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전비평론자료집(아름출판사)』번역
근 10여 년, 길에서 한자를 주웠다. 어지간한 한자는 다 주운 것 같다. 긴 세월 부지런히 한자를 주운 탓이기도 하지만 한자가 주변에서 자꾸 사라져 주우려야 주울 수 없는 환경이 된 탓도 크다. 아쉽다는 말이 아니다. 그냥 상황이 그렇다는 것뿐. 이렇게 주웠던 한자는 3권의 책(『길에서 주운 한자』, 『길에서 만난 한자』, 『길에서 주운 생각』)으로 정리가 되었다.
한자를 주울 수 없기도 하거니와 10여 년 줍다 보니 무료한 감도 없지 않아 단계를 높여 보기로 했다. 한문을 줍는 것. 한자와 달리 한문을 주우려면 문리[독해]라는 기술을 갖고 있어야 한다. 사실 그간 한문을 주워 보려고도 했지만, 이 기술에 자신이 없어 섣불리 나서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는 약간 자신감이 생겼고 여기에 보태 퇴직으로 인한 시간적 여유가 있어 용기를 내어 나서 보기로 했다.
자료 측면에서 보면 한자를 줍는 것보다 한문을 줍기가 더 쉽다. 직접 길을 나서지 않고 자료가 되는 책만 구하면 되기 때문. 그러면 어떤 책을 자료로 택할 것인가? 한문을 내용상으로 분류하면 문(文)·사(史)·철(哲)로 나뉜다. 사는 고증이 필요하니 번거롭다. 철은 내 역량이 도달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만만한 것이 문이다. 그러면 문에서 어떤 것을 택할 것인가? 한문학의 주종인 시를 택해야 하겠지만 생각보다 시는 어렵다. 그러면 산문을 택해야 하는데, 다양한 산문 중 어떤 산문이 좋을까? 문학의 본령을 논하는 논리적인 서발류(序跋類)가 의미도 있고 이해하기도 쉬울 듯하다.
이런 결정을 하고 구한 자료가 『한국고전비평론자료집(아름출판사)』(사진)이다. 신라 시대부터 구한말까지 주요 문인들의 서발류를 모아놓은 책으로, 한문을 줍는데 이보다 더 좋은 자료는 없는 성싶다. 줍기 편하게 번역본(조남권 역, 민속원)도 나와 있다. 『한국고전비평론자료집』을 직접 해독하고 부족한 부분은 이 번역본을 참고할 생각이다.
길에서 한자를 주울 때는 감히 ‘교육적인 면’을 고려했다. 그러나 이제 시작하는 한문 줍기는 순수한 취미로 할 생각이다. 순수한 취미로서의 한문 줍기는,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많이 공부하겠다는 욕심만 버리면 그 어떤 것보다 재미있는 취미가 될 수 있다. 추리소설 읽는 것 못지않은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퇴직한 중·노년에 이런 재미있는 취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다(돈도 거의 안 드니 더 좋다). 한때는 한문을 배워 불운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는데 이제는 반대로 생각하니, 확실히 인생만사 새옹지마인 성싶다. 나는 취미로 한다지만 이 글을 읽는 이들은 무엇을 얻게 될까? 그간 배웠던 문학에 대한 관념과 다른 관념의 문학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지 않을까 싶다. 하여 어쩌면 고리타분해 보이는데에서 의외의 신선함을 맛볼지도 모르겠다.
언젠가는 이렇게 주운 한문들이, 길에서 주운 한자들이 책으로 나왔듯이, 책으로 나올 것이다. 책으로 나올 때는 부득이 체계를 세워야 한다. 그러나 그 이전에는 체계 없이 자유롭게 써도 된다. 앞으로 쓰게 될 글들은 자료집에서 손길 가는 대로 눈길 가는 대로 접한 것들을 번역하고 여기에 간단한 감상평을 곁들이는 형태로 진행될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시대에 아득한 옛글을 누가 읽으랴. 그래도 누군가는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을 늘 염두에 두며 최선을 다해― 비록 취미로 하긴 하지만 ―써 볼 생각이다. 지켜봐 주시면 감사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