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의 「월하독작(月下獨酌)」석판
일경일사 부장일지(一經一事 不長一智). 한 가지 일을 경험하지 않으면 한 가지 지혜가 자라지 않는다란 뜻으로,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소수 뛰어난 사람은 선천적으로 지혜가 뛰어나지만, 대다수 보통 사람은 경험을 통해서 지혜를 획득한다.
술을 먹을 줄 알거나 즐기는 사람과 술을 먹을 줄 모르거나 즐기지 않는 사람은 술에 대한 앎이 다를 것이다. 물론 이 경우도 뛰어난 소수의 사람은 술을 먹지 않고도 술에 대한 앎이 있을 수 있겠지만 대다수 보통 사람은 술을 경험한 이후에야 술에 대한 앎을 깨우칠 수 있을 것이다.
한시에는 술을 소재로 활용한 시가 많다. 이 경우 그 시를 이해하려면 어떡해야 할까? 그렇다! 술을 잘 마셔 술에 대한 앎이 있는 사람이라야 그 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술에 대한 경험이 없는 평범한 이라면 그 시를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이 경우도 뛰어난 이는 예외일 수 있겠지만.
대학시절 '한시론(漢詩論)'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강의를 담당하신 교수님은 정말 성실하신 분이었다. 마치 초등학교 교사처럼 자세히 성심성의껏 강의하셨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분의 한시 수업은 재미가 없었다. 술이 소재로 활용된 시 풀이도 매한가지였다. ‘한시를 전공한 분이라는데….’ 이런 의문이 일었다. 이분은 술을 드시지 않았다. 가끔 드시는 모습을 뵈긴 했는데 마지못해 드시는 모습이 역력했다. 학생들과 어울리시지도 않았다.
'교양 한문'을 담당하신 교수님이 계셨다. 이분의 원래 전공은 동양철학, 중에서도 경학(經學)이었다. 이분이 '교양 한문'강의하는 것을 도강(盜講) 한 적이 있는데, 원래 전공이 철학 쪽이라, 문학 쪽은 아무래도 전달력이 약할 줄 알았는데 예상 밖의 강의를 하셨다. 시를 해석할 때, 특히 술을 소재로 한 시를 해석할 때는 정말 실감 나게 하셨다. ‘이상하다. 어째 한시를 전공하신 분보다 더 실감 나게 강의를 하시지?’ 이런 의문이 들었다. 이분은 술을 좋아하셨다. 학생들과 격의 없이 어울려 술도 나누고 삶과 철학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하셨다.
비전공자의 강의가, 특히 술을 소재로 삼은 한시 강의에서, 전공자의 강의보다 더 실감 나게 느껴진 비결을 알아내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바로 '체험'에 그 이유가 있었다. 술을 먹어보고 술에 대해 앎이 있는 이가 술을 소재로 다룬 시를 풀이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이가 풀이하는 것은, 비록 비슷한 풀이라 해도, 전달되는 감흥은 다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무정물(無情物)이 아니라 유정물(有情物) 이잖는가!
사진은 이백(李白, 701―762)의 「월하독작(月下獨酌)」을 새긴 것이다. 시를 실감 나게 강의해주셨던 교수님이 강의했던 시 중 하나이다. 이 시를 강의할 당시 그 교수님은 자신이 예전에 이 시를 강의한 적이 있는데 수강했던 무용과 학생이 이 시를 무용발표회 팸플릿에 사용했다는 에피소드를 소개했었다. 실감 나게 시를 해석했기에 그런 일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그분의 술에 대한 앎과 무관치 않을 것이고. 당시 교수님의 에피소드를 들으며 이런 생각을 했었다. ‘한시론을 강의한 교수님이 이 시를 강의했다면 그런 일은 절대 없었을 거야!’
한시를 읽어 보자.
花間一壺酒 화간일호주 꽃 사이 한 동이 술
獨酌無相親 독작무상친 친한 이 없이 홀로 마시네.
擧盃邀明月 거배요명월 잔 들어 밝은 달 맞이하고
對影成三人 대영성삼인 그림자 대하여 셋이 되었네.
月旣不解飮 월기불해음 달은 술 마실 줄 모르고
影徒隨我身 영도수아신 그림자는 그저 나만 따를 뿐.
暫伴月將影 잠반월장영 잠시 달과 그림자 벗하나니
行樂須及春 행락수급춘 때는 봄 행락 철.
我歌月徘徊 아가월배회 내 노래하니 달은 배회하고
我舞影凌亂 아무영능란 내 춤추니 그림자는 어지러워.
