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도보 국토 종단기(제15화)
4월 13일 목요일
센트럴 파크, 아니 새재 파크에서 눈을 떴다. 시계를 보니 5시다. 그 동네에선 달리기 들을 하더만, 나는 밤새 산을 탔는지 무릎이 좀 아프다. 아니, 나 같은 건각(健脚)이…. 맨손 마사지를 하고 멘소래담을 발랐다. 발도 좀 부어있다. 무릎만 마사지했더니 심통이 났나 보다. 살살 어루만져 달래줬다. 앱을 켜고 괴산 버스 터미널까지 거리를 살펴보니 76km에 도보로 21시간 2분 걸린다고 나온다. 걸어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조령 제3관문을 보고 수안보까지만 걷고 버스를 타야 할 것 같다. 살짝 아픈 무릎과 심통 난 발에겐 다행이다. 어제 산 간식거리로 아침을 먹고(오, 아침다운 아침이여, 언제나 내게 찾아올 것이냐?) 세수를 한 뒤 제반 아침 의식 행사를 모두 마쳤다. 무릎과 발에게 힘내라고 봉지 커피도 한 잔 마셨다. 힘이 불끈! 파크 현관 앞에 서니, 6시 5분이었다. 자, 제천을 향하야 출~발~! 숙소는 ‘드림 모텔’로 정했다. 가성비 짱, 친절 짱이란다.
원흉 아닌 원흉, 스토리 모텔을 지난다. 그런데 어제와 달리, 건물을 보니, 마음이 짠하다. 폐업을 결정했을 때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모르긴 해도 코로나19 여파가 아닐까 싶다.) 위로 같지 않은 위로를 건네 본다. “언젠간 호시절이 오겠죠. 너무 낙심 말고 기다려 보세요!” 부디, 그런 날이 빨리 오기를!
원풍리 ‘마애이불병좌상(磨崖二佛竝坐像)’이 보인다. 두 분의 부처님이 나란히 앉아있는 모습은 처음 본다. 한 분은 필시 석가모니불일 터이고, 또 한 분은 누구실까? 고려 때 조성되었다는데, 불교 왕국 시절의 작품치곤, 미감이 형편없다. 서산에 살기에 나도 모르게 ‘서산마애삼존불’의 그 온화한 미소와 우아한 자태를 기준 삼아 봐서 그런지도 모르겠다(한 번 높아진 눈높이는 내리기가 쉽지 않다). 마애불은 귀족보다 서민과 가까운 조상(彫像)이다. 저 마애불도 그럴 터. 어떤 간절한 바램을 가지고 돌을 깎았을까? 그리고 그 바램은 이뤄졌을까? 부디, 이뤄졌기를! 아미타파~. 발걸음을 옮기다 다시 한번 뒤돌아봤는데, 무뚝뚝한 얼굴로 멍하니 바라보고만 계신다. 아이고, 살가운 말씀 좀 한마디 해주시지. 서산마애삼존불님은 갈 때마다 살갑게 말씀해 주시는데. 그러나, 무뚝뚝도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말로 빚어지는 인간사 비극이 얼마나 많던가! 그래도 여전히 좀 서운하다. 길 가는 나그넨데, 따뜻한 말 한마디 해주시면 어디가 덧나시나. 괜스레 앙탈을 부려본다.
아니, 저 산 벼락에 점점이 박혀있는 것은 무엇이냐! 돌도 아니요, 나무도 아니요, 사람이었다! 무슨 공사를 하기에 저토록 위험하게 일을 하는 것인지? 안전장치야 했겠지만,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린다. 더구나 약간의 고소공포증이 있는 내겐 더더욱 위험해 보인다. 짐작컨대, 낙석 방지 시설을 점검 보완하는 것 같다. 평소 무심하게 봐왔던 낙석 방지 시설이 저런 위험 속에서 만들어진 거구나! 생명을 건 작업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부디 안전하게 작업들 마치시기를! 아들아이가 복무하는 JSA에서는 생명 수당이라는 것을 받는다. 부대를 방문했을 때 아들아이가 제 엄마에게 PX에서 화장품을 사주려고 하기에 “네가 무슨 돈이 있다고?” 했더니 생명 수당 받아서 괜찮다고 한 적이 있다. 느낌이 참 거시기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아내는 아들아이의 선물에 고마워하면서도 연신 거시기한 마음을 토로했다. “아이고, 이거 참, 아들내미 생명 수당으로 화장품을 사다니….” 저분들도 생명 수당을 따로 받으실까? 받으셨으면 좋겠다!
