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에서 발견한 나만의 행복
나는 언제 행복한가. 이 질문을 곱씹다 보면, 처음엔 ‘여행’이나 ‘휴식’ 같은 명확한 대답이 떠오른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나의 행복은 훨씬 더 일상적인 순간에 자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나는 일을 할 때, 특히 내가 계획하고 루틴대로 하루를 보내며 일을 하나하나 성취해 나갈 때 뿌듯함과 희열을 느낀다. 계획한 대로 일이 착착 풀릴 때의 쾌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강렬하다. 초고를 쓰고 마무리를 끝냈을 때 느끼는 성취감, 지루함과 피로를 이겨내고 한 가지 일을 끝마쳤을 때의 해방감. 그런 순간이야말로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시간이다.
뇌과학자 리처드 데이비슨(Richard J. Davidson)은 “행복은 외부 조건보다는 뇌의 상태와 훈련된 습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의 활동이 긍정적인 감정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밝혔는데, 특히 왼쪽 전전두엽의 활성도가 높을수록 사람은 더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정서를 경험한다고 한다. 내게 있어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이뤄가는 루틴은 곧 뇌를 긍정적인 상태로 유지시키는 하나의 도구가 되어주는 셈이다.
하지만 나는 자유로운 순간에서도 행복을 느낀다. 친구들과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술을 마시고 떠들며 시간을 보내는 일. 정해진 틀과 루틴에서 벗어나 일시적인 해방감을 맛보는 시간은 때로 그 자체로 깊은 행복이 된다. 물론 지나치게 술을 마셨을 때 후회와 자아비판이 따라올 때도 있다. 그러나 적절한 음주는 기분을 긍정적으로 전환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친구들과의 시간은 그 자체로 행복한 기억이 되고, 서로 신경 쓰지 않아도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은 내가 우울하거나 지쳤을 때 위로받을 수 있는 하나의 정서적 자산이 된다.
한편으로 행복은 때로 불행과 맞닿아 있을 때 더 또렷하게 드러난다. 아무 탈 없이 흘러가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되는 순간, 나는 비로소 평범한 하루의 위대함을 실감한다. 불행이 다가오면 감정이 예민해진다. 타인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왜 나만 이렇게 힘들까?”, “오늘만큼은 누군가 나를 챙겨주면 좋겠는데”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럴 때 느껴지는 감정은 마치 사랑받고 싶은 아이의 투정과도 같다. 사실, 우리 감정 시스템은 성장과 함께 성숙해지긴 하지만, 아기 때의 감정 반응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특히 뇌의 ‘편도체(amygdala)’는 위협을 인식하거나 감정을 조절하는 데 관여하는데, 이 부분이 자극되면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는 반응이 나올 수 있다. 감정이 휘몰아치기 전, 나를 잘 관리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래야 나를 둘러싼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그럴 수도 있지”라고 웃으며 넘길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뒤에는 행복의 의미가 조금씩 달라졌다.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가는 육아의 시간 속에서 “아, 힘들다”라는 말이 입에 붙었고,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싶은 순간이 자주 찾아왔다. 그런데 와이프가 어느 날 찍어준 사진을 보며 놀랐다. 아이와 놀고 있는 내 모습이었는데, 활짝 웃고 있었다. 스스로는 ‘너무 힘들다’, ‘하루가 고단하고 지친다’라고만 느끼고 있었지만, 내 안에는 여전히 아이와 함께 있는 것이 즐겁고 행복하다는 감정이 분명히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뇌는 감정의 흔적을 남기며, 그 순간을 ‘행복’이라 기억할 준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Martin Seligman)은 그의 저서 『행복의 조건』에서 “진정한 행복은 쾌락적인 순간보다 삶의 의미와 몰입에서 온다”고 설명한다. 육아는 고되고 반복되는 일이지만, 그 속에는 분명한 의미가 있다.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것, 그와 함께 웃는 것, 그 시간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 이 모든 것이 나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나는 평소 특별한 날을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 편이었다. 그래서일까, 예전의 생일이나 기념일은 기억에 별로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결혼 후에는 조금씩 달라졌다. 결혼 후 첫 생일에 친정식구들이 찾아와 함께 식사하고, 케이크에 초를 붙이고, 따뜻한 미역국과 보쌈을 나눠 먹던 그날은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아 있다. 결국 행복은 일상 속에 존재하지만, 때때로는 특별한 날을 만들어 그 순간을 ‘기억’으로 남기는 것 또한 중요한 일임을 깨달았다.
글을 쓰며 돌아보니, 나는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멋진 경치를 보는 것을 행복으로 인식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마 그것이 일상의 일부로 스며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그런 순간도 더욱 의식적으로 즐기고, 소중하게 여겨야겠다는 다짐이 생긴다. 그러면서도 어느 날은 임팩트 있게 살아야겠다는 생각. 그것은 곧, 지금의 일상을 조금 더 뜨겁게, 조금 더 마음 다해 살아내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행복은 어쩌면 아주 단순한 감정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단순함 속에 숨겨진 깊이는 무궁무진하다. 그 감정을 느끼기 위해 나를 들여다보고, 일상을 조율하며,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는 나를 자각하는 것. 결국 그 모든 것이 ‘행복’을 완성하는 퍼즐 조각 아닐까. 나는 오늘도 그 조각을 하나하나 맞춰가며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