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mcik22&logNo=221091709390>
“주량에 한계가 없으셨지만 난잡한 행동은 없으셨다[唯酒無量 不及亂].”
『논어』에 나온 공자의 음주 습관이다. 공자의 제자들은 공자를 '성인(聖人)'으로 여기며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으로 남겼다. 이 기록도 그중의 하나. 이 기록을 남기며 제자들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정말 특별한 분이다. 보통은 만취하면 말이든 행동이든 어느 하나는 실수하는 법인데….'
확실히 일반인들은 술이 어느 한계를 넘어서면 말이든 행동이든 실수를 한다. 그런데 그 실수가 의도였든 그렇지 않든 간에 상대에게 폐를 끼치는 경우가 있다. 이른바 추태. 특히 이성에게 보이는 추태는 대부분 성추행 성폭행이다. 미투 운동으로 곤욕을 치르는 인사들의 추태도 대부분 주석에서 발단이 됐다. 문제는 타인과 함께 술을 마시는데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혼자서 마신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사진은 어느 중국 음식점 인테리어이다. 이백(李白, 701-762)의 「월하독작(月下獨酌)」이란 시이다. 그런데 순서도 맞지 않고 빠진 내용도 있다. 순서를 바로 잡고 빠진 내용도 보충하여 읽어보자.
花間一壺酒 화간일호주 꽃 사이 한 동이 술
獨酌無相親 독작무상친 친한 이 없이 홀로 마시네.
擧盃邀明月 거배요명월 잔 들어 밝은 달 맞이하고
對影成三人 대영성삼인 그림자 대하여 셋이 되었네.
月旣不解飮 월기불해음 달은 술 마실 줄 모르고
影徒隨我身 영도수아신 그림자는 그저 나만 따를 뿐.
暫伴月將影 잠반월장영 잠시 달과 그림자 벗하나니
行樂須及春 행락수급춘 때는 봄 행락 철.
我歌月徘徊 아가월배회 내 노래하니 달은 배회하고
我舞影凌亂 아무영능란 내 춤추니 그림자는 어지러워.
醒時同交歡 성시동교환 깨어선 함께 즐기고
醉後各分散 취후각분산 취한 뒤는 제각기.
永結無情遊 영결무정유 길이 무정한 사귐을 맺어
相期邈雲漢 상기막운한 아득한 은하에서 다시 만나기를.
달과 자신의 그림자를 벗하여 술 마시는 풍경을 그렸다. 그러나 실제로는 혼자서 마시는 것이다. 시인은 혼자 취하여 노래하며 춤추고 있다. 추태를 부리는 것. 그러나 이 추태는 추해 보이지 않는다. 외려 고아한 느낌마저 준다. 이런 추태라면 아무리 부려도 문제될 것이 없을 것이다. 이백의 음주 습관은 공자의 저 '유주무량 불급란(唯酒無量 不及亂)'의 도가적 변용이라고 평가할 만하다(실제 이백은 도가 사상에 심취했었다).
음식점 주인과 인테리어 하는 분은 하고 많은 시중에 왜 하필 이백의 「월하독작」을 택했을까? 혹 조용히 술을 마시고 추태를 부리지 말아 달라는 무언의 바램을 담은 것은 아닌지….
낯선 자를 몇 자 자세히 살펴보자.
壺는 병의 모양을 그린 것이다. 윗부분은 뚜껑, 아랫부분은 몸체이다. 병 호. 壺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投壺(투호), 壺中物(호중물, 술) 등을 들 수 있겠다.
酌은 酉(酒의 옛 글자, 술 주)와 勺(구기 작)의 합자이다. 상대의 술잔[勺]에 술을 따르며 마시기를 권유한다는 뜻이다. 따를 작. 酌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對酌(대작), 添酌(첨작) 등을 들 수 있겠다.
邀는 辶(걸을 착)과 敫(부를 교)의 합자이다. 오라고 요청하다, 란 뜻이다. 辶으로 뜻을 표현했다. 敫는 음(교→요)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상대를 불러오게 한다는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맞이할 요. 邀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招邀(초요, 불러서 맞이함), 邀擊(요격, 맞이하여 침) 등을 들 수 있겠다.
隨는 辶(걸을 착)과 隋(墮와 통용, 떨어질 타)의 합자이다. 따라가다란 뜻이다. 辶으로 뜻을 표현했다. 隋는 음(타→수)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떨어지는 것은 위에서 아래로 자연스럽게 내려오는 것이듯, 따라가는 것도 뒷사람이 앞사람을 자연스럽게 좇아가는 것이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따를 수. 隨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隨筆(수필), 隨行(수행) 등을 들 수 있겠다.
暫은 日(날 일)과 斬(벨 참)의 합자이다. 잠시, 잠깐이란 뜻이다. 日로 뜻을 표현했다. 斬은 음(참→잠)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물건을 벨 때 단박에 베듯 그같이 짧은 시간이 잠시, 잠깐이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잠시(깐) 잠. 暫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暫時(잠시) 暫定(잠정) 등을 들 수 있겠다.
徘는 彳(걸을 척)과 非(아닐 비) 합자이다. 천천히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한다는 뜻이다. 彳으로 뜻을 표현했다. 非는 음(비→배)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제대로 걷는 것[직진]이 아니란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노닐 배. 徘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徘徊(배회) 정도를 들 수 있겠다.
徊는 彳(걸을 척)과 回(돌 회)의 합자이다. 제자리에서 맴도는 물처럼 한 곳에서 왔다 갔다 한다는 뜻이다. 노닐 회. 徊가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彽徊(저회, 머뭇거림) 등을 들 수 있겠다.
醒은 酉(酒의 옛 글자, 술 주)와 星(별 성)의 합자이다. 술이 깨다란 뜻이다. 酉로 뜻을 표현했다. 星은 음을 담당하면서 뜻도 일부분 담당한다. 밝고 분명한 빛을 발하는 별처럼 술이 깨면 그같이 정신이 맑고 분명하다는 의미로 본뜻을 보충한다. 술 깰 성. 醒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覺醒(각성), 醒寤(성오, 잠이 깸) 등을 들 수 있겠다.
邈은 辶(걸을 착)과 貌(모양 모)의 합자이다. 왕래하기가 곤란할 정도로 멀다란 뜻이다. 辶으로 뜻을 표현했다. 貌는 음(모→막)을 담당한다. 멀 막. 邈이 들어간 예는 무엇이 있을까? 邈然(막연, 근심하는 모양 혹은 아득한 모양), 邈志(막지, 원대한 뜻) 등을 들 수 있겠다.
문인들의 주사는 관대하게 보는 것이 그간의 우리 정서였다. 외려 주사를 부려야 문인답다는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미투 운동 후로는 이런 정서도 많이 변한 것 같다. ‘괜찮다’보다는 ‘추하다’고 보는 경향으로. 고은 시인의 거대한 문학적 성과가 성추문 폭로로 무너지는 것을 보면 이것을 알 수 있다. 현대 문학사에서 고은 시인을 뺀다면 과연 남는 게 무엇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데도 말이다.
한 때 이백의 ‘월하독작’을 흉내 내느라 달밤에 산 정상에 올라가 혼자 막걸리를 마신 적이 있다. 그러나 말 그대로 흉내만 냈을 뿐 이백의 시에서 느껴지는 고아한 감흥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월하독작’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것만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