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영서 May 13. 2022

사장님 죄송합니다.

멋대로 얼굴에 손을 대었기에.

약 10여 년 전 나를 본인 소속사의 연습생이라고 불러주시던 분이 계셨고 나는 그분을 소속사 사장님이라고 불렀다. 실제 소속사 사장님도 연습생도 아니지만 우리는 서로를 그렇게 칭하곤 했다.


그때 우리의 감성을 떠올리면 여기가 세이클럽 일지 싸이클럽 일지 블로그인지 헷갈리고.  

지금 서랍장에 쌓아놓은 글은 이게 아닌데. 뭐 어떠랴.

글은 사장님께 미리 설명을 드리고자 쓰는 글.

솔직히 대충 막 썼네.

하지만 다소 변해버린 내 모습 놀라지 말아 주셨음 해.

그랬음 해. 예~♪





때는 2020년 5월인가 6월인가의 어느 토요일 아침.

아이를 깨우러 벙커침대 계단을 올라갔다. 아들아 너 그때 몇 살이었니. 다섯 살, 아니 여섯 살?

잠에서 깨어 눈을 뜬 아이는 마치 모르는 사람을 보는 듯한 어딘가 이상한 표정으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갑자기 잇! 잇! 하는 소리를 내며 양 발을 휘둘렀다. 부지불식간에 발버둥 치는 발뒤꿈치에 얼굴을 한 대 맞았다. 그리고 아이 발에 얼굴을 맞았다는 것에 너무 놀란 나머지 두 번째 발길질을 피하지 못했고 내 콧잔등에서 으직-하는 소리가 났다.

아이 다리를 한 손으로 잡고, 아마도 왼손으로 코와 입 주변을 틀어막는데 손가락 사이에서 피가 줄줄 흘렀다. 4칸 벙커 계단을 어떻게 뛰쳐 내려와 화장실 세면대로 갔더니 그 짧은 거리 동안 이미 앞섶에 피가 흥건했다. 소리쳐 남편을 부르고 지혈을 하고 퉁퉁 부어가는 코에 아이스팩을 대고 한바탕 전쟁이 지나갔다. 코가 깨진듯한 고통과 머리까지 울리는 통증은 둘째 치고, 아이가 내 얼굴을 이렇게 발로 찼다니 그 정신적인 충격이 컸다.


아이는 워낙 순하고 소심한 성격에다 그날 이전 이후 단 한 번도 그런 폭력적인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막 언어치료와 놀이치료를 루틴하게 시작한 이후라 정말로 내가 원망스럽고 미워 그랬던 걸까. 왜 그랬을까? 이 생각은 한동안 아니 아주 오랫동안 괴로운 기억 중의 하나로 남았는데 현명한 내 친구는 말했다.  

- 애들이 가끔 꿈꾸다 일어났을 때 꿈이 덜 깨서 이상한 짓 할 때가 있어. 그거 그냥 꿈꾼 거야.

그래. 네 말이 맞을 거야.


자자 비극은 여기까지.


그 뒤로 코로나19로 출근부터 퇴근까지의 시간은 마스크를 쓰고 살았다. 다 그렇게 살았던 것처럼 화장을 더 하지 않게 되었고 거울을 볼 일은 더 줄었다. 그러다 가끔 세면 후 내 얼굴을 볼 때마다 얼굴이 왜 이렇지. 이 정도로 못생겼었나?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콧잔등에 흐르는 개기름 라인이 직선이 아님을 발견한 것은 가을을 지나 겨울이 다 되어갈 때 즈음이었다..



1.

나는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코수술이나 하지 뭐 생각했고 내가 항상 가보고 싶던 마음속 버킷리스트. 경기도 Y시의 A성형외과 상담을 당장 예약했다. 내 코를 이렇게 만든 아이의 부친에게 비용 부담을 전가하였으니 마음도 가뿐했다.


대중교통으로 오기 어려운 곳이라 나의 코수술 상담에 온 가족이 같이 왔다. 넓은 부지에 3층 건물, 넓은 로비, 응접실 같은 대기실, 그리고 지나치게 넓은 진료실. 이 모든 일의 원인 제공자와 남편은 또 다른 응접실 같은 대기실에서 놓인 다과를 먹으며 나를 기다렸다.   

