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주인이 되는 경험을 하자.

삶을 이해하는 42번째 : 주체성

by 심상

“인간은 태도를 바꿈으로써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우리 세대의 가장 큰 발견이다.”
— William James



요즘 사람들은 왜 이렇게 쉽게 무너질까요? 병원이 많아져서일까요, 아니면 사람들이 예전보다 솔직해져서일까요? 혹은 기술과 사회 구조가 인간의 ‘능동성’을 서서히 약화시키고 있기 때문일까요? 분명한 것은, 지금 우리의 정신이 많이 지쳐 있다는 사실입니다. 상담은 몇 달씩 기다려야 하고, 마음건강 바우처는 예산이 조기 소진될 만큼 수요가 폭증하고 있습니다. 질병이 늘었다기보다, 스스로 감당할 수 없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아진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 근본에는 ‘주체성의 약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 삶의 주도권이 나에게 있다는 감각이 사라진 것입니다. 과거에는 ‘노력하면 된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성실히 일하면 가족을 부양할 수 있었고, 노력은 곧 보상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고물가, 저성장, 복잡한 행정 절차와 서류의 벽이 사람들의 의지를 갉아먹습니다. 노력은 이제 기본값이 되었고, 남들보다 더 뛰어나야만 겨우 출발선에 설 수 있습니다.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회가 아니라, 한 번의 실수가 낙인이 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 사이 가족 간 연대는 약해지고, 부모는 부모 자식은 자식, 각자 본인을 챙기는 각자도생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복지센터를 찾아가도 서류와 행정 절차가 벽이 되고, 전화 한 통조차 자동응답기에 가로막힙니다. 시도조차 하기 전에 ‘지쳐버림’을 배우게 되는 것이죠. 세상은 점점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만 행동하게 만들고, 평범한 사람은 점점 포기하는 법을 배웁니다. 그렇게 주체성은 사회 구조 속에서 서서히 무너지고 있습니다.


MZ세대 이후의 젊은 세대는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자랐습니다. 끊임없이 정보를 ‘보는’ 능력은 늘었지만, 직접 ‘해보는’ 경험은 줄었습니다. 즉각적인 보상에 익숙해진 뇌는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집중력과 자기 조절력을 잃어갑니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내가 기술을 통제하는가 아니면 기술이 나를 통제하는가에 있습니다. 행동의 주도권이 외부로 넘어가면 사람은 점점 수동적 관찰자가 되고, 결국 “나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이 깊어집니다.


과잉보호의 시대에 아이들은 자율성을 잃고 있습니다. 부모의 사랑이 통제로 변하면서, 아이는 스스로 부딪히고 선택하는 법을 배우지 못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심리적 통제’라고 부릅니다. 반대로 감정을 인정하고 선택권을 주는 양육은 아이의 주체성을 키웁니다. 결국 부모의 선의가 아이의 의지를 약화시키는 역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으로 주체성을 느꼈습니다. 좋아하던 여자아이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마음으로 공부를 시작했고, 반 2등을 했습니다. 단순한 계기였지만, ‘노력은 나를 바꾼다’는 감각을 처음 느꼈습니다. 그 후 우울과 무기력 속에서도 저는 그 믿음을 붙들었습니다. 『시크릿』의 “믿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문장을 되뇌며 공부를 다시 시작했고, 정말로 1등이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확신했습니다. “나는 마음먹으면 해낼 수 있는 사람이다.”


그 믿음은 해병대 지원으로 이어졌습니다. 명령이 일상이고 자유가 사라진 공간에서 오히려 ‘진짜 주체성’을 배웠습니다. 진짜 주체성이란 자유로운 환경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명령 속에서도 나를 잃지 않는 힘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세상이 아무리 강하게 흔들어도 스스로를 지키는 법을 배웠습니다.


삶은 그 뒤에도 저를 시험했습니다. 무너지고, 주저앉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를 일으킨 것은 거창한 각오가 아니라,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달리고, 운동하며 마음을 다잡는 작은 행동들이었습니다. 주체성이란 거대한 각성이 아니라, 매일의 선택 속에서 자신을 다시 세우는 습관임을 깨달았습니다.


사람이 진짜로 절망할 때는 실패했을 때가 아닙니다.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고 느낄 때입니다. 사랑이 떠나도, 일이 무너져도 “다시 할 수 있다”는 믿음이 남아 있다면 사람은 버팁니다. 하지만 그 믿음과 통제감을 잃는 순간, 우울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존재의 붕괴가 됩니다.


주체성을 되찾는다는 것은 거창한 변화가 아닙니다. 외부의 기준에서 내면의 기준으로, 결과 중심에서 과정 중심으로, 타인의 시선에서 자기 판단으로 방향을 돌리는 일입니다. 인간은 완벽할 때 강한 것이 아니라, 불완전함 속에서도 스스로 선택할 때 존엄을 되찾습니다. 그리고 그 책임을 감당할 때 작은 결정이 방향을 만들고, 그 방향이 인생이 됩니다.


우울한 시대의 해독제는 복잡하지 않습니다.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는 짧은 순간, “오늘 나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그 물음이 쌓일 때 우리는 다시 자기 삶의 연출자가 됩니다. 삶이 버거운 이유는 세상이 무거워서가 아니라, 그 무게를 ‘내가 선택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주체성은 세상을 바꾸는 힘이 아니라, 세상을 견디게 하는 내면의 질서입니다. 작게, 지금, 매일. 그렇게 우리는 다시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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