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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을) 이에게 고함

보약 포장 상자 문구를 보며

by 찔레꽃


pimg_7232191432072426.jpg 보정강장 만병회춘 연년익수(補精强壯 萬病回春 延年益壽). 보약 포장 상자 문구이다.


“노인네가 주책이지….”


“전 부럽던데요.”


유독 눈이 많이 내린 어느 해 지인 한 분이 적설을 헤집고 새벽 등산한 사진을 페이스 북에 올렸다. 지인은 60을 넘긴 분이었다. 그 사진을 함께 본 이웃 분이 혀를 차며 걱정을 했다. 나는 걱정도 됐지만 그의 노익장(老益壯)이 부러웠다. 그만 훨씬 못한 나이인데도 적설을 핑계로 하루 종일 문 밖을 나가지 않았기 때문.


노익장, 늙을수록 더 씩씩하다란 이 말은 사실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다. 젊을수록 씩씩하지, 늙을수록 씩씩해지는 법은 없으니까. 그래서 이웃 분도 지인의 새벽 등산을 흉봤을 것이다. 무리수를 두는 행동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세상사가 항상 이치대로만 흘러가는 것은 아니듯, 늙을수록 더 씩씩해지는 특별한 이들도 있다. 지인도 그런 경우일 것이다.


늙을수록 더 씩씩해진다는 뜻의 '노익장'을 처음 언급한 사람은 후한의 장수였던 마원(馬援, BC 14 ~ AD 49)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가 나이 든 후에 타인으로부터 그런 말을 들은 것이 아니라, 일찍이 젊은 날부터 그 말을 마치 자성예언(自成豫言)처럼 했다는 것이다. 조실부모하고 자수성가했던 그는 입버릇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장부가 뜻을 세웠으면 힘들수록 더 분발해야 하고, 나이 들수록 더욱더 씩씩해야 한다(丈夫爲志 窮當益堅 老當益壯).” 후일 그는 자신의 말처럼 노장군이 되어서도 변경을 개척하는데 혼신의 힘을 기울였고 많은 성과를 거뒀다.


그런데 흔히 나이 들어서 씩씩하고 혈색 좋으면 이렇게 묻곤 한다. “아니, 뭘 드셨기에 이렇게….” 마원도 뭔가 특별한 것을 먹었을 것 같지 않은가? 맞다. 특별한 것을 먹었다. 바로 율무[薏苡仁]였다. 지금의 티베트와 월남 북부 지역을 정벌할 때 이 특별한 것으로 부하들의 건강을 돌봤고 자신의 건강도 챙겼다. 귀환할 적에 이를 잔뜩 실어왔는데 사람들에게 귀한 재물을 실어왔다고 오해를 받아 곤욕을 치루기도 했다.


“아니, 기껏 율무를 먹었을 뿐이란 말이야!” 이런 말이 들리는 듯하다. 기록에 전하는, 마원이 먹은 특별한 음식은 이것뿐이다. “아, 그럼 나도 오늘부터 율무를….” 이런 말도 들리는 듯하다. 하지만 인터넷을 찾아보니 율무는 체질적으로 태음인에게 맞는 음식이지 모든 이에게 맞는 음식은 아니라고 나온다. 이로 미뤄보면 마원은 태음인 체질이었던 것 같고, 그에게 율무를 지급받았던 병사들 중에서 효과를 본 병사는 태음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다른 체질의 병사들은 그리 큰 효과는 보지 못했을 것 같다. 그저 배고픔을 면하는 양식 정도였지 않았을까?


그런데 정말 마원은 건강을 위해 율무 이외의 다른 음식이나 약은 복용하지 않았을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 같다. 다만 기록에 나타난 것이 없는 것뿐일 것이다. 그렇지 않을까?


사진의 한자는 노익장을 원하는 이들이 먹고 싶어 하는 보약을 담은 포장 상자의 글씨이다. ‘보정강장 만병회춘 연년익수(補精强壯 萬病回春 延年益壽)'라고 읽는다.‘정기를 보하여 튼튼하게 하다. 만병을 치유하여 회춘하고 해마다 수명을 늘리다’란 뜻이다. 보약 상자에 어울리는 문구이다. 그런데 읽고 해석할 분들이 많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한글로 이렇게 쓰면 어떨까 싶었다. ‘정성껏 드시고 건강하세요!’


낯선 한자를 몇 자 자세히 살펴보자.


補는 衤(衣의 약자, 옷의)와 甫(남자의 미칭 보)의 합자이다. 해진 옷을 수선하여 제대로 만들었다란 의미이다. 衤로 뜻을 표현했다. 甫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남자의 미칭처럼 수선된 옷은 보기 좋다는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기울 보. 補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補完(보완), 補充(보충) 등을 들 수 있겠다.


精은 米(쌀 미)와 靑(푸를 청)의 합자이다. 골라낸 쌀이란 의미이다. 米로 뜻을 표현했다. 靑은 음(청→정)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선명한 푸른색처럼, 골라낸 쌀은 깨끗하고 품질이 좋다는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고른 쌀 정. 쌀눈을 의미하는 글자로 보기도 한다. 쌀눈 정. 정기(精氣)라는 뜻으로도 사용하는데, 쌀눈이란 의미에서 연역된 뜻이다. 정기 정. 精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精氣(정기), 精粹(정수) 등을 들 수 있겠다.


强은 虫(벌레 충)과 弘(넓을 홍)의 합자이다. 쌀벌레란 의미이다. 虫으로 뜻을 표현했다. 弘은 음(홍→강)을 담당한다. 쌀벌레 정. 강하다란 뜻으로도 사용하는데, 동음을 빌미로 차용한 것이다. 강할 강. 强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强力(강력), 强弱(강약) 등을 들 수 있겠다.


壯은 士(장사 사)와 爿(조각 장)의 합자이다. 심신이 건강하다는 의미이다. 士로 뜻을 표현했다. 爿은 음을 담당한다. 건장할 장. 壯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壯士(장사), 壯盛(장성) 등을 들 수 있겠다.


壽는 老(늙을 로)의 약자와 疇(밭두둑 주) 약자의 합자이다. 긴 밭두둑처럼 오래 살아 나이가 많다는 의미이다. 목숨 수. 壽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壽命(수명), 長壽(장수) 등을 들 수 있겠다.


평균 수명 80을 바라본다고 한다. 오래 사는 것은 원초적 욕망일 듯싶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게 오래 사는 걸 것이다. 그것이 동물적 장수를 넘어선 인간적 장수일 것이기 때문. 마원의 노익장이 빛나는 것은 그가 노년에 들어서도 젊은 장수를 능가하는 업적을 이뤘기 때문이지, 단순히 늙어서도 튼튼했기 때문만은 아니 듯이 말이다. 오래 살되 의미 있게 오래 살 것, 평균 수명 80을 바라보는 우리 시대 노년의 중요한 지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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