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통역장교 수기 07 : 군인화단계(5) 화생방

과 소화방수

by 김새벽

0. 방독면 받아오기


장교교육대대에는 방독면이 없었다. 우리는 방독면을 해사 생도들에게 빌려야 했다. 방독면을 받으러 언덕 하나 넘어 있는 생도대에 갔던 기억이 있다. 아마 주말이었을 것이다. 그때 우리를 인솔했던 것은 P모 훈련관이었는데 꼬장꼬장한 성격에 후보생들을 제일 피곤하게 굴리던 사람이라 후보생들에게 인기가 많지는 않았다. 그의 인솔하에 방독면을 받으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옆에 다른 일로 기다리고 있던 생도들에게 그가 말을 걸었다.

"너네 3km 제일 잘 나오는 애 얼마나 뛰어?"

대충 답은 10분 초중반대였던 거 같다. 그에 P훈련관이 답했다.

"얘는 3km 9분대 나와."

그가 가리킨 동기는 근대5종 국가대표 선수였다.

그리고는 다른 동기를 가르키며 말을 이어 갔다.

"얘 학교 어디 나왔을 거 같아."

갑자기 질문을 받은 생도들은 서울대니 뭐니 답을 했다.

"옥스포드야."

그러고는 이렇게 대화를 마쳤다.

"이게 OCS야."


타군도 마찬가지지만 해군도 임관 출신 중에서 사관학교 출신들이 아무래도 주류고 OCS나 소수의 ROTC는 입지란 것이 없을 때였다. 지금은 조금 달라졌다고 하는데 그때만 해도 그런 것이 있을 때였다. P훈련관 역시 OCS 출신이었다. 잘못한 것 없이 갑자기 당한 생도들 입장에서는 벙쪘겠지만, 조금 웃겼던 에피소드로 기억에 남는다.





1. 나의 첫 과실보고


가입소를 포함하면 4주차, 정식 입교 후에는 3주차의 월요일은 화생방 훈련으로 시작했다. 화생방 교장은 장교교육대대가 위치한 해사 교정을 벗어나 진해 기지 안에 있었다. 화생방 교장 까지는 버스로 이동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CS 가스를 들이마시게 해서 눈코입 가릴 것 없이 눈물 콧물 침 줄줄 흐르게 한다는 악명 높은 화생방 교육에 대해서 모두들 긴장해 있었다. 월요일 화생방 교장에서 가스실 실습을 하기에 앞서 그 전주부터 방독면 착용을 연습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9초 안에 쓰라는 것이었는데 처음에는 생각보다 손에 익지 않아서 9초 안에 들어오는 것이 어려웠다. 그런데 동기들 중에는 운동 신경이 타고난 것인지 별다른 연습 없이도 9초 언더로 들어오는 친구들이 있었다. 평상시 엄청 성실하게 보이지 않았던 친구였는데, 물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방독명 착용을 마치는 것을 보고 다들 놀라했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연습을 했다지만 9초 컷은 간당간당했고 우리는 긴장된 마음으로 화생방 교장을 향했다.


하지만 여기까지 이 수기를 읽은 분들은 기억하실텐데 우리 동기 들 중에는 해사 생도대장 아들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우리의 화생방 훈련은 강도가 높지 않았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기억한다. 왜냐면 그 안에서 방독면 벗고 노래를 부르거나 팔벌려 뛰기를 하거나 어떻게든 CS 가스를 깊이 흡입시키려고 하는 조치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안에서 방독면 필터를 분리했다가 다시 끼우기를 몇번 해보았을 뿐이다. 물론 그렇게 간단한 것 마저도 긴장을 하고 있으니 잘 안되기는 했다. 필터를 뺐다가 숨을 참고 대기하다가 다시 필터를 끼라고 하면 돌려 결합하면 그만이었는데, 그것도 필터가 헛돌면서 안 끼워지면 심박수가 치솟고 확 긴장이 되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크게 고생한 것 없이 훈련을 마쳤다. 내가 밖에서 들은 것과 너무 달라서 의아했다. 나는 지금도 우리 기수는 화생방실에서 가스를 상당히 낮은 농도로 해 놓았었던 것이라고 의심한다. 다른 기수들 이야기를 들어보아도 우리와는 달랐던 것 같다.


