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도보 국토 종단기 제4화
4월 2일 일요일
모닝빵과 소시지 사과로 아침을 먹고 모텔을 나섰다. 5시 43분. 밤잠을 설쳐 피곤했지만, 노후 모텔의 칙칙함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어제는 일찍 들어갈 수 있어서 좋았다더니 오늘은 빨리 벗어나고 싶다니, 하여간 변덕은….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인적이 거의 없다. 새벽 어스름 알싸한 찬 공기를 마시며 길을 나서니 조금은 쓸쓸하기도 하면서 왠지 모를 뿌듯함도 느껴진다. 네이버 지도 앱을 켜고 강진읍에서 월출산까지 ‘길찾기’를 누르니, 26km에 도보로 7시간 1분 걸린다고 나온다. 오늘은 잘하면 월출산에서 점심다운 점심을 한 끼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야호~.
중심가를 벗어나기 위해 네이버 지도 앱을 켰다. 예의 그 상세한 안내가 나오는데, 역시 불편하다. 그러나 달리 방법이 없다. 중간중간 켜면서(계속 켜고 싶지만, 데이터 비용 올라갈까 봐 걱정돼서) 길을 확인했다. 드디어 중심가를 벗어났다. 아이고, 홀가분해라~. 도로에 벚꽃들이 만개해 어느덧 조금씩 지고 있다. 벚꽃 축제 플래카드가 붙어있는데, 날짜를 보니 오늘이 마지막 날이다. 그러고 보니 어제 오후 시장을 어슬렁거릴 때 외지 사람들을 많이 봤는데, 벚꽃 구경하러 온 분들이었던가 보다. 서산도 벚꽃이 피었을까? 떠나올 때 벚꽃 핀 걸 못 본 것 같은데…
1시간쯤 걸었을 때 축제 메인 장소가 보였다. 이른 시각이라 사람들이 안 보인다. 전날 치른 행사 가설물들만 덩그렇게 놓여있다. 행사 뒤끝은 왜 그리 을씨년스럽고 불편한 감정이 드는지? 밤새 떠들며 퍼마신 주정꾼의 토사물을 대하는 느낌이다. 행사의 번화함 때문에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축제 장소 뒤편에 '금곡사'라는 절이 있다. 김삿갓이 잠시 머물던 절이란다. 오호, 이거 뜻밖의 행운인걸. 아니 가볼 수 없지! 아담한 절로, 그리 깊은 산속에 있는 것이 아닌데 바위로 촘촘히 가려진 속에 있어, 깊은 산 중에 있는 절 같은 느낌을 준다. 이른 시각이라 그런지 인적이 없다. 절에서 바라보는 여명 풍경을 한 장 찍고 바로 내려왔다.
절 바로 아래 지점에 김삿갓 시를 새겨놓은 비석이 있는데, 쓸데없이 위용을 부려 커다랗게 만들어 놓았다. 한자 문맹이 된 이즈음, 누구 저 비석(비록 한글 해석이 딸려있긴 하지만)에 관심을 가지랴 싶다. 비석엔 세월의 때가 많이 묻어 있었다.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고, 명색이 한문을 가르쳤던 선생이라, 비석에 새겨진 한시문에 관심이 갔다. 한 수 읽어 보았다.
金錢七葉
千里行裝付一柯 천리 방랑길에 지팡이 하나
餘錢七葉尙云多 남은 돈 일곱 잎이 오히려 많도다
囊中戒爾深深在 주머니 속에 감추라 신신당부했건만
野店斜陽見酒何 석양에 주막에서 술을 보니 어찌하랴
짧지만, 방랑객이 느끼는 자포자기의 심사와 쓸쓸함 그리고 순간의 짧은 기쁨이 고스란히 표현돼 있다. 김삿갓, 시대가 버린 아니 스스로 시대를 버린 사람. 이문열은 『시인』에서 김삿갓을 시대를 버린 듯했지만 시대에 편입되려 애썼던 인물로 그렸는데, 일면 긍정되는 면이 있다. 시대를 버린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산도 시대의 한계를 못 벗어나지 않았던가! 만일 김삿갓이 진정으로 시대를 버렸다면 어땠을까? 서글픈 혹은 조롱 조의 시보다 뭔가 새로운 경향의 시를 썼을지도 모르고, 그것은 우리 문학사를 한결 더 풍요롭게 만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말이 쉽지, 자신이 사는 시대의 한계를 벗어난다는 것은 달팽이가 자기 껍질을 벗어던지는 것과 매한가지라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김삿갓에 대한 상념을 접고, 다시 발길을 옮긴다. 화사한 벚꽃 길이 잠시 무거웠던 마음의 무게를 가볍게 해 준다. 전남생명과학고등학교 제2 농장 실습실이 보인다. 문득 예전에 농공고에서 경험했던 농장 실습이 떠오른다. 모내기 실습이었는데, 학생들은 그저 구경꾼 같았다. 실습 시늉만 좀 하다 끝났다. 이후의 논 관리는 행정실에서 근무하는 분들이 도맡아 했다. 지금도 비슷하지 않을까? 저 제2 농장 실습실(축사 실습 장소로 보였다)도 마찬가지 아닐까? 우리나라는 실업보다 인문 중시 전통이 강한 데다 급격히 산업화 정보화되다 보니 농축 관련 실업교육은 거의 방치된 상태이다. 이러니 농축 관련 실업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나 교사 모두 의욕이 저하돼 있다. 교명도 바꿔보고 제빵과 같은 새로운 과도 신설해 보지만, 모두 언 발에 오줌눗기다. 현재 농축 관련 실업교육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 미로에 갇힌 상태와 같다. 아이고, 이거 또 무거운 생각을…. 제 버릇 개 못 준다더니, 선생질했던 표시는 꼭 하는구나. 이 사람아, 이제 무거운 생각은 넘에게 떠넘겨. 제 발로 교문을 나온 사람이 뭔 그리 무거운 생각을 하는겨. 맞어, 그렇지!