醒時同交歡 성시동교환 깨어선 함께 즐기고
醉後各分散 취후각분산 취한 뒤는 제각기.
永結無情遊 영결무정유 길이 무정한 사귐을 맺어
相期邈雲漢 상기막운한 아득한 은하에서 다시 만나기를.
의미는 굳이 풀지 않아도 이해가 될 것 같다. 다만 이 말만 할까 한다. 술을 들 줄 알고 좋아하는 이는 이 시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이는 이 시를 진정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당신을 어떠냐고 물을 것 같다. 후후, 글쎄요?
낯선 한자를 자세히 살펴보자
壺는 병의 모양을 그린 것이다. 윗부분은 뚜껑, 아랫부분은 몸체를 그린 것이다. 병 호. 壺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投壺(투호), 壺中物(호중물, 술) 등을 들 수 있겠다.
酌은 酉(酒의 옛 글자, 술 주)와 勺(구기 작)의 합자이다. 상대의 술잔[勺]에 술을 따르며 마시기를 권유한다는 뜻이다. 따를 작. 酌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對酌(대작), 添酌(첨작) 등을 들 수 있겠다.
邀는 辶(걸을 착)과 敫(부를 교)의 합자이다. 오라고 요청하다란 뜻이다. 辶으로 뜻을 표현했다. 敫는 음(교→요)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상대를 불러오게 한다는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맞이할 요. 邀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招邀(초요, 불러서 맞이함), 邀擊(요격, 맞이하여 침) 등을 들 수 있겠다.
隨는 辶(걸을 착)과 隋(墮와 통용, 떨어질 타)의 합자이다. 따라가다란 뜻이다. 辶으로 뜻을 표현했다. 隋는 음(타→수)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떨어지는 것은 위에서 아래로 자연스럽게 내려오는 것이듯, 따라가는 것도 뒷사람이 앞사람을 자연스럽게 좇아가는 것이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따를 수. 隨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隨筆(수필), 隨行(수행) 등을 들 수 있겠다.
暫은 日(날 일)과 斬(벨 참)의 합자이다. 잠시, 잠깐이란 뜻이다. 日로 뜻을 표현했다. 斬은 음(참→잠)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물건을 벨 때 단박에 베듯 그같이 짧은 시간이 잠시, 잠깐이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잠시(깐) 잠. 暫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暫時(잠시) 暫定(잠정) 등을 들 수 있겠다.
徘는 彳(걸을 척)과 非(아닐 비) 합자이다. 천천히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한다는 뜻이다. 彳으로 뜻을 표현했다. 非는 음(비→배)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제대로 걷는 것이 아니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노닐 배. 徘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徘徊(배회) 정도를 들 수 있겠다.
徊는 彳(걸을 척)과 回(돌 회)의 합자이다. 제자리에서 맴도는 물처럼 한 곳에서 왔다 갔다 한다는 뜻이다. 노닐 회. 徊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彽徊(저회, 머뭇거림) 정도를 들 수 있겠다.
醒은 酉(酒의 옛 글자, 술 주)와 星(별 성)의 합자이다. 술이 깨다란 뜻이다. 酉로 뜻을 표현했다. 星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밝고 분명한 빛을 발하는 별처럼 술이 깨면 그같이 정신이 맑고 분명하다는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술 깰 성. 醒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覺醒(각성), 醒寤(성오, 잠이 깸) 등을 들 수 있겠다.
邈은 辶(걸을 착)과 貌(모양 모)의 합자이다. 왕래하기가 곤란할 정도로 멀다란 뜻이다. 辶으로 뜻을 표현했다. 貌는 음(모→막)을 담당한다. 멀 막. 邈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邈然(막연, 근심하는 모양 혹은 아득한 모양), 邈志(막지, 원대한 뜻) 등을 들 수 있겠다.
한시를 실감 나게 강의했던 교수님께 한시를 실감 나게 읽을 수 있는 비결이 있냐고 여쭤봤다. 교수님이 대답하셨다. “비결? 글쎄 난 전공자가 아니라…. 하지만 소리 내어 많이 읽으면 시를 잘 알게 되는 것 같더군. 난 보통 한시 한 편을 백번 이상은 소리 내어 읽는다네.” 이후 그 교수님 말대로 한시를 소리 내어 많이 읽어보니 그렇지 않은 때와 한시의 맛을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교수님은 술에 대한 앎에다 노력까지 덧보탰기에 술을 소재로 한 시를 실감 나게 강의하실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 그런 강의를 하지 못하셨던 분은, 비록 한시를 전공하셨다지만, 이와 반대였기에 건조한 강의를 하셨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너무 무례한 추측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