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고를 꿰뚫어 보고 당세를 민망히 여겨 마침내 무너진 문풍(文風)을 크게 구원하여 사람들에게 (표절을 탈피하여) 스스로 짓도록 가르치니, 당시 사람들이 처음에는 놀라고 중간에는 웃고 배척하였으나, 선생이 더욱 견고하자 끝내는 흡연히 따라 안정되었다.”
이한(李漢)의 ‘창려문집서’의 일부분으로, 창려 한유(韓愈, 768∼824)의 문풍 개혁 이른바 고문운동(古文運動)에 대한 평가를 언급한 대목이다(번역문: 성백효). 고문운동은 위진남북조이래 수식과 운율 중시의 변려문을 내용 중시의 질박한 산문으로 변화시키려 한 문학사조를 말한다. 당대에 등장한 신진사대부의 호응을 받았던 바, 기득권층의 변려문풍에 대항한 정치적 개혁 세력을 대변하는 문학사조이기도 했다. 한유는 이 운동의 선구자이자 핵심 역할을 담당했다.
나는 한유를 생각할 때마다 조동일(1939∼현재, 국문한자)을 떠올린다. 조동일도 그와 비슷한 주장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수필은 식민지 시대의 불행을 전해주는 잔재이다. 서양의 에세이에서 유래한 귀하신 몸이라고 신분 세탁을 해도 정체를 감출 수 없다. 수필은 에세이처럼 생각을 풀어주는 논설이 아니고, 순진한 사람들을 사로잡는 올가미이다. 붓 가는 대로 쓰면 된다고 유인해 겁먹지 않게 하고서, 계절감각을 필수로 하는 신변잡담을 미문으로 써야 하는 까다로운 요건에다 감금시키는 것이 식충식물과 같다고 하면 더욱 적절한 비유이다. (…) 수필이라고 하는 고약한 녀석이 어쭙잖은 폭군 노릇을 하면서 일세를 풍미해 글을 망치고, 문화 수준을 낮추고, 세상을 혼미하게 한다. 수필가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늘어나, 온 국민에게 숨 막히는 매연을 덮어씌우지 않을까 걱정이다. 이제 정신을 차리고 글쓰기를 바로 잡아야 할 때이다.”(『우리 옛글의 놀라움』, 15쪽)
조동일도 후일 한유와 같이 새로운 문풍의 선구자 혹은 핵심 인물로 평가받을지는 잘 모르겠다. 과거에는 문인 혹은 학자가 바로 정치가이기도 했기 때문에 그의 글에 대한 인식과 태도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외려 지금은 글을 쓰는 이들이 정치의 영향을 받아 글을 쓰는 경우가 더 많기에 한 사람의 문인 혹은 학자가 사회 전체의 글쓰기 경향에 영향을 미치기란 쉽지 않다. 조동일의 주장은 찻잔의 태풍으로 끝나고 말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그가 한유처럼 새로운 문풍을 외치고 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 있는 행동이라고 여겨진다.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아니 생각하지 못한 면을 지적하여 우리를 일깨우기 때문이다. 어느 누가 미문 취향의 수필을 식민지의 잔재라며 질타한 적이 있었던가 말이다.
“이단을 배척하여 노불(老佛)을 물리치며 틈과 새는 곳을 땜질하고 그윽함과 아득함을 장황(張皇)하여, 아득히 실추된 전통을 찾아 홀로 사방으로 수집하고 멀리 계승하며, 백천(百川)을 막아 동쪽으로 흐르게 하여 미친 여울물을 이미 거꾸로 흐르는 데서 돌리려 하니, 선생은 유학에 있어 공로가 있다고 이를 만합니다.”
한유가 「진학해」에서 다른 사람의 입을 빌어 자신의 유학 부흥에 대한 공로를 언급한 대목이다(번역문: 성백효). 한유는 송대에 만개한 신유학 즉 성리학의 씨앗을 뿌린 인물로 평가받는다. 보다 직접적으로는 이고(李皐)의 「복성서」가 언급되지만 그 이전 한유의 「원도」가 있었기에 「복성서」도 나올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조동일도 한유와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다. 유학 부흥에 관한 주장은 아니지만, 새로운 학문에 대한 주장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나는 근래 한국문학을 그 자체로 연구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두 가지 방향으로 연구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하나는 문학과 철학의 관계를 논해 문학연구의 이론적인 착상을 다지고, 학문 일반의 문제를 새롭게 해결하자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한국문학과 외국문학의 관계를 다루어 세계문학 일반론을 다시 이룩하자는 것이다. 한쪽의 작업이 체(體)에 관한 것이라면, 다른 쪽의 작업은 용(用)에 관한 것이다.”(『한국의 문학사와 철학사』, 12쪽)
조동일도 후일 한유와 같이 새로운 경향의 학문을 개척한 선구자 혹은 핵심 인물로 평가받을지는 잘 모르겠다. 과거의 학문은 종합적이었기에 한 학자의 학문 경향이 사회 전반의 학문 기풍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었지만 지금의 학문은 분과화되었기에 한 학자의 학문 경향이 사회 전반의 학문 기풍에 큰 영향을 끼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그가 한유처럼 새로운 학문을 외치고 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 있는 행동이라고 여겨진다.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아니 생각하지 못한 면을 지적하여 우리를 일깨우기 때문이다. 어느 누가 분과화된 학문이 당연시되어서는 안 되며 통합될 필요가 있다고 한 적이 있으며, 또 그러한 작업을 우리 전통학문의 이론을 가지고 시도한 적이 있었던가 말이다.
한유나 조동일은 학문에 있어 왕재(王才)들이다. 이 왕재들은 천재적인 면에 노력을 보태어 학문의 꽃을 피웠다(그들의 노력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생략한다). 이 점은 범재(凡才)에게 용기를 북돋워 준다. 왕재도 노력하는데 범재(凡才)는 어떠해야겠는가, 라는 경각심을 주기 때문이다. 최근에 조동일은, 팔순이 넘었는데도, ‘조동일 문화대학’이라는 유튜브 활동을 하고 있다. 촌스럽기 그지없는 유튜브지만 그 내용은 말할 수 없이 고매하다. 이 또한 그의 문풍 개혁 주장이나 새로운 학문 주장과 일치되는 것 같다. 이런 사람이 우리 시대에 있다는 것이 정말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