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도보 국토 종단기(제6화)
4월 4일 화요일
4시, 눈을 떴다. 일어나기 싫었지만, 용기를 내어 몸을 일으켰다. 어제 확인한 나주에서 담양 버스 터미널까지의 거리가 50km에 12시간 53분으로 돼 있어 게으름을 부리면 안 될 것 같았다. 저녁 6시에는 숙소에 들어가야 하니 아침 6시 전에는 출발해야 한다. 중간에 경로 변화가 생기면 예정 시간보다 더 걸어야 할지도 모른다(불길한 예감은 적중하는 것인지, 예정 시간보다 더 걸었고 목표 지점까지도 이르지 못했다). 게다가 오후에 비 예보도 있다. 샤워한 뒤 누룽지와 모닝빵 딸기 약간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봉지 커피 한잔을 타 마셨다. 역시, 불끈 힘이 솟는다! 그런데 종이컵에 쓰인 문구가 정겹다. “오늘 하루도 힘내세요. 당신을 응원해요.” 흡사 나를 위해 특별 제작한 종이컵 같다. 문자 디자인도 앙증맞다. 달콤한 컵, ‘벌꿀’ 호텔에 어울리는 종이컵일세~.
5시 반경 호텔을 나섰다. 앱으로 경로 확인을 하고 이정표를 보며 걷기 시작했다. 한참을 걷는데 영산강을 따라 천변에 형성된 벚꽃길이 눈에 띈다. 저쪽으로 한 번 걸어볼까? 그러다, 길 잃으면? 앱으로 다시 찾으면 되지! 큰길을 벗어나 작은 길로 접어들어 천변의 벚꽃길을 걸었다. 날씨만 좀 더 화창하면 좋겠는데, 구름 낀 어둑한 하늘 때문에 환한 벚꽃이 약간 빛바래 보인다. 그래도 차 씽씽 달리는 도로 걷는 것보다는 백배 낫다. 천변 길이 끝나는 즈음 큰 도로로 나가는 길이 있어 아까 걷던 큰 도로와 만날 것 같았는데, 아니다. 이런~! 앱을 켜니, 아까 처음 경로를 바꿨던 지점에서 다시 출발해야 하는 것으로 나온다. 아니, 걸어온 길이 얼마인데, 다시 그 길을? 방법이 없을까? 앱을 무시하고 저 멀리(?) 보이는 큰 도로로 들어설 수 있는 길을 대충 헤아려 전진했다. 결국, 성공! 무식하고 용감한 자 앞에 장사 없다!
큰 도로에 다시 들어서기 전 작은 길을 지날 때 미나리 채취하는 분들을 보았다. 바로 사진을 찍으면 실례가 될 것 같아 얼마간 간 뒤 사진을 찍었다. 굳이 사진을 찍은 건 동남아에서 온 듯한 젊은 분들이 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농촌 지역에서 이분들을 보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돼버렸지만, 미나리꽝에서 일하는 것은 처음 보았다. 최 교수가 감소하는 인구 문제를 이민으로 해결하면 된다고 했는데, 이미 어느 정도는 그런 단계에 들어선 것도 같다. 잠시 와서 일하는 분도 있지만, 정착하는 분도 많기 때문. 문제는 우리의 위화감과 그분들의 소외감을 어떻게 해소하느냐 하는 것 같다. 외적인 지원과 배려보다, 내적인 거리감의 극복이 더 중요해 보이는 것. 동네 구멍가게에 갔다가 깜짝 놀란 일이 있다. 주인아저씨가 우리를 대하는 태도와 이분들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반말은 예사고, 팔기 싫은 물건을 억지로 파는 듯한 태도로 그분들을 대했다. 공짜로 가져가는 것도 아니고, 매상 올려주는 손님을 왜 그렇게 대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만약 그분들이 백인이었데도 그렇게 대했을까? 자, 생각은 그만하고, 부지런히 걸어야지? 갈 길이 멀어!
광주와 담양으로 가는 이정표가 보인다. 그런데 광주에 들어서면서, 큰 도로로 가는 게 살짝 무서워 앱을 켜고 안전한 도로를 안내받아 경로를 바꿨다. 아, 그런데, 이게 사단을 일으켰다. 광주 외곽을 돌아가게 안내하여 시간을 너무 낭비하게 만든 것이다. 게다가 담양 이정표도 찾을 수 없어 당황스러웠다. 아까 봤던 이정표를 따라 목숨 걸고(?) 걸었으면 이런 사단이 안 생겼을 텐데…. 후회막급이었다. 광주 외곽은 우중충했다. 도시 외곽이 원래 그렇긴 하지만, 흠모했던 지역이라 그런지 실망이 컸다. 지저분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인도도 관리가 안 돼 엉망이고 헙수룩한 공장도 많고….
이리저리 헤매다 드디어 담양 가는 이정표를 발견했다! 그런데, 물경 36km나 더 가야 한다. 오후 3시인데. 하지만 거리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가야 할 길을 찾은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차들이 쌩쌩 달리는 대로 옆을 걷는 것도 무섭지 않았다. 삶도 그렇지 않을까? 길이 보이지 않기에 힘든 것이지, 길이 확실하게 보인다면 닥쳐오는 난관을 능히 극복해 낼 수 있을 것이다. 3시 30분.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많은 양이 아니라 처음에는 그냥 맞았지만 계속 맞다 보니 잠바가 축축해져, 할 수 없이 우산을 꺼내 들었다. 발걸음이 절로 빨라진다. 차량 운전자들은 속으로 욕했을 것 같다. ‘아니, 어둑한 날씨, 비도 오는데, 저 웬 미친놈이 우산까지 쓰고 도로 한 곁을 걷는 겨. 뒈질라고 환장했나!’
