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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감읍하지 않으랴

추사의 편지

by 찔레꽃
pimg_7232191432082752.png 석파(이하응)에게 보낸 추사의 편지



“각하께서 가보라고 하셔서….”


어느 날 군수가 우리 집을 방문해 아버지께 인사를 드리며 말했다. 그러면서 내복 한 벌을 선물로 드렸다. 그는 담소 후 집을 떠나며 말했다. “어려운 일 있으면 연락 주십시오.” 군수의 방문은 동네의 화제가 됐다. 아버지 얼굴엔 희색이 만연했다. 그 해 겨울, 아버지는 청와대로부터 각하 내외의 사진이 담긴 신년 연하장을 받았다. 연하장을 받은 아버지 얼굴엔 또 한 번 희색이 만연했다. 이 연하장은 아버지 생전에 거의 가보 수준으로 취급받았다.


자신보다 한층 위에 있는 사람의 방문이나 서신을 받으면 감동한다. 사진의 내용도 이와 유사하다. 옛글이라 매우 점잖게 표현됐지만 상대의 글을 받았을 때의 환희를 능히 짐작할 수 있다.


浮世淸緣 何以易就 且須隨喜方便 不必自惱自勞也 阮堂先生自欲句 堵冬(부세청연 하이이취 차수수희방편 불필자뇌자로야 완당선생자욕구 도동)


덧없는 세상의 맑은 인연인데, 어떻게 이루기가 쉽겠습니까. 그러니 우선 좋은 방편을 기다릴 것이요, 굳이 스스로 고심하고 수고롭게 할 것이 없습니다. 완당 선생 자욕구. 도동(글씨 쓴 이의 아호).


환희가 느껴지시는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사실 이 글 이전의 생략된 내용을 읽어야 편지를 받은 이의 환희를 짐작할 수 있다.


세후의 한 서신에 대해서는 마치 해가 새로워짐을 본 것 같기도 하고 꽃이 핀 때를 만난 것 같기도 하였으니, 그 기쁨을 알 만합니다. 그러나 다만 방만하고 초췌한 이 사람은 족히 높으신 권주(眷注)를 감당할 수 없을 뿐입니다. 산사(山寺)에 가자는 한 약속 또한(年後一椷 如瞻歲新 如逢花開 喜可知耳 但此頹放憔悴 不足以當崇注 山寺一約 亦) … (이상 번역: 고전번역원 DB 「완당(추사 김정희) 선생이 석파(石坡)에게 준 편지글」)


확실히 편지를 받은 이의 환희가 느껴질 것이다. 신분이 자신보다 높은 이가 산사에 가자고 청을 했으니 편지를 받은 이는 대단히 영광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무슨 사정인진 모르지만 그 일이 쉽게 이루어질 것 같지 않아 편지를 받은 이는 아쉬움을 달래며 후일을 기약하자고 말하고 있다. 문맥은 상대를 위로하는 듯한 내용이지만 실제는 자신을 위로하고 있는 것이다. 상대의 신분이 높으니 상대를 위로하는 어투를 취한 것뿐이다.


여기 영광스러운 편지를 받고 기뻐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추사 김정희이다(‘완당 선생’이란 단어에서 이미 짐작했을 것이다). 그러면 그에게 영광스러운 편지를 보낸 사람은 누구일까? 석파 이하응이다. 흔히 흥선대원군으로 불리는 사람. 석파와 추사는 내외 종간의 먼 친척이다. 석파는 영조의 고손자인 남연군의 아들이었고, 추사는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의 11촌 조카였던 것. 둘의 나이차는 서른네 살이었고, 추사가 위였다. 그러나 석파는 왕실 사람이었기에 추사에겐 어려울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이런 그에게 산사에 함께 가자는 청을 담은 편지를 받았으니 얼마나 기뻤겠는가! 마치 아버지께서 각하의 연하장을 받았을 때의 마음과 진배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자칫 오해하기 쉬운 부분이 있다. 추사가 받은 편지가 석파의 대원군 시절 편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러나 추사가 받은 편지는 석파의 대원군 시절 편지가 아니다. 대원군의 파락호 시절 편지이다. 석파가 대원군이 되었을 때, 추사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면 또 다른 의문이 생길 것이다. ‘아니 파락호 시절의 석파에게 그것도 한참이나 나 어린 석파에게 추사가 저토록 감읍하는 모습을 보였단 말인가?’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史實)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세간에 석파가 파락호로 지낼 때 모든 이들에게 천대를 받았다고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추사의 감읍 모습을 이해하기 어렵다. 석파는 파락호 시절에도 여전히 왕실 사람으로 존숭을 받고 있었다, 이것이 사실이다. 『추사집』(최완수 역, 현암사: 1976)에 보면 추사가 석파에게 보낸 편지 7통이 나오는데 모두 극존칭을 사용하며 존숭의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석파의 과장된 파락호 모습은 김동인의 소설 『운현궁의 봄』에 기인한다는 것이 사계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문학적 사실과 역사적 사실의 불일치는 종종 경험하는 거지만, 대원군의 경우는 그 격차가 매우 심한 경우라 할 수 있다.


