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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곧 그 사람이다

재도천중만국명(纔到天中萬國明)

by 찔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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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는 곧 그 사람이다”란 말이 있다. 문체 속에는 그 사람을 대변하는 제요소가 들어있다란 의미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문체 수련을 위해 애쓸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어차피 천품은 감출 수 없으니 인위적으로 문체 수련을 한다 하여 무슨 특별한 문체가 만들어지겠냐는 것이다.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충실히 하면 그것이 그만의 문체가 된다는 주장이다. 일리 있는 말이다. 혹 문체에 답답함을 느낀다면 문장 수련에 힘을 쏟기보다는 뒤늦게라도 인격을 수련하는데 더 힘을 쏟아야 하는 것 아닐까 싶다.


그런데 문장에 그 사람의 개성이 묻어나듯 시에도, 마찬가지로, 그 사람의 개성이 묻어난다. “시는 곧 그 사람이다”라고 보는 것. 시를 읽어보면 자연스럽게 그 사람의 천품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은 “재도천중만국명(纔到天中萬國明)”이라고 읽는다. “하늘 한가운데 이르니 온 세상이 밝도다”라는 뜻이다. ‘무엇이’란 주체가 빠져있는데, 태양이 그 주체이다. 이 구절 앞에는 본디 한 구절이 더 있는데 그것을 함께 읽으면 주체인 태양의 위상을 한결 더 깊이 인식할 수 있다. 생략된 구절은 “미리해저천산암(未離海底千山暗)”인데, “아직 바다 밑을 떠나지 않았을 적엔 온 세상 산이 다 어둡더니”라고 풀이한다.


두 구절, 특히 사진의 구절에서 어떤 느낌이 느껴지시는지? 나는 웅대한 기상을 느꼈다. 단순히 태양이 뜨기 전 후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그것에 의탁하여 자신의 웅대한 기상을 표현한 것으로 말이다. 태양이 뜨기 전의 모습은 미미한 현재의 모습을, 태양이 중천에 뜬 모습은 세상에 자신의 뜻을 편 모습을 그린 것으로 봤다. 이런 정도의 웅대한 기상은 제왕의 기상이다.


실제 이 시는 송나라를 건국한 조광윤이 지은 것이다. 놀라운 건 그가 미미한 신분 시절에 지은 것이라는 점이다. 이 시를 지을 적에 조광윤이 천하를 바로 세우겠다는 – 당말 5대 10국의 혼란 시기였기에 – 야망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 시에는 그런 야망, 아니 웅혼한 기상이 잘 드러나 있다. 이런 웅혼한 기상의 표현은 시구를 조탁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타고난 천품이 있을 때 가능하다.


사진은 한 지인이 한자를 모르겠다고 - 특히 첫 번째 한자 - 알려달라고 보낸 것인데, 덕분에 좋은 글감을 얻었다.


纔 하나만 자세히 살펴보자.


纔는 糸(실 사)와 毚(토끼 참)의 합자이다. 붉은색에 약간의 검은빛이 감도는 옷감이란 뜻이다. 糸로 뜻을 표현했다. 毚은 음(참→재)을 담당한다. 지금은 이 뜻으로는 사용하지 않고 ‘겨우’라는 부사의 의미로 사용한다. ‘겨우’라는 의미는 ‘약간의 검은빛이 감돈다’에서 연역된 의미이다. 겨우 재. 纔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今纔(금재, 이제 / 겨우), 纔小(재소, 조금 / 잠깐) 등을 들 수 있겠다.


여담. 우리나라 개국 왕조 인물 중에도 송태조 조광윤과 같은 풍의 시를 지은 사람이 있다.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인데, 범인(凡人)의 경지를 넘어선 건 확실하지만 송태조 조광윤에 비하면 기상이 약간 떨어진다. 이 시 역시 억지로 조탁한 것이 아니고 타고난 천품이 자연스럽게 발로 됐다고 본다(대권을 잡기 이전에 지은 것인지, 이후에 지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引手攀蘿上碧峰 인수반라상벽봉 칡덩굴 부여잡고 푸른 봉우리에 오르니

一庵高臥白雲中 일암고와백운중 암자 하나 높이 흰 구름 속에 누워 있네

若將眼界爲吾土 약장안계위오토 만약 눈에 들어오는 곳을 모두 우리 땅으로 한다면

楚越江南豈不容 초월강남기불용 강남의 초나라 월나라들 마다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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