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이해하는 17번째 속성 환경(Environment)
"장미는 가시 사이에서도 피어난다." - 페르시아 속담
"왜 나는 이런 환경에서 태어났지?" 하고 한 번쯤 해봤을 생각입니다. 가난한 시골의 남아로 태어날 수도 있고, 부유한 도시의 여아로 태어날 수도 있습니다. 기본적인 환경조차 갖추지 못한 아프리카에서 태어나는 사람도 있고, 종교적 탄압이나 전쟁 속에서 삶을 시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가 '환경'이라고 부르는 주어진 조건들입니다.
바닷물고기는 바다에, 민물고기는 민물에 살아야 하는 것처럼 환경은 매우 중요합니다. 자신이 숨 쉬는 곳이 자신에게 맞는 곳이면 자연스럽게 활기가 넘칩니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획일적 시스템에서 모두를 길러내고 걸러냅니다. 개와 닭이 날개짓을 배워야하고, 학이 넓은 그릇에 놓은 밥을 먹는 법을 배워야하며, 사자가 풀을 뜯는 법을 배우는 실정입니다.
하지만 잠깐, 우리는 정말 불행한 환경에 살고 있을까요?
객관적으로 보면 우리는 축복받은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고,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으며,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울 기회가 열려 있습니다. 즉, 우리는 환경을 선택하고 바꿀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런 가능성을 보지 못하고 불평과 원망에 빠지면, 정작 기회가 와도 알아채지 못하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구분이 있습니다. 환경과 상황은 다릅니다.
환경은 거시적이고 전체적인 틀입니다. 상황은 미시적이고 지금 당장의 조건입니다. 환경을 당장 바꾸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바꿀 수 있습니다. 상황을 바꾸는 열쇠는 바로 자기 자신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조금씩 바꿔가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이런 작은 변화들이 쌓이면? 결국 환경도 바뀌게 됩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환경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이를 독립 의지를 키우는 훈련장으로 받아들이세요. "나 혼자서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기르는 시간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반대로 혼자 하기 어렵다면, 더 나은 환경으로 이동할 준비를 하는 시간으로 받아들이세요.
작가를 꿈꾸는 사람을 생각해보세요. 어떤 사람은 작가들이 많이 모이는 지역으로 이사하거나 글쓰기 모임에 참여해 환경의 도움을 받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조용한 곳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해 오롯이 집중합니다. 둘 다 옳은 선택입니다.
중요한 것은 현재 상황을 받아들이면서도 개선하려는 의지를 잃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환경을 크게 바꾸는 결정적 순간들이 있습니다. 진학, 취업, 결혼, 타인의 죽음, 사고 같은 인생의 전환점들이죠. 하지만 이런 큰 변화가 필수는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작은 상황들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어떤 환경이 나에게 좋은 환경일까요? 사실 이는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입니다. 지금 힘들어 보이는 환경도 나중에 돌아보면 소중한 성장의 밑거름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이렇게 생각해보세요. "어떤 환경이 나에게 좋을까?"라는 생각에 앞서 "지금 이 환경에서 내가 성장할 수 있도록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라고 먼저 물어보는 것입니다.
이런 질문을 하는 순간, <환경을 원망하는 사람에서 환경을 활용하는 사람>으로 바뀝니다. 그리고 이런 태도야말로 더 나은 환경으로 나아가는 가장 확실한 나침반이 됩니다. 오늘부터 당신의 환경을 다시 바라보세요. 불평할 거리가 아니라 배울 거리로, 한계가 아니라 가능성으로 말입니다. 그 작은 시각의 변화가 당신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