조령 제3관문으로 가는 안내판이 보인다. 가기로 마음먹었지만, 무릎과 발이 아우성을 쳐 살짝 망설여진다. 앱으로 살펴보니 9.1km에 45분 걸린다고 나온다. 왕복이니 2시간은 잡아야 한다. 그냥 지나칠까? 그런데 그냥 가면 왠지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다. 아우성을 싹 무시하고 관문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산길 중간중간에 새재를 노래한 한시들을 예쁘장한 목판에 새겨 세워놓았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갈 수 있나! 하나씩 소리 내 읽어 보았다(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인적이 거의 없어 미친놈 소릴 들을 염려는 없었다). 그런데 시 한 수가 유독 마음에 와닿는다.
鳥嶺山路險 조령 산길 험한데
之子欲何之 그대는 어디로 가는가
天寒爲客日 추운 날씨 나그네 신세
月滿望鄕時 둥근달 아래 고향을 그리네
추운 날씨 험한 산마루에 선 나그네의 처량한 심사가 절절히 느껴진다. 처량한 심사란, 개인사를 배경으로 보면 떠돌이 신세에서 오는 비애감일 테고, 시대사를 배경으로 보면 힘든 정치 상황에 서 있는 지식인의 고뇌일 터이다. 아무려나, 읽을수록 처량함이 덧보태진다. 장난 삼아 글자만 두어 자 바꿔 화답시를 지어봤다.
鳥嶺山路險 조령 산길 험한데
之子欲何之 그대는 어디로 가는가
天熱爲客日 더운 날씨 나그네 신세
日中望梅時 한낮 태양 아래 매실을 그리네
저 이는 떠돌이 신세라 고향을 그리워했지만, 나는 더워서 목마를 지경이라 매실을 그리워했다(매실을 생각하면 입에 침이 고여 갈증이 해소된다. 망매해갈(望梅解渴). 조조가 전시 위급상황에서 발휘한 기지라고 전한다). 정영방(한시 작자, 1577-1650)님, 죄송합니다. 고귀한 님의 정서를 가지고 저급한 장난질 쳐서. 그나저나 예쁘장한 한시 목판 내용엔 띄어쓰기와 해석 어색한 곳이 있다(뭐가 잘못돼 있는지는 사진을 보시며 각자 판단해 보시길! 해답은 이미 밝혀 놓았다). 그리고 시의 제목도 달아놓지 않았다. 살짝, 아니 많이 아쉽다. 제작자님들, 설치물을 보통은 대강 보지만 저처럼 유심히 보는 사람도 있어요. 좀 더 세심한 제작 부탁드려요~.
드디어 역사적인 조령 제3관문 앞에 섰다. 태양을 보며 찍고 또 등지고 찍어보니, 관문에 대한 느낌이 상반되게 느껴진다. 역사적 사실과도 일치되는 느낌. 만약 신립 장군이 탄금대로 군사를 옮기지 않고 여기서 왜군을 방어했다면 어땠을까? 왜군도 당연히 여기서 조선군이 방어하리라 생각했고 힘든 전투일 것이라 생각했다는데, 너무도 쉽게 뚫린 관문에 그들도 의아했을 것이다. 여기서 신립 장군이 치열하게 방어전을 펼쳤다면, 후세 사가들이 말하는 대로, 선조의 의주 몽진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이후의 임란 전개는…. 조령 관문을 보며 지도자의 판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느낀다. 통상 국가에 분단국가에 4개 강국에 둘러싸인 반도 국가인 우리에게 지도자의 판단은 얼마나 중요한가. 해외에만 나갔다 오면 호갱이 돼 돌아오는 굥의 모습을 볼 때마다 모골이 송연해진다. 이게 어디 나만의 심정일까? 무거운 마음을 안고 하산을 한다.
길가에 소박한 민가 한 채가 보인다. 넉넉해 보이진 않지만, 집 전체를 깔끔하게 가꿔 놓았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이상적으로 그렸던 전원의 삶이 그대로 구현된 듯한 느낌의 집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수염 허연 도인풍의 노인이 아무 말 없이 반갑게 맞아줄 것만 같다. 기념으로 사진 한 장, 찰칵.
