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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찔레꽃 Jul 18. 2024

어쩌면 공자님도...



“어험, 얘들아, 너희들 맨날 세상이 너희를 안 알아준다고 뭐라 하는데, 만약 너희들을 알아준다면 뭘 하고 싶니?”

“강대국에 끼인 조마조마한 나라의 권력을 제게 준다면 3년 안에 괜찮은 나라로 만들 수 있습니다.”(자로) 

“그래~?”(공자) 

“코딱지만 한 나라를 맡으면 3년 안에 풍족한 나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예악은 군자에게….”(염유) 

“으흠~”(공자)

“전 그냥 공부나 더 하고 싶어요. 집례자는 그래도 한 번 해보고 싶네요.”(공서화) 

“오호~”(공자)

“점아, 너는 어때?” 

“저요? 저는 앞 친구들과 좀 다른데… 말해도 될까 모르겠네요?” “뭔, 걱정이여. 그냥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뿐인데….”

“그러면… 늦은 봄날 봄옷이 지어지면 어른 5, 6명과 어린아이 6, 7명과 함께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을 쐬고 노래하고 돌아오고 싶습니다.”(증점) 

“아~, 나도 너와 함께 하고 싶구나.”(공자)     


『논어』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란 거대 모토의 원조격인 공자가 ‘놀고 즐기는 것’에 손을 들어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공자는 왜 ‘놀고 즐기는 것’에 손을 들어준 것일까? 오늘 유태우 박사의 ‘쉬기 훈련’ 동영상을 시청하다, 그 해답을 찾았다. 공자는 쉬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뇌 과로자였다!     


유태우 박사는 현대인들이 과로에 시달리며 쉴 줄 모른다고 말한다. 과거의 과로는 '몸'을 쓰는 과로였다면 현대의 과로는 '뇌'를 쓰는 과로라고 말한다. 현대 과로의 주 요인은 피씨, 스마트폰, 티브이 시청 등이다. 그것을 사용하여 업무를 보든 오락을 즐기든 간에 이 기기들을 사용하는 것은 '뇌'를 활동시키는 것이고, 그 뇌활동이 과거의 '몸'을 혹사시키는 것 못지않게 과도하다는 것이다. 이로 인한 병증은 만성피로와 비숙면이라며, 현대인은 뇌를 쉬게 하는 ‘쉼 훈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 쉼 훈련은 이른바 (시청각) 아무것도 하지 않는 '멍 때리기'와 '빈둥거리기'이다. 


그런데 생각밖으로 이게 쉽지 않다. 한 5분 만이라도 이것을 해보려고 했는데 끊임없이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고 가만히 있는 것이 불안하기까지 했다. 박사는 이런 것이 뇌과로로 인한 증상이라며, '쉼'을 기본모드로 생각하고 '일'은 그 쉬는 중에 하는 것으로 생각을 바꾸고, 수시로 머리를 쉬게 하는 일체의 시청각 활동을 배제한 '멍 때리기'와 '빈둥거리기'를 연습하라고 권한다.


어쩌면 공자는 유박사가 말하는 뇌과로의 선구 격인 인물이 아니었을까 싶다. 젊은 날 잠시 육체노동 비슷한 것에 종사한 것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기간은 거의 정신노동 격의 뇌활동을 한 분이니 말이다. 공자가 뇌 과로 혹은 일 중독의 인물이었다는 것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바둑이나 장기라도 두는 게 낫다."는 말을 한 것이나, "하루 종일 생각만 하는 것보다는 뭐라도 배우는 게 낫다."라고 한 말, 낮잠을 잔 제자 재여에게 "아무 쓸모없는 놈."이라고 야단친 점에서 그런 점을 간취할 수 있다. 이런 그분이지만 어느 순간 그런 뇌과로 혹은 일중독에서 오는 피로감 때문에 증점의 말에 손을 들어준 것은 아닐까 모르겠다. (그러나 만인이 지켜보는 그 자신을 돌아볼 때 그런 일— 멍 때리기 빈둥거리기 같은 —은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애고, 불쌍한 우리 공자님.)


장자는 공자와 극히 대조되는 '쉼'의 명수이다. 나는, 순전히 개인적인 편견으로, 그의 유명한 '제물론(齊物論)'이 실제 쉼의 애매한 상태인 비몽사몽중에 탄생한 철학이라고 본다. 공자가 자신보다 한참 후배인 그를, 뇌과로 혹은 일중독의 활동에서 오는 피로감을 느꼈을 때 봤다면, 조금은 그의 언행이 과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호감 가는 괜찮은 녀석이라고 평가했을 것 같다(증점의 말은 장자의 언행과 비슷해 보이기 때문에 드는 생각이다).


오늘 아침, 비가 쏟아지는 창밖을 보며, 정말 오랜만에, 잠시 잠깐 멍 때리기를 했다. 공자님도 칭찬해 주지 않으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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