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그거 뭐 먹는거니?
1. 블록체인, 안녕.
블록체인을 처음 접한 건 군에 입대해서 실무 배치를 막 받은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우리 사무실에는 제대를 앞두고 있던 말년 중위 J선배가 있었는데, 그는 취업준비에 한창 열을 올리고 있었고 가끔 우리는(갓 임관한 쏘위들) 시간 날 때 J선배의 원서를 함께 다듬거나 면접 준비를 도와주기도 했었다. 그가 면접 준비로 준비했던 주제 중에 하나가 비트코인이었고, 그때가 블록체인과 관련된 이야기를 가장 처음 들었던 때였다. 그게 2013년도였다. 당시는 그냥 '아 뭐 전자화폐 같은 거가 있구나.'하고 넘겼다. 나는 갓 군인이 된지 얼마 안 되었고 사회에서 어떤 변화가 발생하고 있는지 보다는 앞으로 3년간 있을 나의 생활이 더 절박한 현실이었으니까.
그리고는 시간이 흘러서 이번에는 우리가 말년(2016년)일 때 동기인 M군이 블록체인을 들고 나왔다. 그는 영국의 전통명문 O대 수학과 컴퓨터공학을 2중 전공으로 졸업한 수재였는데 블록체인에 심취하여 관련 이야기를 동기들에게 꽤 열정적으로 하고 다녔다. 실제로 그는 제대 후 비트코인 마이닝에도 뛰어들었었고 관련 업태에도 몸을 담았었으니 나름 비트코인 열풍이 불기 전부터 꽤나 기민하게 흐름을 파악했던 친구라고 할 수 있겠다. 그는 특히 비트코인이 가져올 사회경제적 변화에 대하여 열정적으로 이야기하고는 했는데, 덕분에 나도 이게 무엇인지 호기심이 생겨 말년에는 사토시의 논문도 찾아보고 관련 자료도 검색해서 보고 조금은 들여다 보게 되었다.
이건 여담인데, 부분적으로는 M군의 영향으로 당시 통역장교들 특히 후배들 사이에서는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열풍이 불었고 이를 통해서 꽤나 부를 축적한 후배들도 있었다. 하지만 왠지 우리 동기들은 아무래도 동기의 말은 같은 동기로서 디스카운트해서 듣게 되는 것들이 있었는지 그러한 새로운 부의 창출의 흐름에 전혀 동승하지 못하였다. 게다가 당시 나는 돈을 넣으면 이 기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아주 막연하고 순진한 생각에 몇 편의 논문을 찾아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말았다. 그 흐름에 편승했다면 로스쿨 3년 동안 등록금과 생활비 정도는 너끈히 나왔을 것인데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애초부터 내 것이 아니었던 부 아닌가.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물론 기술적인 이해가 떨어지는 내 입장에서는 아주 개념적으로 밖에 파악되지 않았지만 이런 유형의 기술이 있고, 그 영향력의 지속성이나 규모는 알 수 없지만 사회경제적으로 무언가 임팩트를 만들어낼 수 있는 그런 것이다 정도로는 인식이 되었다. 물론 진성 Crypto-anarchist들의 레토릭(진정으로 분권화되고 권위가 완전 해체되는 사회)은 그 때도 신뢰하지 않았다. 인터넷도 그와 마찬가지의 레토릭들이 있었고 그와 관련하여 분명히 일정 부분 성과를 거두었고 우리 생활을 완전히 혁신적으로 바꾸어 놓았지만 분산된 권력의 일부는 다시 누군가에게 집중되었고 우리는 정부 뿐 아니라 기업체들에게 권위와 그에 따른 권력을 여전히 상당부분 위임하고 있으니까.
2. 다시 만난 블록체인
2.1 블록체인, 득 좀 보자 나도
그렇게 로스쿨 입학 후에는 그저 학교 과정 따라가기에 바빠, 블록체인 따위 잊고 있었다. 간간히 뉴스에서는 비트코인 등으로 일순간에 기십억대의 수익을 낸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왔지만 있는 돈도 까먹고 있던 나에게 무언가 투자를 할 여력 같은 것은 없었고 그보다는 학교 생활에서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다. 1학년은 그렇게 블록체인과는 별다른 인연 없이 지나갔다. (사실 지금도 별다른 인연 없다.)
하지만 다정도 병인양 하여, 2학년 올라가며 이대로 나의 로스쿨 생활은 겨우겨우 학과일정 따라가면 별다른 소득없이 끝나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몰려오자 나는 또 곁가지 주제들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그때부터 지금도 쭉 기후금융 분야에 대하여서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무언가 금융일반의 주제 중 트렌디한 것에 대하여서 논문이나 한 편 써서 대회나 한 번 나가보자는 안이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마침 2018년도 당시에는 ICO 광풍이 불어닥치고 있었다. 미래의 기술, 꿈의 기술, 차세대 혁신, 블록체인. 이 흐름에 지금 동승하지 않으면 낙오될 것만 같은 각종의 수사들. 그리고 아무 서비스에나 블록체인과 암호자산을 붙여대며 ICO를 터뜨리고 있었고 거의 사기행각에 가까운 일들이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었다.
