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공차(貢茶)

by 찔레꽃
'공차(貢茶) 상호



"ㅇㅇ에 △△ 넣어 주시고요 x x는 빼주세요."


딸아이와 한 양식당에 들렀는데 딸아이가 낯선 주문을 한다. 정해진 어느 하나의 메뉴에 익숙한 내게 첨가와 삭제를 요구하는(할 수 있는) 메뉴는 더없이 불편하다. 그런데 딸아이는 이런 첨가와 삭제가 가능한 메뉴에 익숙하다. 외려 첨가와 삭제가 없는 메뉴에 불편과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음식 주문에서도 세대차를 느낀다.


차(茶)에도 첨가와 삭제가 가능한 차가 있다(가본 적은 없다. 인터넷 상으로 본 것뿐). 사진은 '공차(貢茶)'라고 읽는데, 이 상호의 찻집이 그렇다. 기본적으로 녹차와 홍차 우롱차를 파는데 여기에 밀크를 추가할 수 있고 아울러 당도와 얼음량도 조절할 수 있다. 아울러 추가 금액을 내면 3개의 범위 내에서 토핑도 가능하다. 차의 양을 조절하는 컵 사이즈 선택은 당연지사고. 나 같은 퇴물로선 생각도 못한 차이다. 공차는 본래 대만 브랜드로 2012년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왔는데, 지금은 한국 브랜드가 되었단다. 지사가 본사를 접수한 것. 공차 코리아는 전 세계 18개국 1380여 개 매장을 보유하고 있다.


공차는 '황실에 진상하던 차'라는 뜻이다. 공차의 기원은 서주(西周) 시대까지 올라가지만 정례화된 조공으로 정부에서 본격적으로 관리하게 된 것은 당나라 때부터였다. '관배(官焙)'라는 기구를 설치해 각종 공차의 모든 제조 과정을 직접 관리, 감독, 지휘했다. 당나라 이후, 중국의 역대 왕조들은 황제와 황실에서만 전문으로 음용하는 공차의 품질뿐만 아니라 품종과 차의 빛깔까지도 끊임없이 추구하고 갈구했다(박영환, '명차의 발전 과정①', http://www.buddhismjoural.com 참조 인용). 널리 알려진 보이차도 공차의 한 종류. 공차 중에서 가장 이름 높은 것은 상주(常州) 의흥(義興)의 양선차(陽羨茶)이다.


조정과 관청에 바치는 공차 종류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리고 공차의 생산지가 확장되면 확장될수록 차를 재배하고 제다하는 차농(茶農)들의 고통은 그에 정비례하여 늘어났다. 명나라 때 한방기(韓邦奇)가 쓴 '차가(茶歌)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부양강의 물고기, 부양산의 차. 물고기가 살찌면 내 아들을 팔아야 하고, 차가 향기로우면 내 집이 파산 나네... 부양산은 어느 날에 무너질꼬? 부양강은 어느 날에 마를꼬?"(박영환, '명차의 발전과정④, ⑤', 위 사이트 참조 인용) 차농들의 고통이 어떠했을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공차의 횡포가 중국 차문화의 발달을 가져왔다는 점이다. 어느 한 면으로만 평가할 수 없는 것이 세상사인가 보다.


한자를 자세히 살펴보자.


貢은 工(장인 공)과 貝(조개 패)의 합자이다. 工에는 정밀하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고, 貝에는 재화(물)의 의미가 내포돼 있다. 조정에 바치는 재화와 기물이란 뜻이다. 貝로 뜻을 표현했다. 工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조정에 바치는 재화와 기물은 정미(精美)하다는 뜻으로 본뜻을 보충한다. 공물 공. 바칠 공. 貢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貢物(공물), 貢獻(공헌) 등을 들 수 있겠다.


茶는 艹(풀 초)와 余(나 여)의 합자이다(지금은 茶를 쓸 때 余에서 一 하나를 빼고 쓴다). 쌉싸름한 풀 혹은 그 풀로 우려낸 음료란 뜻이다. 艹로 뜻을 표현했다. 余는 음(여→다)을 담당한다. 차 차(다). 茶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茶道(다도), 雪綠茶(설록차) 등을 들 수 있겠다.


여담. 한 때 현미 열풍을 일으켰던 고 안현필 씨가 한 유명한 말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건강한 음식은 결코 비싸거나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있습니다." 차도 그렇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보리차 한 잔 ~

keyword
작가의 이전글문학과 기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