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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기질

소동파의 시 '동란이화(東欄梨花)'

by 찔레꽃
소동파의 '동란이화(東欄梨花)'. <사진 출처: http://tip.daum.net/question/82923916>


"글은 기운을 중심으로 삼는다. 기운의 맑고 탁함엔 바탕이 있나니, 이는 인위적 노력으로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文以氣爲主 氣之淸濁有體 不可力强而致)."


중국 고전 문학 비평의 효시로 알려진 조비(曺丕, 187-226)의 『전론(典論)』「논문(論文)」 일부이다. 흔히 문기론(文氣論)으로 알려진 내용. 문기론은 쉽게 말하면 사람의 타고난 기질이 글에 드러난다는 이론이다. 이는 순수한 문학론이라기보다는 문학과 의학이 결합된 이론이라고 볼 수 있다. 기질은, 신체 상태에 관한 것으로, 의학 분야에 속하기 때문이다.


기질은 다양하다. 조비는 청탁으로 대분(大分)했지만, 조선의 이제마는 사상(四象)으로 대분했다. 이제마의 분류는 기질보다는 체질로 불리는데(사상 체질), 체질과 기질은 같은 의미이다. 둘 다 몸 상태와 관련 있기 때문. 문학 작품을 기질(체질)과 관련지어 살펴보는 것은 작품을 풍부하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듯싶다.


사진은 소동파(1037-1101)의 '동란이화(東欄梨花)'란 시이다. 봄날 난간에서 화사한 배꽃을 보고 쓴 시. 이 시를 이제마의 사상체질과 관련지으면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사상체질은 태양, 태음, 소양, 소음이다. 태양인은 강하고 적극적이며 타인과의 교류에 능하고 다혈질이다. 태음인은 매사에 신중하고 위엄이 있으며 인내심이 강하고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소양인은 열정적이고 다정하며 이해타산에 관심이 없고 솔직 담백하다. 소음인은 내성적이고 말수가 적으며 생각이 치밀하고 침착하다.


梨花澹白柳深靑 이화담백유심청 배꽃은 희고 버들은 푸르니

柳絮飛時花滿城 유서비시화만성 버들개지 휘날릴 때 배꽃은 만발하네.

惆悵東欄一株雪 추창동란일주설 슬프구나! 동란에 핀 한 그루 흰 배꽃이여!

人生看得幾淸明 인생간득기청명 인생에서 몇 번이나 이 깨끗한 꽃을 볼 것인가?

<번역 인용처: http://m.blog.daum.net/thddudgh7/16543453>


시인은 지금 화사한(깨끗한) 배꽃을 보고 있다. 그런데 이 화사한 배꽃을 보면서 즐겁고 행복해 하기보다는 외려 슬픔에 차있다. 인생에서 화사한 배꽃을 볼 기회가 많지 않다는 것을 생각했기 때문. 하지만 정말 인생에서 화사한 배꽃을 볼 기회가 그렇게 많지 않을까? 그렇진 않을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 화사한 배꽃을 볼 기회가 많지 않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그건 아마도 인생에서 화사한 배꽃처럼 삶의 환희를 맛보는 때가 많지 않다는 것을 에둘러 표현한 걸 것 아닐까? 그러기에 화사한 배꽃을 보면서 슬픔을 느낀 것 아니겠는가.


짐작컨대 시인은 소음인에 가까운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다. 소음인은 걱정과 생각이 많다. 걱정과 생각이 많다 보니 화사한 배꽃을 보면서도 거기에 몰입하지 못한 채 굳이 삶을 연계시키고 나아가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을 더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밝게 쓸 수 있는 시를 어둡게 썼다고나 할까? 만약 태양인이 화사한 배꽃을 봤다면 이와 정반대의 시를 썼을 것이다. 배꽃 자체에 몰입하거나, 인생을 연계시킨다고 해도 긍정적인 면을 더 부각시켰을 것으로 보인다.


기질과 문학 작품을 연계시키는 건 문학작품을 풍부하게 이해하기 위한 것이지, 결코 작품의 우열을 평가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위 작품도 소음인의 기질이 농후한 작품이란 것뿐이지 결코 작품 수준이 낮다는 것은 아니다. 문학 작품과 지은이의 기질을 묶어서 논하는 건 오래된 비평법이지만 현재도 충분히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문학과 의학이 결합됐다는 점에서 통섭을 지향하는 현시대와 잘 어울리지 않나 싶다.


낯선 한자를 몇 자 자세히 살펴보자.


幾는 幺幺(작을 요)와 戌(지킬 수)의 합자이다. 은미하고 위태로운 곳을 지킨다는 의미이다. '몇'이란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이다. 은미하고 위태로운 곳은 많지 않다란 의미로 연역됐다. 몇 기. 幾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幾何(기하), 幾日(기일, 며칠 몇 날) 등을 들 수 있겠다.


惆는 忄(마음 심)과 周(두루 주)의 합자이다. 만족스럽지 못한 마음이란 의미이다. 忄으로 뜻을 표현했다. 周는 음(주 →추)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두루 만족하려면 일일이 살피게 되고 그러다 보면 자신의 뜻과 불합(不合)하여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가 많다는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실심할 추. 惆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惆然(추연, 실망하여 슬퍼하는 모양), 惆惋(추완, 슬프게 한탄함) 등을 들 수 있겠다.


悵은 忄(마음 심)과 長(긴 장)의 합자이다. 원망하며 슬퍼한다는 의미이다. 忄으로 의미를 표현했다. 長은 음(장→창)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오래가는 감정이 원망하고 슬퍼하는 감정이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한탄할 창. 悵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悵悔(창회, 원망하고 후회함), 悵望(창망, 슬퍼하면서 바라봄) 등을 들 수 있겠다.


澹은 氵(물 수)와 詹(넉넉할 담)의 합자이다. 물이 요동친다는 의미이다. 氵로 의미를 표현했다. 詹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수량이 넉넉할 때 물이 요동친다는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맑다'란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이는 본뜻에서 연역된 의미이다. 요동치던 물이 고요해졌다는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맑을 담. 澹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澹澹(담담,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모양), 澹泊(담박, 욕심이 없고 마음이 깨끗함) 등을 들 수 있겠다.


絮는 糸(실 사)와 如(같을 여)의 합자이다. 헌 솜이란 의미이다. 이 솜은 목화의 솜이 아니고 못쓰게 된 실로 뭉친 솜이란 의미이다. 糸로 의미를 표현했다. 如는 음(여→서)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못쓰게 된 실로 뭉친 솜은 진짜 솜은 아니지만 그와 비슷하다는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솜 서. 絮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絮纊(서광, 솜), 絮繒(서증, 솜과 명주) 등을 들 수 있겠다.


여담. 위 사진은 시와 그림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시의 소재는 이화(梨花)인데 그림은 난초와 나비를 그렸기 때문. 흘림체에 대한 소양이 부족해 행서를 읽는데 '처음새'란 블로거의 도움을 받았다. '지식IN'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분인데 내공이 만만치 않은 블로거이다. 깊이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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