요시, 기회다. 블록체인을 주제로 잡고 ICO 규제 이야기를 하면 대충 논문 윤곽이 나온다. 일이 너무 쉽게 풀리는 걸. 나는 2학년 1학기 수업을 들으며 논리력이 좋아 눈여겨 보았던 동기 1명(S군)을 섭외하고, 여기저기 블록체인 논문을 쓸거라고 떠들고 다녔더니, 관련 분야 전문가라고 하여 추천받은 또 하나의 동기(J군)를 섭외해서 그 해의 한국은행 금융경제법 연구논문 현상공모에 응모하기로 하였다.
팀 결성은 학기 중 하였으나, 중간고사에 기말고사에, 결국 밀리고 밀려 방학을 맞이해서야 본격적으로 논문 작성에 착수하였는데 S군과 J군을 섭외한 것은 결과적으로 아주 괜찮은 한 수 였던 것으로 들어났다. S군은 상당한 합리주의자에 균형적인 논지와 태도를 견지하는 친구였다. 반면 J군은 자신이 원하는 방향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아주 잘 알고 있었고 보다 비전형적인 사고를 할 줄 아는 친구였다.
J군은 블록체인 그리고 암호자산(우리가 합의한 용어)의 본질 그 자체에 대한 규명이 선행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 상당히 깊은 학습을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반면에 나는 블록체인과 암호자산에 대한 개념정의에 천착하는 것은 소득 없이 끝날 위험이 있고 그보다는 현실적인 규제 양태에 대한 코멘터리에 집중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었다. 결과론적으로, 우리 논문은 암호자산의 본질에 대한 정의를 우선적으로 제시하고, 그러한 정의에 따를 때 이에 적용되어야 할 규제 등에 대하여 논하는 구조로 나왔는데, 이 흐름이 꽤 괜찮았던 것 같다. 뒤돌아보건데 아주 새로운 현상을 접할 때는 J군의 주장과 같이 그 본질에 대한 파악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맞았던 것 같다. 나는 조금 게을러서 아주 힘든 작업은 피하고 결과가 바로 나올만한 것만 건드리려고 했는데 이러한 게으른 태도가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는지 배울 수 있던 기회이기도 했다.
아무튼 우리 논문은 그렇게 서로 시너지를 받아서 2등 입상의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 특히 그 해에 암호자산과 ICO 규제라는 똑같은 주제로(우리의 창의력이란 얼마나 하찮은가) 꽤 여러 팀이 나왔는데 그 중에서는 우리가 으뜸으로 수상한 것이므로 이는 퍽 좋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조금은 우연히 다시 블록체인과의 연관고리가 생겼다.
2.2 블록체인과 법 학회
그렇게 블록체인 논문을 한 편이라도 쓰고 나니, 괜히 관련 주제를 조금 아는 것 같은 마음도 들고 이런 활동이 조금은 지속성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우리를 주축으로 후배 기수분들을 몇분 섭외하여 학내에 블록체인과 법 학회를 만들었다. 그런데 처음 모임 정도 하고는 사실 별다른 관리를 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교내 학부 블록체인 동아리와도 연계를 시도하여 나와 J군은 면접도 보고 해당 동아리 가입하여 두어차례 나가기는 했는데 점점 더 바빠져오는 학교 스케쥴과 곧 이어 로3으로 진학하며 생각보다 이 작업은 지속성이 없이 끝나버렸다. 이 부분은 내가 조금 더 열정적이었어야 하는데 아쉬운 일이다. 동아리도 지도교수님 섭외까지 마쳤으나 로스쿨 정식 동아리로 신청하는데까지는 진행하지 못하였다. 뒷심이 없는 건 항상 내 문제였던 것 같다.
로3 올라가서는 그야말로 생존을 위하여 버틴 1년이었으므로 블록체인이라느 테마는 전혀 떠올릴 일이 없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시간과 공을 들여 논문을 쓰고 나니 남은 관심은 있었고, 특히 금융의 미래에서 이 분야가 어떤 역할을 할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고 (다자간 해외 PF 형태가 되기 쉬운) 신재생에너지 금융 등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등의 생각들은 머리속에서 떠돌고 있었다. 그래서 큰 틀에서는 기후변화, 금융, 블록체인을 테마로 엮어서 내 법지식을 활용해서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지는 않을까 정도를 머리 뒤에서 돌리고 있었던 것도 같다.