얼마나 걸었을까, 편도 1차의 도로로 접어들어 걷는데 ‘죽녹원, 메타세콰이어 산책길, 담양’ 등을 알리는 이정표가 보인다. 드디어 담양 가까이 온 거구낫! 그런데 이정표에서 봤던 킬로 수의 담양에 왔는데 왜 이리 숙소 같은 것이 안 보이냐? 이제 사방은 캄캄하고 빗발은 점점 굵어진다. 신발은 물에 젖어 물컹거린다. 미치겠다! (뒤늦게 안 것인데, 이정표에 나온 행정구역에 들어섰다 하여 바로 무슨 시설이 있는 게 아니다. 이정표는 단지 그 행정 구역의 도입 지역을 안내해 주는 것뿐. 시설이 있는 곳에는 한참 더 들어가야 한다. 넘들은 다 아는 사실을 나는 이제야 안 것이다. 바보~.)
부지런히 담양 읍내를 향해 걷는데 길 건너편에 ‘해피 타임’이란 무인텔이 보인다. 저기서 하룻밤? 아녀, 목적지까지 가야지! 그런데 배가 너무 고프다. 그러고 보니, 점심도 굶었네. 조금 걷다 보니, 국밥집이 나온다. 오매, 반가운 거! 문을 여는데, 왠지 분위기가 썰렁하다. 혹시…. 주인으로 보이는 사장이 먼저 묻는다. “주문하신 거 찾으러 오셨나요?” “그게 아니고, 식사하려고….” “죄송합니다. 마감돼서.”
가게 옆에 ‘CU 편의점’이 있어 뭘 살까 하다가 마음을 바꿨다. ‘아녀, 식사다운 식사를 해야지.’ 발길을 옮기는데, 얼마 안 가 갈등이 생긴다. 이 사람아, 담양 읍내에 언제 들어설 줄 알어. 시방 비가 이렇게 오고 사방이 깜깜한디. 가다가 무슨 사고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려. 결단을 내려. 아까 그 무인텔서 자고, ‘CU’에서 그냥 요깃거리 사도록 혀. 그래, 아쉽지만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 짓자! 발길을 되돌려, ‘CU’를 향하는데, 왜 이렇게 ‘CU’가 반가운지. 정말, Nice to see you 닷! 만약, 저 편의점이 없었다면 나는 저녁을 굶을 수밖에 없잖은가. 평소 24시 편의점에 대해 그리 좋은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았는데, 힘든 상황에서 24시 편의점을 대하니, 그런 생각이 사라졌다. 그래,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지. 함부로 나의 잣대를 들이대 평가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아. ‘CU’에 들러 인스턴트 떡국과 내일 아침에 먹을 모닝빵을 샀다. 그리고 초코 우유도 하나. 그리고, ‘해피 타임'으로!
간판이 번쩍거려 입구를 찾기 쉬울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입구 찾기가 쉽지 않다. 뭐여~. 겨우 입구를 찾아서 들어가니 다행히 두어 군데 차단막이 아직 내려있지 않았다. 그런데, 평일 숙박 가격치고 가격이 너무 비싸다. 6만 원짜리도 있고 7만 원짜리도 있다. 5만 원짜리도 있긴 한데 이미 차단막이 다 내려져 있다. 아이고,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리게 생겼나? 6만 원짜리를 결재하고 방에 들어섰다. 예의 그 넓고 깨끗함. 하루 내내 쌓였던 게다가 비까지 맞아 힘들었던 피로가 싹 가시는 기분이다. 고맙게 스타일러도 있다. 시계를 보니, 저녁 7시 30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우선, 초코 우유를 벌컥벌컥. 그리고 떡국을 먹었다. 조미료 냄새가 다소 느끼했지만, 더운 국물 음식을 먹을 수 있어 좋았다. 샤워를 하고 빨래를 하여 넌 뒤, 평소 빨래하기가 부담스러웠던 잠바와 기모 바지를 스타일러에 넣어 건조시켰다. 비까지 맞아 더 부담스럽게 된 옷을 말릴 수 있어 더없이 좋았다. 그런데, 순간, 신발도…. 사장이 알면 질겁을 할 테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신발을 최대한 깨끗하게 한 뒤 옷걸이에 끼우고 스타일러를 가동시켰다. 위~잉. 사장님, 죄송합니다~~.
침대에 들었다. 늦은 시간(10시가 넘었다)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또 색심(色心)이 들어 리모컨을 들고 야한 영상을 볼까 하여 여기저기 눌러보는데, 다행히(?) 걸리는 게 있다. VIKI. 일본 거시기 채널이다. 으흐흠, 좋아요, 좀 더 세게…. 조금 보다 보니 괜히 욕이 나온다. 에라, 씨부럴 X들. 좀 해도, 인간적으로 하면 안 되냐. 왜 그리 가학적이고 피학적이냐. 그러니 전대미문의 ‘위안소’를 설치해 운영했겄지. 하여간 종자들 참…. 응큼한 마음을 만족시켜 줬으니 감지덕지해야는데, 욕이라니…. 이 사람, 정신 약간 이상한 거 아녀. 그런지도 모르제. 그렇지만 즐겁기보단 욕지기 나는 게 사실이여. 에이, 잠자리만 뒤숭숭하겄다. TV를 껐다.
가족 단톡방에 6신을 올리고, 세심(洗心)을 위해 억지로(!) 『고문진보』한 소금을 읽은 뒤 잠자리에 들었다. 제발 꿈자리 뒤숭숭하지 않기를! 나무관세음보살~. 내일은 순창읍까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