월악산 휴게소라는 데가 보인다. 휴게소를 보니 갑자기 점심 생각이 난다. 시계를 보니 점심시간에 가깝다. 그런데 휴게소라는 게 좀 걸린다. 정신없이 어수선한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엣다, 모르겠다, 그러거나 말거나 뭐라도 좀 사 먹고 가자. 밥 먹을 장소 만나기도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머뭇거리던 발걸음을 돌려 휴게소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 별천지다! 어제 봤던 진남 휴게소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다. 혹시 진남 휴게소를 운영하는 양반이 여기도 운영하는 건가? 메뉴를 보다 보니 간고등어 백반이 눈에 띈다. 경상도에서 못 먹은 간고등어를 여기서 한 번 먹어보자. 가격이 약간 세다. 만 이천 원. 도보 여행하며 이렇게 비싸게 먹어도 되는겨. 잠은 어쩔 수 없으니 그렇다 쳐도 먹는 것은 좀 싸게 먹어야지. 만 원 이상 되는 건 좀 곤란혀. 아니, 뭐여? 평생 일하고 모처럼만에 긴 여행 나왔는데 그깟 만 이천 원이 아까워서 망설이는 겨. 너무 자신에게 박하구먼. 두 놈이 또 다툰다. 결과는, 뒷 놈이 이겼다. 여기도 식혜가 있다. 다행히 자제해서 먹으라는 문구는 없었다. 오만한 자세로 과감하게 3잔을 들이켰다. 주문한 것을 가져가라고 할 줄 알았는데, 가져다준다. 그것도 젊고 예쁜 아가씨가. 오매, 좋은 거. 하여간 이 자가…. 정신 차려! 아가씨에게 물어봤다. 혹시 진남 휴게소 사장님이 여기도 운영하냐고. 내부 시설이 같은 걸 보니 그럴 것 같다며. 아가씨가 방긋 웃으면서 답했다. “아녜요, 달라요. 그때(휴게소 지을 당시) 이런 인테리어가 유행이어서 그래요.” 그랬구나. 땀과 피곤으로 절어 있어서 그런가, 평소 화려한 시설을 좋아하지 않음에도, 모처럼 눈 호강을 시켜주는 화사한 인테리어의 휴게소가 고맙게까지 느껴진다(간고등어 백반도 맛있었다). 나는 확실히 선비 체질은 아닌 것 같다.
점심을 먹고 나서 그런지 약간 노곤하다. 발걸음이 느려진다. 수안보에 들어섰다. 신혼여행지로 왔던 곳이다. 넘들은 해외여행, 하다못해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갔는데, 우리는 수안보와 충주호 설악산으로 신혼여행을 갔다. 이모가 해주신 반찬도 싸가지고 갔는데, 지금 생각하면 왜 그런 궁상을 피웠는지 모르겠다. 처가 태클을 걸었으면 절대 안 했을 텐데, 당시는 처의 눈에 콩깍지가 씌어져 내 말을 무슨 하느님 비서실장 말처럼 따랐다. 신혼여행에 그것도 피 뜨거운 젊은 남녀가 여행을 가는데 침실이 중요하지 그깟 화려한 경치가 무슨 소용이 있냐, 라고 강변도 해보지만 역시 궁상은 궁상이었음이 틀림없는 것 같다. 조카가 집안 형편이 어려운데도 신혼여행을 유럽으로 가는 걸 보고, 처음에는 혀를 찼지만, 나중엔 ‘그려, 잘했다’ 하고 인정해 줬다(속으로). 그런데 재미난 건 처가 여태까지 그 궁상맞은 신혼여행에 대해 한마디도 불평을 안 한다는 것이다. 신혼여행 중 내가 짜증 낸 것에 대해서는 뭐라고 흉봐도. 이래서 천생연분인가? 아니다. 속에 품고 있으면서 언젠가 복수하기 위해 날을 갈고 있는지도 모른다. 궁상맞은 신혼여행에 대해 조금이라도 후회하는 빈틈을 보여선 절대 안 된다! 으흠!
한때 명성을 날렸던 온천 휴양지 수안보. 지금은 밥상머리에 앉은 파리 날리는 형국이다. 입구에 들어설 때 수안보 초등학교를 봤는데, 학교 건물 규모가 꽤 커 보였지만 정작 학생 수는 100명이 될까 말까 하단다(버스 승강장에서 어느 노인께 들은 말이다). 또 지방 소멸 인구 소멸의 현장을 본다. 자, 마음 아픈 얘기는 그만~.