3. 블록체인과 법
지금은 나는 핀테크 업계의 스타트업 사내 변호사로 있지만 블록체인과는 아주 미미한 연관성만을 가지고일하고 있다. 우리는 전자결제 자체에 집중하는 회사고 블록체인을 핵심으로 하는 회사는 아니기 때문이다. 국경을 넘나드는 결제에는 여전히 암호자산(더 흔히는 암호화폐 또는 가상자산으로 불리는 그것)이 할 역할들이 있다고 보기 때문에 언제든 연관성을 생길 수도 있겠지만 국내 규제 및 현재 우리의 사업모델로 볼 때 그러한 연계성을 창출해내는 것은 용이해 보이지는 않는다. 더 나아가, 지급결제 시장에서의 활용외 블록체인 기반 암호자산의 그 외의 활용도를 모색하기에는 다소 모호한 지점들이 있는 환경에 있기도 하다.
3.1. 블록체인의 법에 대한 영향
하지만 블록체인은 'internet of value'라는 리플(그 리플 맞다.. 많은 투자자의 마음을 아프게 해왔고, 하고 있고, 앞으로도 할 것이라는 그 리플)의 주장처럼, 이에 기반하여 새로운 시도를 해 볼 수 있는 부분들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따라서 과연 앞으로 계속하여 블록체인과 암호자산은 '법'에 대하여서는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하여서는 호기심이 일 수 밖에 없다.
관련하여, 법의 관점에서 블록체인과 관련하여 관심을 가지게 되는 포인트는 크게 2가지라고 생각한다.
(1) 첫번째는 중앙화된 관리기구(국가, 제도권 금융기관 등)을 거치지 않은 가치의 이동에 있어서 기존 규제의 적용 또는 적응의 문제
(2) 두번째는 디지털화된 자산을 기반으로 한 자기집행적 성격을 가지는 스마트계약의 도입에 따른 계약의 지형도의 변화 문제
위 (1)과 (2)는 모두 법적인 쟁점이라는 점에서 공통된 성질을 가지지만, 전자는 새로운 현상에 대한 규제의 확장이 이슈(그래서 오히려 항상 법이 직면해 왔던 오래된 문제)고, 후자는 계약(스마트 계약이 우리가 법적으로 관념하는 그 "계약"이 아님은 나도 인지하고 있고 이는 후의 글들에서 보다 상세히 다루기로 한다.)에 있어서 의사의 합치, 합치된 의사의 확정 및 확인, 상호 의무의 이행, 채무불이행 시 집행의 문제 등과 관련하여 기존의 계약체결 및 이행의 방식에 충격을 줄만한 것들이 있는지가 이슈이다.
즉 앞의 문제가 사실적인 변화에 대한 규범의 적응의 문제라면, 후자는 규범 그 자체가 작동하는 방식의 변화라는 점에서 이는 논의의 층위를 전혀 달리한다. 이러한 지점들에서 흥미롭게 지켜보고 공부해볼 부분들이 많다고 느껴진다.
3.2. 앞으로 내가 보고 싶은 부분들
나는 기후변화 특히 기후금융에 대한 관심이 있음은 이미 여러번 피력한 바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기후변화라는 테마에 대한 관심은 사회적 층위에서의 본질적인 변화 촉발의 매개라는 점에서 촉발되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사회경제적 변화와의 연관성이라는 관점을 유지한다는 전제하에서 기후금융 조금 더 넓게는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임팩트 금융 등과 관련해서 블록체인이 가지는 잠재력을 더 들여다 보고 싶다. 어쩌면 이를 통해서 블록체인과 암호자산이 활용성에 대한 보다 포괄적인 이해를 가지고 싶기도 하다.
그리고 스마트계약의 구조를 이해하고 싶다. 이를 위해서는 아주 간단하게라도 스마트계약을 직접 코드로서 짜보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블록체인의 체계를 이해하는 데에도 무엇보다 직접적인 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위 주제들을 위해서 내가 올해 하고 싶은 것은 크게 2가지 축의 활동이다. 하나는 블록체인과 관련하여 개인적으로 공부하는 것들을 이 브런치에 글로 남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술 그 자체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기 위하여 기본적인 코딩을 공부하는 것이다. 그리고 코딩 공부의 과정 역시 이 브런치의 별도 매거진으로 연재하여 외부 시선에 의한 학습의 강제 효과를 부여하고자 한다.
이 두가지 활동은 모두 지금 당장 직접적으로 내 업무에 득이 되는 것도 아니겠으나, 나의 직업적 충실성을 해하지 않는 선에서, 올해 나의 지속추진 과제로 한 번 밀고 나가고 싶다. 나 스스로의 게으름을 알기에 자신은 없지만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는 아무런 생산적인 효과를 가져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때로는 그저 내가 재미있어서 놀멍쉬멍 하는 활동도 하나쯤 있어도 재미있는 일이니까 지지부진 해도 위축되지 않고 입으로만으로라도 떠벌떠벌 글을 남겨보겠다.
프롤로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