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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류방선의 우제(偶題)

by 찔레꽃
캡처_2021_02_12_16_30_18_743.png

<사진 출처: https://m.blog.naver.com/yui1397/221259351820>



띠 풀 엮어 지붕 헤일고

대나무 심어 울타리 했네

산중에 사는 맛

해마다 는다네


結茅仍補屋 결모잉보옥

種竹故爲籬 종죽고위리

多少山中味 다소산중미

年年獨自知 연년독자지



옛 시 비평은 인상비평으로, 다분히 주관적이다. 거기에다 부가 설명도 없다. 현대인이 옛 시 비평을 접하면서 느끼는 난감함은 어려운 퍼즐 문제를 푸는 것과 흡사하다. 어쩌면 더 어려울 수도 있다. 단서가 없기 때문이다. 허균은 이 시를 자신의 시선집 「국조시산(國朝詩刪)」에서 다음과 같이 평했다. "한적하지만 넉넉지 못하다 [閑適然未免儉]." 한적하지만 넉넉지 못하다니, 무슨 근거로 이런 평을 한 것일까?


감히 군더더기 말을 덧붙여 본다. 허균은 시인이 제목으로 사용한 「우연히 짓다 [偶題]」와 내용이 상호 밀착하지 못하고 결렬이 있는데서 "한적하지만 넉넉지 못하다"란 평을 한 것으로 보인다. '우연히 짓다'의 '우연'이란 작위를 배제한 자연스러움을 강조한 것이다. 그렇다면 시 내용에서도 이런 면모가 드러나야 시제와 어울리는데, 시 내용은 그렇지 못하다. 띠풀을 엮는다거나, 대나무를 심는다거나 하는 행위는 다분히 인위적인 행위이다.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러우면 지붕이 새면 새는 대로, 울타리가 없으면 없는 대로 놓아두는 것이 자연스럽다. 산중의 맛을 표현하는데 '다소(多少, 얼마간)'라는 말을 쓰고, 또 그 맛을 느끼는데 '연년(年年, 해마다)'이란 말을 쓴 것도 시인이 아직은 성근 상태임을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시인은 자신의 산속 생활에 유유자적함을 느낀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아직은 그런 경지에 이르지 못했음을 자신도 모르게 위와 같이 노출시켰기에 "한적하지만 넉넉지 못하다"라고 평한 것이 아닌가 한다.


허균이 이 군더더기 말을 읽는다면 무슨 말을 할까? 역시 군더더기일 뿐이라고 치부할까, 아니면 그런대로 애썼다고 격려할까? 옛 시 읽기도 힘들지만, 옛 시 비평 읽기도 그 못지않게 힘들다. 애고(哀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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