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구한 건 내 안의 또 다른 나였다

삶을 이해하는 43번째 속성 : 정체성

by 심상

“나는 크다. 내 안에는 수많은 내가 있다.” – 월트 휘트먼


여러분은 정체성을 몇 개나 가지고 계신가요? 그리고 자신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나요?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에서는 성공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걷고자 하는 길의 정체성을 분명히 세우고, 그에 맞는 행동을 꾸준히 반복해 습관으로 만든다고 말합니다.

저 역시 그 책을 읽으며 제 인생의 정체성을 다섯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남편이자 아빠인 사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 경찰로서 사회의 안전을 지키는 사람,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사람, 그리고 달리는 사람.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그건 그냥 자연스럽게 생긴 역할 아닌가요?” 혹은 “그건 단순한 취미일 뿐이잖아요.”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정의하는 순간, 그것은 단순한 역할이 아니라 의식적인 선택이자 방향이 됩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규정한다는 것은 곧 어떤 행동을 반복할 것인가를 정하는 일이며, 정체성은 그렇게 스스로 만들어집니다.



지난 7월, 제 인생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가족의 병환과 예기치 못한 죽음이 한꺼번에 밀려오며 감정이 무너졌습니다. 하지만 그때 저는 한 가지 정체성에만 매달리지 않았습니다. “나는 이 위기를 헤쳐 나갈 힘이 있는 사람이다. 나는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다. 이 시련에서도 분명 배울 점이 있을 것이다.” 스스로에게 되뇌며 마음을 붙잡았습니다.


아빠로서 할 일을 마친 뒤에는 달리는 사람으로 전환해 5km를 뛰었고, 땀을 흘린 뒤에는 글 쓰는 사람이 되어 키보드 앞에 앉았습니다. 때로는 책을 읽는 사람으로 돌아가 타인의 통찰 속에서 숨을 고르기도 했습니다. 이건 도피가 아니라 회복의 과정이었습니다. 각 정체성은 저를 다른 각도에서 세우는 기둥이었으니까요.


이 전환이 핵심이었습니다. 아빠로서 느끼는 무력감이 클 때, 달리는 사람으로 전환하면 적어도 “오늘 5km를 완주한 나”는 남았습니다. 글이 막힐 때는 경찰로서의 책임을 다하며 “누군가를 도운 나”로 돌아왔습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은 슬픔 속에서도 “이 경험에서 배울 게 뭘까?”라고 묻게 했습니다. 그렇게 정체성 사이를 오가며 두 달 만에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고, 지금 이렇게 글을 쓰며 살아 있음을 느낍니다.


만약 이런 정체성의 분리가 없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공허함과 분노, 부정과 자기비난을 반복하며 서서히 침몰했을지도 모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위기를 맞으면 자신이 누구인지를 잃습니다. 직업이나 관계 같은 하나의 정체성에만 자신을 묶어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러 개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대체 가능한 나’를 꺼내 쓸 수 있습니다. 한 정체성이 흔들릴 때 다른 정체성이 그 자리를 메우며 균형을 잡습니다. 이것이 다중 정체성이 주는 진짜 회복력입니다.




삶의 위기 속에서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해선 스스로의 정체성을 설계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는 취미나 일은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가’를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나는 책임을 다하는 사람, 배우고 나누는 사람, 어떤 상황에서도 다시 일어서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정의해 보세요. 그 순간 삶의 방향은 또렷해지고, 위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정체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삶의 단계마다 새롭게 만들어지고 필요에 따라 바뀝니다. 그러니 정체성을 ‘발견’하려 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의 자신에게 맞게 ‘설계’하세요. 여러 개의 정체성을 자유롭게 오가며 살아가는 사람은 카멜레온처럼 유연하게 삶을 헤쳐 나갑니다. 그 유연함이야말로 어떤 위기에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 삶을 지탱하는 진짜 회복의 기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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