사진의 한자를 몇 자 자세히 살펴보자.


浮는 氵(물 수)와 孚(孵의 약자, 알 깔 부)의 합자이다. 물 위에 떠있다란 의미이다. 氵로 뜻을 표현했다. 孚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새가 부화를 위해 알 위에 올라앉듯 물체가 물 위에 떠있다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뜰 부. 浮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浮草(부초), 浮標(부표) 등을 들 수 있겠다.


就는 京(높을 경)과 尤(더욱 우)의 합자이다. 돌출한[尤] 높은 언덕이란 의미이다. 높을 취. 이루다란 뜻으로도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유추된 의미이다. 이룰 취. 就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成就(성취), 進就(진취) 등을 들 수 있겠다.


須는 彡(터럭 삼)과 頁(머리 혈)의 합자이다. 턱수염이란 의미이다. 수염 수. 모름지기란 뜻으로도 사용하는데, 동음을 빌미로 가차한 경우이다. 모름지기 수. 須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必須(필수), 須眉(수미, 수염과 눈썹) 등을 들 수 있겠다.


隨는 辶(걸을 착)과 隋(떨어질 타)의 합자이다. 뒤따라간다는 의미이다. 辶으로 뜻을 표현했다. 隋는 음(타→수)을 담당한다. 따를 수. 隨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隨行(수행), 隨筆(수필) 등을 들 수 있겠다.


惱는 忄(마음 심)과 腦(뇌 뇌) 약자의 합자이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마음이 괴롭다는 의미이다. 忄으로 뜻을 표현했다. 腦의 약자는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마음이 괴로우면 머리도 아프다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괴로워할 뇌. 惱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煩惱(번뇌), 懊惱(오뇌) 등을 들 수 있겠다.


여담 하나. 위 추사의 편지에는 생략된 부분이 또 있다. 그런데 이 생략된 부분이 사실은 추사 편지의 핵심이다. 석파는 추사에게 난초 치는 법을 배우는 과정 중 자신의 작품집 『난화(蘭話)』에 대한 추사의 품평을 요청했고, 위 편지는 그에 대한 답장이기 때문이다. 생략된 나머지 부분을 읽어 보자.


『난화(蘭話)』 한 권에 대해서는 망령되이 제기(題記)한 것이 있어 이에 부쳐 올리오니 거두어주시겠습니까? 대체로 이 일은 바로 하나의 하찮은 기예(技藝)이지만, 그 전심하여 공부하는 것은 성문(聖門)의 격물치지(格物致知)의 학문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군자는 일거수일투족이 어느 것도 도(道) 아닌 것이 없는 것이니, 만일 이렇게만 한다면 또 완물상지(玩物喪志)에 대한 경계를 어찌 논할 것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렇게 하지 못하면 곧 속사(俗師)의 마계(魔界)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리고 심지어 가슴속에 5천 권의 서책을 담는 일이나 팔목 아래 금강저(金剛杵)를 휘두르는 일도 모두 여기로 말미암아 들어가는 것입니다. 아울러 큰 복이 있기를 바라면서 갖추지 않습니다. (이상 번역: 위 번역 출처와 동일)


여담 둘. 사진의 ‘喜(기쁠 희)’자는 ‘意(뜻 의)’자로 나온 곳도 있는데, ‘意’가 문맥상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 사진은 친구에게서 얻었다. 서각을 가르치는 분이 써 준 것이라고.


여담 셋. 각하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었다. 아버지는 그를 찬양하는 한시를 지어 청와대에 보내셨다. 나는 후일 아버지의 행동에 부끄러움을 느껴 타계하신 뒤 청와대 연하장을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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