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남자는 왜 여자를 귀찮게 할까

후덕재물(厚德載物) 입석(立石)을 보며

by 찔레꽃



pimg_7232191432076440.jpeg 후덕재물(厚德載物) 입석(立石)



처음에 사랑할 때 / 그 이는 씩씩한 남자였죠 / 밤하늘에 별도 달도 따주마 / 미더운 약속을 하더니 / 이제는 달라졌어 / 그 이는 나보고 다 해달래 / 애기가 되어버린 내 사랑 당신 / 정말 미워 죽겠네 / 남자는 여자를 정말로 귀찮게 하네


허스키한 목소리가 매력인 문주란 씨의 노래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하네」이다. 가사 내용을 보면 여인은 남편이 결혼 전과 너무 다른 모습을 보여 몹시 실망하고 있다. '씩씩한 남자'인 줄 알았는데 '애기'처럼 행동하니 실망스럽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남자는 왜 씩씩했다가 애기가 된 것일까? 그건 씩씩함 속에 감춰졌던 애기스러움이 드러났기 때문일 것이다. 이걸 그럴듯한 용어로 표현하면 양속에 감춰졌던 음이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양과 음이 균형을 이루면 씩씩함과 애기스러움이 조화를 이뤄 설령 애기스러움이 드러난다 해도 실망스러운 수준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둘의 조화가 깨지면 어느 일방적인 면만이 강하게 드러나 실망스러운 수준이 될 것이다. 저 노래 속의 남자는 음양의 균형이 깨진 상태라 여인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진은 '후덕재물(厚德載物)'이라고 읽는다. 『주역』 곤괘(䷁)를 풀이한 해석서 중의 하나인 「상전(象傳) 」에 나오는 내용으로, '후덕함으로 만물을 수용한다'란 뜻이다. 흔히 건괘(䷀) 상전에 나오는 자강불식(自彊不息, 스스로 힘써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쉬지 않음)과 짝을 지어 많이 사용한다(사진은 예전에 안면도 한 유원지에서 찍은 것인데, 짝이 되는 자강불식(自彊不息) 입석도 맞은편에 있었다). 자강불식과 후덕재물을 짝지우는 것은 양자가 균형을 맞출 때 온전한 가치가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 자강불식은 진(進, 나감)의 성격이 강하고, 후덕재물은 퇴(退, 물러남)의 성격이 강하기에, 양자는 조화가 필요하다. 일과 휴식의 관계로 환치하면 이를 쉽게 알 수 있다. 일이 자강불식이라면 휴식은 후덕재물이라고 할 수 있는 것. 양자가 균형을 이뤄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사진의 한자를 자세히 살펴보자.


厚는 石(돌 석)과 高(높을 고)의 합자이다. 높이가 높은 돌은 두께도 두껍다는 의미이다. 두터울 후. 厚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重厚(중후), 厚顔無恥(후안무치) 등을 들 수 있겠다.


德은 彳(걸을 척)과 悳(덕 덕)의 합자이다. 본래 悳으로 표기했는데, 후에 행동의 의미인 彳이 추가됐다. 悳은 直(곧을 직)과 心(마음 심)의 합자이다. 정직한 마음이란 의미이다. 彳까지 추가하여 풀이하면 정직한 마음이 행동으로 발현된 것이란 의미이다. 덕 덕. 德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道德(도덕), 德望(덕망) 등을 들 수 있겠다.


載는 싣다란 의미이다. 車(수레 거)로 의미를 표현했다. 나머지 부분은 음을 담당한다. 실을 재. 載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積載(적재), 連載(연재) 등을 들 수 있겠다.


物은 牛(소 우)와 勿(말 물)의 합자이다. 만물이란 의미이다. 만물 중에서 가장 쉽게 눈에 잘 띄는 것이 소인지라 牛로 뜻을 표현했다. 勿은 음을 담당한다. 만물 물. 物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生物(생물), 現物(현물) 등을 들 수 있겠다.


여담. 저 노래의 한심스러우면서도 왠지 측은해 보이는 남자를 구제할 방법은 무엇일까? 음양 균형론으로 말하면 아무래도 여인이 좀 더 수용적인 태도를 지녀야 할 것 같다. 여인에게 너무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것일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저 남자는 어디에서도 음의 충족을 얻지 못해 더 퇴행적인 모습을 보이거나 역으로 과도한 씩씩함[광포]을 보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 않을까? (여기서는 남자를 놓고 음양 균형론을 말했는데 이는 여성의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고 본다. 그때는 남자가 좀 더 수용적인 태도를 지녀야 할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어찌 감읍하지 않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