수안보에서 축지법(버스 타는 거야 말로 축지법이 아닐까?)을 사용하야 충주를 거쳐 제천에 뚝딱 도착했다. 아, 뚝딱은 아니다. 수안보에서 충주까지 40분 정도 소요됐고, 충주에서 제천까지는 1시간가량 소요됐다. 중간에 터미널에서 기다린 시간까지 합하면 근 3시간 버스를 탔다. 다소 느긋한 마음으로 버스를 타서 그런가 간간 졸았다. 제천에서는 버스 터미널까지 가지 않고 중도에 내렸다. 걸으면서 아버지의 체취를 맡아보고 싶었기 때문. 아버지는 왜 제천에 자주 오셨던 것일까? 버스 터미널 근처에 있는 ‘드림 모텔’을 향해 걸으면서 제천의 공기 중에 섞여 있을 아버지의 체취를 맡아본다.
아버지는 한의사이셨는데(돌팔이 아니다. 정식 한의사이셨다) 이상하게 어머니께 살림할 비용을 내놓지 않으셨다(살림은 어머니가 바느질로 유지하셨다). 그리고 주말이면 어김없이 출타하셔서 월요일 아침 녘에 돌아오셨다. 그때 어디 갔다 오셨냐고 여쭈면 때로는 조치원 때로는 이곳 제천에 다녀오셨다고 했다. 그러나 머리가 조금 굵어질 무렵 그 말씀은 거짓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아버지의 가방엔 늘 마권(馬券)이 들어 있었는데, 조치원과 제천에는 경마장이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조치원이나 제천에 아주 안 들르신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이곳에 있는 건재 약국의 달력을 가져오신 때도 있었기 때문. 아버지는 평생을 그렇게 사셨다. 당연히 어머니와 사이가 좋을 리 없었다. 어머니께서 일 년간 쓰신 일기장이 있는데, 매 페이지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넘쳐난다. 언제였을까, 여성에 대한 아버지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여자란 외투와 같은 존재라고 하셨다. 인격적 존재로 보는 것이 아니라, 생필품 정도로 보셨던 것이다. 그러니 어머니의 힘듦(5남매 키우랴, 살림하랴) 정도는 안중에 없으셨던 것 아닐까? 그러면, 나는 아버지를 원망하고 있나? 그렇지는 않다. 그냥 그렇다는 것이다. 희한한 것은, 어머니의 말씀이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뒤 이상하게 (아버지께) 못 해준 것만 생각난다고 하신 것이다. 어머니는 1년 동안 아버지 영전에 상식(上食)을 올렸다. 내 감정도 그렇고 어머니 감정도 그렇고 이성적으로 보면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감정이다. 그러나, 실제가 그런 걸 어쩌랴. 그러니 지금도 공기 중에 섞여 있을 아버지의 체취를 맡아본다고 제천 시내를 걷고 있는 것 아닌가?
‘아름다운 충북’이라 그런가, 제천 시내는 멀끔했다. 5시가 좀 못 되어 숙소로 점찍었던 ‘드림 모텔’에 도착했다. 평시엔 3만 5천 원, 금요일과 토요일엔 4만 원이라고 써놓았다. 가격이 마음에 든다. 객실 점검을 마치고 내려오던 주인과 마주쳤다. 친절한 인상의 남주인이다. 혼자 여행 다니시냐면서, 예약하신 분이냐고 묻는다. 아닌데, 혹시 방이… 했더니, 있단다. 방에 들어갔는데, 규모는 작지만 깔끔하다. 그런데, 엄청난 크기의 TV가 벽에 걸려있다. 방 규모가 작다 보니 더 크게 보였다. 과장되게 말해 영화관 스크린만 했다. 샤워를 하고 제반 저녁 의식 행사를 마친 뒤 침대에 누워 TV를 켰다. 그런데 화면이 너무 커서 외려 보기가 불편하다. TV와의 거리가 지나치게 가깝기 때문. 채널을 여기저기 눌러보는데 역시 볼만한 게 없다. 영화도 뭐 나오기는 하는데 액션 종류만 나온다. 애고, 저거 보고 나면 꿈속에서 쌈박질만 할 텐데, 그러면 내일 힘든디…. 그래도 쉽사리 TV를 끄지 못하고 여기저기 누르다 결국엔 꺼버렸다. 그래, 정명론(正名論)을 한번 실천해 보자. ‘드림 모텔’에 들어왔으니 꿈이나 꾸지, 뭐. 혹시 알어, 꿈속에서 아버지를 뵐지? 내일은 평창까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