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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새벽 Mar 06. 2019

로스쿨일기: 쌉싸름한 그의 뒷모습

사실 쌉싸름하다기 보다는 씁쓸한 느낌의 그의 뒷모습. 


**법 관련 강의를 하시는 모 교수님은 강의력이 안 좋으시다. 주로 전달력의 문제인데, 본인은 A에서 B로, B에서 C로, C에서 D로 이어지는 흐름을 생각하시고 수업을 하시지만, 그 중 우리에게 말씀을 하실 때에는 D에서 시작해서 A 이야기를 하셨다가 C를 근거로 드시고 다음 주제로 넘어가신다. 그 주제에 익숙하다면야, 어떤 말씀이신지를 알아듣기도 하겠으나, 아직 완전히 흐름이 잡히지 않은 입장에서 듣게 되면 엄청나게 혼란스럽고 답답하게 느껴진다. 연구나 기고하시는 부분에 있어서는 글이 산만하지 않고 꽤 좋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내가 따라갈 준비가 덜 된 탓이겠거니 생각도 하지만, 다수의 견해는 수업에 집중하기 힘들고 무슨 말씀이신지 알아듣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중간 중간 주의를 환기하시고자 질문도 던지고 농도 섞으시는데, 그 타이밍이 일단 기가 막히게 안 좋고, 농으로 던지시는 말씀들은 너무나 낡은 감각이라 보통 어떤 반향을 이끌어 내지 못하신다. 자연스레 수업이 축 쳐지고 생기가 없게 되곤 해서 모두가 기피하게 되어버렸는데, 이번 학기 꽤 중요해서 많은 사람들이 듣는 과목을 혼자 맡으시게 되셨다. 


이번 수업은 그러나 강의전달 보다는 변호사 시험 기록 과목 대비 연습을 할 수 있도록 개설된 강의라 나를 포함해 동기들 대부분은 강의력과 무관하게 수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교수님 강의 계획표 상에는 3, 4월에는 강의를 진행하시고, 5, 6월 동안 문제풀이를 하실 생각이셨던 것 같은데, 본인께서도 본인의 수업평이 안 좋은 것을 의식하신 것인지 뭔가 의기소침하셨다. 수강생 입장에서는 미리 강의계획이 고정이 좀 되어야 한 학기 계획도 짜고, 수강 여부를 확정할 지 말지도 정하게 되어 계속 앞으로의 계획에 대하여 질문을 드리게 되었는데, 아무도 대놓고 말은 안했지만 결국 그 요지는 교수님의 수업진행 부분은 최소화하고 기록쓰기 연습으로 바로 넘어가고 싶었다는 것이었다. 나도 같은 마음이었고, 오늘 오랜만에 다시 들은 교수님의 수업은 정말 듣기 괴로워서 결과적으로 교수님 수업이 줄어든 것이 잘 되었다고 생각은 한다. 아이들의 불만사항 표출에 덕분에 무임승차한 부분도 없지 않고. 


그렇지만, 자기 수업인데 사실상 자신이 진행하는 부분이 거의 삭제되어 버린 교수님의 모습이 보기 참 안타까웠다. 사실 아이들의 의견이야 들어주시는게 감사한 일이고, 좋은 강사라면 응당 그래야 할 것이지만, 자신의 강의에 대한 선호가 매우 떨어짐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아이들의 불만 제기에 별다른 반박도 하지 못하고 흔들리시는 모습이 보기 안쓰러웠다. 말만 존댓말을 붙여서 당신 수업은 전혀 필요가 없으니 기록이나 쓰게 해달라는 내용의 요구사항들을 못 알아들을 정도로 둔감할 사람은 없다. 결국 자신의 수업에서 자신의 영향이 모두 제거된 상황을 교수님은 받아들이고, 심지어 오늘은 기록을 쓸 것도 아님에도 어차피 아무도 원치 않는 강의를 빨리 마치시며 수업을 마무리했다. 


로스쿨 3학년. 아마도 고등학교 3학년 때 만큼이나 다들 퍽퍽하게 느껴질 시간. 가뜩이나 낮아지는 합격률 속에 변호사 시험 뿐 아니라 각자 준비하는 재판연구원, 검찰 시험까지 마음 속에 부담이 이만 저만이 아닐 것 같아. 지금은 내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아주 조그마한 것도 허용하고 싶지 않은 마음. 그저 상냥하기만 할 수는 없는 상황 다 이해할 거 같은데, 그래도. 그래도 나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해 주지 못할 것 같다는 이유로, 강의평가가 나빠서 자신감 있게 수업 관련하여 자기 주장을 하지 못하신다는 약점을 포착하고는 그렇게나 가혹하게 대해야만 했을까. 수업 시작하고 십오분여가 지났을 때 나도 화가 났었다. 내가 이런 수업을 지금 들으면서 참고 있어야 하나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다. 수강을 철회하겠다는 생각도 당연히 했다. 그러나 우리가 한 사람의 자존감에 상처될 정도로 처절하게 이 공간에서 그의 존재를 부인했어야 하나 하는 의문이 생긴다. 분명 그와 우리 사이에는 우리도 수험과 관련하여 크게 손해를 보지 않으면서 그도 최소한의 자존감을 가지고 갈 수 있는 선택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감을 잃었고, 우리는 마음의 여유를 전부 상실한 까닭에 결국 한 사람은 마음을 크게 다쳤을 것이다. 다수의 반감을 여과 없이 맞이해야 하는 먹먹함을 굳이 느끼게 했어야 했나 싶어서, 씁쓸했다.  


그러나 이 역시 그저 말랑말랑한 알량한 동정심. 그 분 수업을 견디지 않아도 되게 된 것은 내심 다행이다. 기실 나는 아무런 의견도 개진하지 않았다. 침묵하는 시민은 오늘도 그렇게 하루를 난다. 무탈하게, 그저 평온히 숨만 쉬면서. 나쁘고 싫은 것을 나쁘고 싫다고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음은 중요하다. 오늘 조금 마음 상하는 말들이더라도 하지 않았더라면, 무익하다고 느껴지는 그 분의 수업을 참고 들었어야 할 터.  불평하지 않는다면 바뀌지 않는다. 때로는 인내는 미덕이 아니다. 그러나 나의 파토스는 그와 같은 로고스에 쉬이 설복되지 않았다. 하지만 내일이면 이 모든 일을 나는 다 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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