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새벽 Apr 06. 2019

로스쿨일기: 두 번의 예비군 훈련

두 번의 예비군 훈련

작년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예비군 훈련을 가지 않았다. 로스쿨생도 대학원생인지라 감사하게도 학생예비군으로 연간 8시간만 이수하게 해주는데 그것조차 가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영원히 피할 수는 없는 법. 올해 2번을 채워야 한다. 지정된 날짜는 3월 12일은  화요일이었고, 화요일에는 수업이 2개나 있어 수업이 없는 금요일로 옮길까도 했는데 여의치 않았다. 깔끔하게 포기하고 다녀왔다. 


이월보충. 즉, 남아서 넘어온 것을 채우는 훈련이라는 것인데, 덕분에 학교별 지정날짜가 아닌 탓으로 학교에서 운영하는 셔틀지원도 없다. 아쉬운 일. 서울 북쪽으로 있는 교현 예비군 훈련장까지는 북한산을 돌아서 가야 해서 거리가 제법 멀다.. 교통편도 2번을 갈아타야해서 꽤 번거로운 편이었다. 9시 입교인데, 그래도 조금 여유롭게 가려면 아침 일곱시에는 집에서 나서는 편이 좋다. 결과적으로는 일곱시 십오분쯤 집을 나섰는데, 참으로 오랜만에 스타벅스에 들려서 아침커피를 사고 바로 앞 버스정류장에 들렀는데 아침 출근 시간인지라 버스들은 매우 혼잡하다. 이거 때문에라도 일곱시 보다 전에 출발했어야 했지만 여섯시 사십분에 겨우 일어나서 나온지라 별 수 없었다. 이 시간대에 버스 정류장에 군복 입고 서 있는 사람은 십중팔구 예비군 훈련을 가는 사람. 계급장 없는 군복을 입은 친구가 버스 기다리느냐고 물어본다. 그렇다고 대답하고 조금 이야기를 해보니 학부생이고 똑같이 교현예비군훈련장으로 이월보충을 가는 친구였다. 안 그래도 같이 가는 사람이 없어서 종일 심심할 차 말을 트게 되었다. 오늘의 코스는 버스로 안국역으로 가서 3호선을 타고 구파발로 가서 거기서 버스를 타고 훈련장까지 가는 것. 그런데 버스 타는 것 부터가 난관이다. 오늘 버스들이 거의 이미 만차인것이었다. 이러다가는 훈련에 지각하는 것 아닌가 해서 조바심이 나던 때 다행히 다음 버스가 조금 여유 있는 채로 들어와 안국역까지는 무사히 이동. 길도 크게 막히지 않았다. 그 뒤 3호선을 타고 부터는 모든 일이 수월했다. 같이 가게된 친구는 마지막 학년을 두고 있는 학부생이었는데 전날 밤새 술을 마시고 왔다고 한다. 그런데 새벽 세시까지 마시고 밤새 놀다온 것 치고는 꽤 멀쩡하다. 아직 술이 완전히 깬 것 같지는 앉지만 그럭저럭 나쁘지는 않아 보인다. 3호선에서는 다행이 앉아갈 수 있었고 곧 구파발 역에 도착했다. 버스로 갈아타기 위해 출구로 나와서 두리버 거리는데 짧은 머리에 현역임이 분명한 부사관이 교현으로 가시냐고 묻는다. 어라? 알고보니 구파발 역에서는 교현까지 훈련대에서 셔틀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얼른 가서 탑승하니 좌석도 여유가 있다. 여덟시 삼십분쯤 출발한 버스는 십오분 정도를 달려서 교현예비군훈련장에 도착하였다. 


가보니 재작년과는 동선이 조금 달라져있었다. 조금 더 예비군 편의에 맞게 개선된 것 같았다. 일단 거의 기다림 없이 바로 학급별 분류하고 장구류를 나누어주었고 바로 강당으로 이동하여 착석대기 하였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그렇게 오늘의 비극이 시작되었다. 