지나치게 넓은 진료실 한쪽에는 과장 약간 보태어 12자 장롱만 한 TV가 있었고 원장님은 방금 찍은 내 사진을 그 12자 장롱 사이즈 TV의 왼쪽 절반에, 그리고 오른쪽 절반에는 포토샾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같은 사진을 띄우셨다. 맙소사.


이 글을 읽는 당신. 당신은 6자 장롱만한 자기 얼굴 사진을 마주해본 적 있나요?

벌거벗지 않아도 벌거숭이가 된 듯한 이 공감각적 느낌. 진료실에 원장님과 나 단둘이지만 천만명 관중 앞에 서있는 듯한 이 압박감. 와. 정말 못생겼구나.


나는 코뼈가 휘었으니 코나 수술하면 되겠지. 이런 안일한 생각으로 이곳을 찾았으나 성형수술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원장님은 능숙하게 포토샾을 다루며 내 얼굴의 45도 각도와 90도 각도의 사진을 차례로 다듬기 시작하셨다. 성형과 미에 대한 설명과 함께.

45도 얼굴 라인과 90도 얼굴 라인의 완벽한 예시


- 음. 잘생기셨네요. 잘생긴 얼굴이에요. 지금 얼굴도 나쁘지 않아요 아마도 아버님이 잘생기셨을 것 같아요..로 시작하는 원장님의 철학과 미의 기준에 대한 설명이 시작되었다. 성형이란 코에서 시작하여 눈으로 끝납니다. 코만 해서는 균형이 생기지 않아요... 라며 코뿐만 아니라 이마. 턱 등등 라인에 걸친 모든 부분을 조금씩 조금씩 남김없이 다듬으셨다. 이제 12자 장롱 사이즈 TV 왼쪽 절반에는 지금의 실제 나. 그리고 오른편에는 내가 맞긴 하는데 어딘가 나인 듯 나 아닌 어딘가 연예인 느낌이 살짝 도는 어쩌면 미래에 만날지도 모르는 내가 있었다.


네네 좋아요. 선생님 저 그거 다하고 싶어요.   

네? 그런데 이렇게 하려면 전신마취를 하고 최소 1박 2일 입원을 해야 한다고요?



2.

대한민국의 수도는 서울이고 서울의 수도는 G구인가 아니면 A인가. 여하튼 A의 D성형외과

자본주의 끝판왕이면 실력도 당연한 것 아닐까. 세련된 실내와 다수의 원장님들, 그리고 다양한 국적의 적지 않은 내원객들. 하얀 얼굴의 여자 원장님이 내 얼굴을 만질 때 차갑고 고운 손가락이 기분 좋았다.

- 코뼈가 휜 게 맞는데 정확하게는 두 번 휘었네요. 콧방울 끝까지 휜 것은 아니라 알아채기 어려웠을 듯해요. 콧등에 실리콘 올리면 아주 미세한 각도에도 코 끝은 방향이 바뀌어 보일 수 있고 얼굴의 중심이기에 그 미세함이 아주 커 보일 수 있어요. 실리콘은 비추천이에요. 대신 000을 어쩌고 하고 00을 하고 000을 하면...

사근사근한 선생님.   

선생님의 의견에 동의해요. 네네 그렇게 다 할래요.


3.

대한민국의 수도는 서울이고 서울의 수도인가 싶은 G구는 아닌 또 다른 G구의 입소문 난 L성형외과.

포토샵 못 다루시고 사근사근 상냥하지는 않지만 병원 종사자의 종특으로 느껴지는 어떤 아우라와 실력자의 느낌, 넘치는 내원객과 바빠 보이는 직원들.

이 정도 상담해보니 되었어요. 저는 마음의 결정을 내렸어요.   



4.

2020년 12월 31일

몰랐다. 세상 사람들이 12월 31일에 다들 성형외과에 바글바글 모여계신 줄은.

1~3 중의 한 곳에서 나는 아들 발에 맞아 휜 콧잔등 뼈를 갈아서 다듬고 전신마취는 하지 않았지만 아주 한숨 푹 길게 잘 수 있는 시간 동안 가능한 범위 내 원하는 것을 다 했다.


그리고 바야흐로 2022년 5월 야외 마스크 착용은 해제되었고 나는 이제 10년 만에 만나는 사장님을 마스크 벗은 얼굴로 뵐 것이다.


이해해주세요 사장님.   

이러한 연고로 얼굴에 손을 대었기에.

 




https://youtu.be/jDCvKRnSMas







매거진의 이전글 캐러멜 드리즐 인간이 브리저튼 사위가 되기까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