작천면(鵲川面)을 알리는 해태상이 눈에 보인다. 아니, 뭐여? 작천면인디, 웬 해태상? 까치상을 해놔야 맞는 거 아녀? 근본 없는 조형물이 눈에 거슬린다. 사람, 참 까다롭기는…. 그냥 아름답게 보면 안 돼? 그런가? '까치내재'라는 표지석이 보인다. 조금 전 보았던 말끔하지만 근본 없는 조형물보다 투박하지만 훨씬 정감 간다. 다만 좀 너무 큰 것이 흠이다. '까치내재'라, 선영(先塋)이 있는 청양군 대치면에도 까치내가 있는데, 같은 이름을 대하니('재'만 빼면) 친근감이 느껴진다. 이호우가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다”고 했는데, 딱 그런 느낌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등이라도 치고 지고/ 뉘 집을 들어선들 반겨 아니 맞으리.” 갑자기 나도 그러고 싶어 진다. 아, 이 사람아 정신 차려~ 어서 길을 떠나야지.
대대로 사용하는 문중 묘지터임을 알리는 비석들이 자주 눈에 띈다. 그런데, 왜 이리 흉물스러운 느낌이 드는 걸까? 관리가 안 된 탓도 크겠지만, 전통을 버린 시대에 전통을 고수하려는 고집스러움 때문에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한참을 가다 보니 앞서 흉물스러운 비석과 대조되는 산뜻한 문중 묘지 터 안내석이 눈에 띈다. '여산 송씨 추모공원 입구.' 작고 아담한 돌에 쓴 건데, 시대에 적응하면서도 전통을 지킨 아름다운 안내석이란 생각이 든다. 그러나, 혹 모르겠다, 추모공원 내에는 앞서 본 그런 흉물석이 서 있을는지도. 그러나 입구의 안내석을 보면 그런 흉물석은 없을 것 같다.
여기가 어디쯤인가? 네이버 지도 앱을 켤까 하다 귀찮아 그만뒀다. 길가의 한 건물이 밝은 햇살 아래 우두커니 서 있다. 폐업한 음식점 건물이다. 한때 사람들이 북적거렸을 텐데, 짐작컨대, 코로나19 여파로 폐업하지 않았을까 싶다. 지나쳤다가 다시 돌아와 사진을 찍었다. 웅장한 사명감으로! 오잉, 웅장한 사명감? 코로나19를 증명하는 한 역사적 사진으로 찍었단 말여! 참, 별것 아닌 것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기는. 뭐,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니지만….(이후 전남 지역을 지날 때 이런 류의 건물을 많이 봤다. 전남 지역의 경기(景氣)는 확실히 안 좋아 보였다. 여행하면서 느낀 건데, 전남보다는 전북, 전북보다는 충북, 충북보다는 경북, 경북보다는 강원, 강원보다는 서울의 경기가 좋아 보였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실제로 접하니 체감도가 달랐다. 조그만 나라에 이렇게 격차가 있는 건 심히 우려스러운 일이다.)
월출산이 저 멀리 보인다. 유채꽃이 도로 주변 밭에 가득하다. 일요일이라 나들이 나온 사람들로 제법 붐빈다. 월출산은 평지 돌출형이라 그런지 한결 더 위용 있게 보인다.
드디어, 입산 지점! 1시가 조금 넘었다. 드뎌, 점심다운 점심을 먹게 되었군! 근데, 어디로 가야지? 이럴 땐 사람 붐비는 음식점이 제일이지! 산 입구의 한 음식점이 유독 사람들로 붐빈다. 알바생으로 보이는 아가씨에게 산나물비빔밥과 도토리묵 한 접시를 시켰다. 밖에서 먹겠다고 말하고, 실외 식탁에 앉았다. 그런데, 손님이 미어터지는데 가냘픈 목소리의 내 주문을 저 아가씨는 기억하고 있을까? 살짝 걱정하고 있는데, 얼마 안 있다,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혹시 잊어버릴까 걱정했는데, 잘 기억하셨네요?” “잊지 않으려고 애썼어요.” 환하게 웃으며 답한다. 오매, 좋은 거! 아니, 이 사람이 또... 정신 차리게!