장교교육대대 2개 중대 총 6개 소대 약 250명 인원이 모두 실습을 마치고 나와야 했으므로 생각보다 온종일이 걸렸다. 하지만 모든 것을 무사히 마치고 장교대로 복귀하기 위해서 버스를 타기 위해 교장을 빠져나와 집결하고 있었는데, 대열을 따라 뛰던 도중에 내 방독면 주머니 잠금이 풀리면서 방독면이 튕겨져 나갔다. 하필이면 그 순간을 P훈련관이 보고 있었고 그는 바로 나를 불러세웠다. 이제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보급품 취급 불량'이 내 죄목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과실 보고는 통상 그것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지적을 당하는 순간 얼을 타고 제대로 대답을 못하면 이어서 '보고태도 불량'이나 '복명복창 불량'이 패키지로 따라 붙는다. 그때까지는 비교적 지적 받는 거 없이 잘 훈련받고 있던 터라 당혹감이 컸다. 과실보고는 해 본 적이 없었고 할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더 큰 비극은 뒤에 기다리고 있었다.) 어버버 하는 순간 나는 세건의 과실이 적립되어버렸다. 과실보고를 하게 되면 주말 중에 추가 과업을 하거나 동기들에게 주어지는 혜택 같은 것에서 소외되게 된다. 무엇보다 방독면 주머니 시건을 제대로 못해서 사단을 냈다는 것과 지적 받고 어버버 거려서 추가로 과실을 받았다는게 분했다. 그러나 업질러진 물이었다.



2. 소화방수

그 다음날, 쓰린 마음을 진정시키고 맞은 다음 과업은 소화 및 방수 훈련이었다. 배에서 제일 크게 위험이 되는 것은 달아날 곳도 없는 쇳덩이 안에서 불이 나거나 선체에 구멍(파공)이 뚫려 물이 쏟아져들어오는 것이었다. 따라서 생존을 위해서는 꼭 배워야 하는 것들이었다. 소화방수 교육도 장교대에서는 할 수 없기에 진해기지 안의 훈련 시설로 이동해서 진행을 했다. 소화와 방수는 각각 완전히 다른 과목이었으므로 중대 단위로 나누어서 이론 교육과 실습을 진행했는데 이론 및 시범은 모두들 참여해서 교육을 받았지만 250명 인원을 하루 안에 다 교육시킬수가 없어서 실습은 절반은 소화 훈련, 절반은 방수 훈련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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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가 4월 초였다. 대기하고 있자니 따뜻해진 날씨에 졸음이 쏟아졌다. 하지만 졸았다가는 복귀해서 털릴 것이 뻔했고, 또 밖에 교육 받으러 나와서 꾸벅꾸벅 졸면서 나쁜 인상을 남기고 싶지는 않아서 이를 악물고 졸음을 참았던 것 같다.


나는 실습은 소화 훈련을 받았는데, 방화복을 입고 양압식 공기호흡기를 차고 소화호스를 손에 잡고 불길이 치솟는 소화 훈련장에 들어가서 화염을 제압해야 했다. 그래서 무언가 장비를 차고 불길 속에 들어가본다는 것 자체에 심장이 두근거렸는데 실제로는 호스 앞단에 선 인원들만 불길이 치솟는 소화 훈련장 안에까지 들어가서 화염에 호스로 분무를 해볼 수 있었고 나머지는 그 입구 뒤에서 호스를 잡아주는 것이 거의 전부였다. 불길이 올라오는 것도 뒤에서 멀찍이 본 게 다였다. 그 정도 거리였는데도 방화복 너머로 불의 열기가 전해진 것은 신기했지만 그렇게 졸음 참아가며 기다린 것 치고는 너무 허무하게 끝나서 아쉬웠다. 지금 생각하면 이것도 숙달을 위한 훈련이라기 보다는 체험식 교육에 가까웠다. 하지만 가입소 포함 11주라는 한정된 시간에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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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동기들은 방수 훈련을 받았는데, 방수 훈련은 더 팀 단위로 나뉘어서 해서 조금 더 고루고루 역할을 수행해볼 수 있던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방수 훈련은 훈련장 안으로 물이 계속 쏟아져 들어오므로 파공을 제때 막지 못하면 계속 물이 차오르고 그게 지켜보기에도 꽤 공포스러워보였다. 우리 소대 동기 중 하나는 부목으로 파공을 막는 과정에서 손으로 부목을 고정한채 때려 박다가 손가락이 바스라질뻔 하기도 했다. 뭔가 방수훈련이 더 다이나믹해 보였어서 못해본 것이 아쉬웠다. 특히나 통역은 실무 나가면 이런 훈련은 할 일이 없으므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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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이 월요일과 화요일에 화생방과 소화방수 훈련을 마치고 (마음 속에 과실보고의 짐을 진 채) 3주차의 수목금은 웅동에 위치한 야전교육대로 이동해서 훈련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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