2019년 3월 12일 서울 대기 상의 미세먼지는 '나쁨'. 오늘의 예비군 훈련은 모두 실내교육으로 전환되었다. 이게 왜 비극이냐고 묻겠는가? 이 것이 비극인 이유는, 하루 종일 의미 없는 동영상 시청과 . 어차피 내 시간을 내어서 참가해야 한다면, 최소한 교육훈련 효과라도 발생해야 할 것인데, 실내교육 대체 시에는 얻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아서 아무것도 하고 싶어하지 않는 다른 예비군들과 함께 하릴 없이 하루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자니 너무나도 힘이 빠진다.  어쨌든 교육 명목으로 앉아 있는 것이니 휴대폰도 쓰지 못하게 하는데 그런면에서 꼬장한 편인 나는 시키는데로 휴대폰도 쓰지 않았고, 졸지도 않았다. 꾸역꾸역 의미 없는 강연을 듣는 것도 고역이었지만, 그렇다고 끌려온 것 때문에 마냥 꼼수 부리며 벗어날려고 몸부림치는 것도 싫었다. 왜냐면 그렇다고 진짜 벗어날 만큼의 반항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다들 지겨움에 못배긴 소심한 반항 정도인데, 그런 건 가오가 안 사니까. 


점심시간 이동하는데, 조별로 열 맞춰 이동해달라고 한다. 조별로 강당을 나서는데 그 날 분대장 번호를 받은 나는 아주 눈치없게도 우리 분대를 두 줄로 열맞춰 모았다. 그런데 다들 그냥 산개해서 간다. 교관들도 통제할 생각이 전혀 없다. 아, 여기는 예비군 훈련장이지. 그래도 내 뒤로 모여준 분대 아저씨들이 고맙긴 한데, 몹시 민망했다. 어차피 분대원들끼리 밥 먹을 것도 아닌데, 괜히 모인다고 시간 지체해서 밥만 늦게 먹게 되었으니까. 


아무튼 이날은 불행 중 다행으로 이월보충에 온 로스쿨 동기가 나 말고도 둘 정도 더 있었다. 한 명은 같이 온 것을 더 나중에 알아서, 점심 식사는 같이 못했고, 이월보충을 온 다른 형이랑 점심식사를 같이했다. 점심은 나름 충실하게 나왔는데, 가격이 6,000원임을 생각하면 그냥 딱 그 정도 값을 한 것 같다. 식사비는 예비군 훈련비 만3천원에서 공제되었고, 내 통장에는 하루 출석한 대가로 7,000원이 꽂혔다. 예비군 훈련비 올린다더니 아직은 다 반영이 안 된 모양이다. 돈 받으러 훈련 오는 것은 아니지만 내 하루 시간의 대가가 13,000원이고, 그나마도 밥값으로 내가 선택하지도 않은 식사가 6,000원이 나간다는 것은 조금 허탈하다. 


하지만 김수영의 시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처럼 나는 왜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어차피 밥값은 점심으로 6,000원은 쓴다. 이런 소시민적인 분노. 


그리고 오후에도 서울 택리지 동영상을 한 편 더 보고, 안보강연을 하나 듣고, 하염없이 앉아있다가 퇴소. 이래저래 지적 받아 늦게 퇴소 허락 받은 분대와 빨리 보내주는 분대 간에는 시차가 딱 5분. 허탈하지만, 다 뒤로 하고 나오는 길. 아침에 인사 튼 학부생 친구와, 다른 로스쿨 동기 둘을 만나 부대 앞에서 버스를 타고 구파발까지 왔다. 구파발은 신세계였다. 엄청 거대한 백화점이 자리잡고 있었다. 와 여기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네. 생각해보니, 구파발에 와 본 것 자체가 태어나서 처음인듯. 그렇게 나의 올해 첫 예비군은 막을 내렸다. 





그리고 2019년 4월 4일. 이번에는 올해 예비군 일자가 나왔다. 혼자 훈련장 찾아가는 것은 정말 번거로왔는데, 학교에서 버스도 지원해주고, 아침에는 빵과 음료수도 나눠주고, 심지어 점심 식대도 지원해준다. 와. 이건 좀 괜찮은 것 같아. 그리고 이날은 날이 정말 좋았다. 간만에 미세먼지도 없단다. 다행이다. 저번처럼 앉아서 아무것도 안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여기서도 모두는 무기력하다. 여기서는 의욕이 있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 모두들 억지로 이행해야 했던 병역의 의무에 대해 항의라도 하듯이 군복만 입으면 춥고 배고프고 하기 싫다는 하소연과 귀엽다면 귀여운 투정이 들린다. 그것을 통해서 예비군들 끼리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럭저럭 하루가 지나간다. 이름 순으로 학급을 나누어 등록하는데, 정작 분대 배치는 도착해서 패찰을 받는 순번이다. 아뿔싸, 어리버리 까는 사이에 동기들하고 다른 분대에 배정받았다. 아, 모르는 아저씨들(사실 학부생 동생들)이랑 종일 또 같이 부대껴야 하는구나. 나쁠 건 없지만 조금 심심하겠다. 게다가 이런 날 장교 계급장을 달고 있는 것은 썩 좋을게 없다. 괜히 이질감만 들고, 그렇다고 장교 역할을 하는 것도 아니고 눈에 띄고 불편하기만 하기 때문. 물론 사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병장 출신 분대장의 "약진 앞으로!"에 김중위도 "으아아악" 소리 지르며 소총을 들고 돌격.  


