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주말 한강 자전거길을 지나오는 만큼 병림픽의 가능성은 언제나 있을 것임은 예상하기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문제는 잠실역을 지나 잠실대교 남단을 진입하는 부근에서 발생했다. 잠실역에서 이어지는 자전거길에서 딱 봐도 운동을 많이 할 것 처럼 생긴 아저씨가 로드자전거로 나를 지나쳐 갔다. 자전거길에 서 있는 보행자들을 지날 때에는 ‘지나가겠습니다’라고 외치는 것이 언뜻 매너가 좋아보이기도 했지만 왠지 모르게 ‘얼른 비켜라 보행자들아’로 들렸다. 그러나 느낌은 느낌일 뿐 그럴리 없지 않은가? 하지만 사실 슬픈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 오늘의 병림픽 당첨.  


아저씨는 뒤에서 보기에도 떡 벌어진 등에 발달한 광배근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전거는 탄지 오래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첫번째 힌트는 잠실대교 진입 시 까지의 짧은 언덕에서 주어졌다. 업힐에서는 라이더의 출력에 따라서 적당히 가벼운 기어를 써야 한다. 자신의 근력을 과신해서 무거운 기어비를 넣어봤자 케이던스만 떨어지고 속도도 나지 않는다. 그런데 보행자들로 북적이는 자전거길에서도 감속하길 꺼려하는 것 같던 이 아저씨는 언덕을 사뭇 천천히 오르고 있었다. 물론 자기 페이스 유지하고 샤방샤방 달리는 라이더들도 많지만 이 아저씨는 아무리 봐도 피와 살이 튀기게 타는 것 외에는 다른 라이딩 스타일이라고는 모를 것 같은 포스를 풍겼기에 조금은 의아했다. 그래서 사실 이 때 언덕에서 추월하지 않고 싶었다. 기본적으로 여러 종류의 운동을 좋아하고 잘 하는 사람들은 사소한데서도 경쟁을 하는 경향이 있는데 내가 언덕에서 추월이라도 할라치면 만약 진행방향이 같으면 왠지 지속적으로 문제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워낙 천천히 오르고 있어서 추월이 불가피했다. 언덕을 오를 때 속도를 늦추면 오히려 힘이 더 들 수 있어서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고 오르는게 가장 편한데, 추월을 피하려면 속도를 너무 떨어뜨려야 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운동왕처럼 생긴 아저씨의 자전거를 언덕에서 추월할 수 밖에 없었다. 여기서 하나 고백할 것이 있다. 나는 남산 업힐이 14분대인 업힐 무능아다. 걸어가는 것이 더 빠를 정도의 자전거 업힐 스피드를 가지고 있다. 이런 나보다 언덕 오르기가 느리다는 것은 아직 자전거를 효율적으로 탈 줄 모른다는 뜻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운동왕의 자존심이 건드려지는 순간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아저씨를 지나쳐오면서 나는 공격적인 추월로 보이지 않기 위해서 노력했다. 왜냐면 분명히 추격해 올 것 같아서. 스트레스 없이 최대한 샤방하고 여유롭게 가려던 계획이 틀어지지 않기 위해서. 처음에는 이게 먹힌 줄 알았다. 아저씨가 내가 지나쳐갔는데 쫓아오지 않아서. 그런데 잠실대교를 건너고 있는 구간에서 기어코 아저씨는 쫓아와서 추월하고 말았다. 다리에서 속도를 내야 하나 천천히 갈까 고민하던 찰나에 아저씨가 오더니 뒤에서 지나가겠습니다 큰 소리를 내더니... 안 지나간다! 내가 분명히 그럴 거 같아서 미리 길 오른편으로 붙어서 가고 있었고 아무리 봐도 자전거가 지나갈 길이 충분한데 지나가지를 않는다. 이미 나는 빨리 달리지 않고 있었는데 지나가지를 않길래 브레이크를 잡아 감속했더니 그제서야 지나간다. 감속 후 가속은 더 힘이 드는 법. 살짝 싫었지만 안전한 추월을 위해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일부러 거리를 두고 쫓아갔다. 쓸데없는 경쟁은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불행히도 잠실대교 북단에서 내려가서 한강 자전거길로 진입하였는데 아저씨도 그 길로 들어섰다. 잠실대교 북단에서 한강 자전거길 진입로는 꽤 가파른 내리막인데 이상하게 내리막에서는 아저씨는 또 속력을 많이 내지는 않는다. 안전한 습관일 수도 있는데 나는 기어를 무겁게 하고 밟았으므로 결국 곧 아저씨 뒤에 따라 붙게 되었다. 이 구간이 속도를 붙일 수 있어 신나는 구간이므로 나는 여기서 천천히 가고 싶지 않았다. 이 구간을 벗어나면 자전거와 한강을 찾은 사람들이 많아져서 어차피 속도를 내기 힘들다. 여기서 잠깐 속도를 줄이고 나머지는 좀 천천히 갈 생각이었는데 아저씨가 앞에서 적당한 속도로만 달린다. 추월하고 싶지 않았다. 서로 추월을 거듭하는 순간 병림픽은 확정적으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내리막에 이은 평지 주행 후 아저씨는 다시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했고 나는 눈물을 머금고 추월을 했다. 그렇게 우리의 인연은 끝인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저씨는 본격 경쟁심을 가지고 결국 쫓아왔고 보란듯이 나를 추월해갔다. 나는 쫓아갈 생각이 없었으므로 그래도 여기서 이 잠깐의 바보 같음의 끝을 본 것 같았지만 불행히도 아저씨는 자전거를 힘빼고 효율적으로 타는 법을 아직 몰랐다. 무리한 가속과 속도 유지로 힘이 빠진 아저씨는 얼마 안가 나와의 거리가 좁혀지고 있었다. 추월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나도 다시 자전거 탄지 얼마 되지 않아 가속한 속도를 유지할 능력도 없어서 다시 속도를 줄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 옆을 복장 다 갖추고 나오신 라이더들이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바짝은 아니지만 적당히 들러붙어서 따라갔다. 떼방의 분위기를 살짝 내면서. 앞의 라이더가 일정한 속도로 페이스 잡아주며 달리면 그것 만큼 편한 라이딩이 사실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행렬을 따라가다 보니 금방 그 아저씨가 보였다. 아... 아저씨는 딱 봐도 경력 많은 이 자전거 행렬이 자신을 지나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음이 분명해 보였다. 기어코 자기가 이들을 앞질러 선두에 스고 마는 것이었다. 나중에 보니 그 자전거 대열도 그저 라이딩 하다 형성된 것이고 서로 아는 사람들은 아닌 것 같았다. 그냥 따라 타면 속도도 나오고 힘들지도 않을텐데 굳이 앞서가다니... 하지만 나도 그 행렬에 껴서 따라가고 있는 터라 피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쯤되자 나도 한 번 제껴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는 다시 한번 무리한 가속 이후 힘이 빠져 속도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경력 많은 라이더 그룹은 아저씨를 지나쳐갔다. 나는 아저씨 꽁무니까지 갔지만 출혈경쟁을 해볼까 말까 고민하고 있던 찰나 학교 쪽으로 빠지는 길인 동호대교에 다달아서 그대로 우측으로 나오면서 아침의 잠깐의 바보들의 달리기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그래서 오늘도, 요시, 그란도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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