허기진 탓에 두 가지를 시킨 것인데, 생각보다 양이 많아 그런 건지 소화력이 떨어져서 그런 건지, 산채비빔밥은 다 먹었지만, 도토리묵은 1/3을 남겼다. 음식 남기는 걸 무척 싫어하는데,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싸달라기도 그렇고. 음식값을 지불하며 양이 많아 남겼다고 했더니, 예의 이 아가씨 또 밝게 웃으며 “그렇죠? 좀 많으셨을 것 같애요.”라고 답한다. 알바생인 것 같은데, 보통 뚝뚝한 알바생과 달리 상냥하다. 기왕에 하는 일, 즐겁게 하려 노력하는 듯 보여 좋아 보였다. 이 사람아, 알바생 아니고 이 집주인이거나 딸인지 어떻게 알어? 자기꺼니게 그렇게 즐겁게 일하는 건지도 모르지! 그렇네~. 하여간, 밝게 손님을 대하니, 좋구만.
월출산은 국립공원이다. 그런데, 입장료를 안 받는다. 오잉, 웬일? 도립공원인 홍성의 용봉산도 입장료를 받던데. 규정이 바뀐 건가, 아니면 원래 그랬나? 워낙 어디를 다녀보지 않아 세상 물정 모르기에 입장료 안 받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아무려면 어떤가, 돈 안 내면 좋지, 히히히. 등반 길이 꽤 가파르다. 중도에서 아래를 내려다봤는데, 순간 아찔했다. 이후 발끝만 보며 산 정상을 향해 걸었다. 정상인 천황봉에 오르니, 등산객이 붐빈다. 휴식을 취하는 한 분에게 사진 좀 찍어 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포즈를 다양하게 취해 보라며 성의껏 찍어 주신다. 감사합니다~. 산 아래 일대를 굽어본다. 가슴이 시원하다. 이런 맛에 산 정상에 오르는 거겠지!
그나저나 숙소를 잡으려면 빨리 하산해야지. 중반 이상을 내려왔을 즈음, 한 등산객을 만났다. “4시 이전에는 하산하라고 돼 있던데, 너무 늦으신 것 같아요.” 했더니, 씩 웃으며 “영암읍에 살아, 자주 옵니다! 조심해서 가세요.” 한다. 주제넘은 걱정을 한 셈이다. 뭐, 그래도 나쁜 일을 한 건 아니니.
하산해 영암읍의 숙소를 찾으려 앱을 켜려다 월출산으로 들어서는 도로 입구에서 봤던 ‘윙 무인텔’을 떠올렸다. 그래, 오늘은 저기서. 무인텔이 어떤 덴 지 경험도 할 겸. 차단막이 내려져 있지 않은 곳에 들어가 결재기를 보니 ‘대실’만 한다고 나오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프런트로 연락하라고 돼있다. 프런트에 연락해 ‘숙박’이 가능하냐고 물으니, 가능하단다. 전화를 끊고 나니, 화면의 ‘대실 3만 원’이 ‘숙박 5만 원’으로 바뀌어 있다. 현금 결제만 가능하고 만 원권만 쓸 수 있다는 문구가 결재기에 쓰여 있다. 으흠, 세금을 피하려고 그러는구나. 5만 원을 채우니 1층에 차단막이 내려오고(결재기는 2층에 있다), 숙소 입구 문이 저절로 열린다. 별도의 키가 필요 없다. 내부가 넓고 깨끗하다. 전날 잤던 모텔과 1만 원 차이인데, 이렇게 차이가 나다니. TV 탁자에 자그마한 지퍼백이 있는데 1회용 세면도구와 거시기 기구까지 다 들어있다. 으흠, 이래서 거시기한 사람들이 무인텔을 찾는 거구먼.
샤워와 예의 빨래를 마치고 침대로 점프했다. 아흥, 좋아라! 야한 영상을 볼까 하여 리모컨을 주물럭거리는데, 야한 영상을 보려면 결재를 해야 한다고 나온다. 아이고, 그렇게까지는 못하겄다! 뉴스를 조금 보다, 누룽지와 모닝빵 사과로 저녁을 때웠다. 『고문진보』 한 대목을 읽은 뒤, 다시 리모컨을 돌리며 이것저것 구경을 했다(집에 TV가 없어서 그런지 어디서 TV를 보게 되면 정신없이 본다). 그런데 채널은 많은데, 내용이 대부분 시덥잖다. 소문난 잔치 먹을 것 없다는 격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유튜브를 즐겨보나?
아, 참 휴대폰 충전을 해야 한다. 무인텔엔 충전기도 있다. 휴대전화에 충전기를 꽂아 놓은 뒤, 가족 단톡방에 4신을 올리고, 다음 날을 위해 억지로 잠을 청했다. 많이 걸은데다 등산까지 해 꽤 피곤하다. 내일은 나주까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