이 날의 과업은 '목진지 전투', '기본전술', '검문소 운용', '화생방'에 플러스로 안보강연. 나중에 동원절차 안내를 보니까 평시 동원시 향방 작계에 기초한 과업들 관련한 과업들로 나름의 합리성을 가지고 짜인 교과목이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별 설명도 없고, 사실 설명한다 한들 들어줄 사람도 없다. 사실 아주 솔직히 말하면, 보병스러운 훈련은 받아본 적이 없는 나는 나름 신선하고 재밌게 병정놀이 하다 왔다. 하지만 여전히 의욕 없는 사람들과 함께라는 건 너무나 힘들어. 사실 이해는 한다. 군대에서 적극적으로 나서면 돌아오는 건 더 많은 일과, 주변의 싸늘한 눈초리뿐. 모르는 사람끼리 있을 때는 더 몸을 사리게 되는 심리. 그리고 병역의무를 다 했는데 아직도 나를 불러서 시간 낭비 시킨다는 것에 대한 반감. 그런데 안 할 거면 모르는데, 어차피 와서 할 거면서, 오직 끌려온 것처럼 피동적으로 구는 것은 정말 너무 싫다. 그 수동적인 분위기가 나는 차라리 더 싫었다. 물론 그들의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 가운데에서 숨이 턱턱 막히는 것만 같았다. 아무튼, 손에 착 감기는 M16A1을 쥔 채로 엄지는 안전에,  검지는 쫙 펴서 방아쇠 울 밖으로 뺀 채 간만에 병정 기분내면서 터덜터덜. 연습용 수류탄투척은 내 왼쪽으로 두 명은 안전클립 제거 안하고 핀만 뽑고 던져서 불발. 강하다 대한예비군. 


화생방 교관은 예비군의 심리를 너무 잘 안다. 나름 삶의 낭만을 즐길 줄 아는 사람. 동기부여 안 된 예비군들을 살살 달래는 스킬이 기가 막히다. 덕분에 오늘 처음으로 다들 진심으로 씨익 웃어본다. 이런 분위기라면 교육도 나쁘지는 않네. 그렇게 기분좋게 한 이십분 있다가 찾아온 점심시간. 이번에는 동기들이 있어서 심심하지 않다. 그런데 끝나고 아이스크림 한 사람 몰아서 쏘기 내기를 하잖다. 나는 흔쾌히 승낙했다. 왜냐하면, 이런 것은 좀처럼 지지 않으므로. 그런데 왠 걸 내가 당첨. 아이스크림 먹겠다는 사람은 네 명. 콘 하나에 천오백원. 그렇다면 학교에서 식대를 대준 6,000원 대신에 결국 내 지출은 6,000원. 세상은 그렇게 균형을 맞춰간다. 


안보강연은 시국에 맞추어, 대적관이 상당히 부드러워진채 주변국 상황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추었다. 군이란 신기한 조직. 처음에 입대할 때, 정치적 중립 개념 없는 군인들이 너무 많아서 깜짝 놀라곤 했는데, 정부 눈치는 기가 막히게 본다. 다행이다 사실. 군인이 민간 정부의 눈치를 본다는 것은, 사실 다행스러운 일. 여기까지 오기에 반백년 걸리지 않았나. 


무엇을 했나 싶지만, 또 엄청 긴 시간처럼 느껴진 교육을 마치고 이번에도 쾌적하고 셔틀을 타고 학교로 돌아온다. 두 명의 동기와 저녁식사와 가벼운 맥주 한잔. 그렇게 했는데도 시간은 아홉시가 채 되지 않았다. 오늘은 공부는 없다. 집에 와서 조금 노닥이다 잠이 든다. 아, 밖에 있을 땐 몰랐는데 집에 오니 다시 코에 달고 있던 감기가 도지는 것 같다. 내일부터는 다시 학생본분 종일공부로 돌아간다. 그렇게 오늘 또 하루가 저문다. 

매거진의 이전글 로스쿨일기: 쌉싸름한 그의 뒷모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