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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영서 Jun 15. 2022

이걸 보고 웃음이 납니까. 브리저튼 시즌 2

2005년에 호주제 폐지된 나라는 웃지 말 것.   

넷플릭스 오리지널 브리저튼 시즌 2 감상기



1. 가부장에 짓눌린 장남, 장녀의 유치한 로맨스


죽은 아버지 불알 꽉 잡고 자기 연민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헤이스팅스 공작의 트라우마 극복기 시즌 1을 뒤로하고 갑자기 닥쳐온 가부장에 짓눌려 납작해진 장남이 남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헤이스팅스 공작은 숨 막히게 섹시하기라도 했다. 그리고 부모가 상류층의 외면을 받는 혼인을 한 탓에 의붓동생의 행복(안전한 인생)을 위해 최고의 남편감을 구해 주려 고분 고투하는 장녀도 등장한다. 이 장녀 역시 가부장에 짓눌려 애로사항이 많은 인생으로 덜 자라기로는 위의 장남과 막상막하이다. 둘의 차이라고는 이 장녀는 모쏠이라는 것 정도일까.


유치한 감정 공방과 로맨스가 지지부진하게 이어지다 마침내 서로를 드글드글 열망하는 사랑을 확인한 이 장남과 장녀는 갑자기 야외 정자에서 정사를 가진다. 그 둘은 불타고 있는데 보는 사람은 하나도 안 불타오른다. 서울 어느 구 어느 놀이터 미끄럼틀(..)에서 성관계 가진 미성년자들에 대한 기사를 볼 때 들던 그 기분이다.



2. 패더링턴 부인의 진가와 두 소녀의 우정



여러 인종이 뒤섞인 PC 함에도 불구하고 굳건한 남성 중심사회에서 세 딸을 지켜내는 페더링턴 부인은 시즌 2의 숨은 주인공이다. 이 페더링턴 부인은 슬하 아들 없이 세 딸만 두고 있으며 전 시즌에서 도박중독 부군을 잃었다. 2005년 폐지된 K-호주제처럼 이 집안의 남자를 중심으로 먼 친척이 다음 패더링턴 가의 주인이 되어 나타나며 이 새 '주인'의 결정에 따라 페더링턴 부인과 세 딸들의 인생은 결정된다.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러나 대외적으로 결정할 수 없을 뿐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굴러들어 온 공식적인 '주인'을 처리하고 목적을 달성한다. 세 딸을 지키고 이 사교를 떠나지 않는 것. 두 남녀의 유치한 로맨스보다 이 가문의 실제 주인인 페더링턴 부인의 이야기가 시즌 2를 빛낸다.


이제 이 둘은 어떻게 될까.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형태할 수 있는 지극한 애정을 서로에게 품은 이 두 소녀는 시즌 3에서 어떤 관계를 보여줄까. 다음 시즌이 기대가 되는 이유가 있다면 이것 하나뿐이다.



3. 2005년까지 호주제가 존재했던 나라에서 이걸 보고 웃음이 납니까.


웃지 마. 니 얘기야.


10여 년 전만 해도 ‘나’를 중심으로 작성되는 ‘가족관계등록부’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호적등본이 존재했다. 당시만 해도 ‘호적등본을 뗀다’라는 표현이 통용됐다. 호주제도는 남성 가장을 중심으로 입적·복적·일가 창립·분가 등이 이뤄지는 가족 형태다. 여성은 남성에게 종속된 존재로 기능했다.

 "한 집안의 가장(아버지)이 사망했을 때 어머니가 가장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들 밑으로 입적됐던 것도 호주제의 영향이었다."

호주제는 2005년 3월 2일 민법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발췌_경향신문 2018.09.23. '사회 변화는 급행, 법률 개정은 완행'>


갑작스러운 사고로 황망하게 사망하신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경황없이 준비 안된 장남이 이 집안, 가문의 수장이 되어버렸다. 난산을 겪는 어머니와 어머니가 지금 낳으려 애쓰는 막냇동생 중 누구를 살려야 할지 결정을 종용받다가 도망쳐 버린다. 2005년에 호주제가 폐지되지 않았다면 내 주변에도 비슷한 상황이 여전히 숱하게 있을 수 있었겠다. 멀리 가지 않더라도 8세 아들 하나를 둔 나 조차도 남편의 어떠한 부재 시 아들 밑으로 입적될 수 있는 일이니까.


2005년까지 호주제가 존재했던 나라에서 살고 있는 성인이, 그러니까 내가 성인이 될 때도 호주제가 존재했던 나라에서 여전히 살고 있는 나는 마냥 즐겁지는 않았다. 과거를 배경으로 한 저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의 이야기는 내 곁에서는 현재 진행형이다. 법이 바뀌면 세상이 즉시 따라 바뀌는가? 아니잖아. 2022년인 지금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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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브리저튼 원작은 아버지 콤플렉스 또는 트라우마 있는 남성의 성장기 특집인가?  

Q2. 부친이 그렇게 맹독을 가진 벌에 쏘여 황망하게 가셨는데 어떻게 사방이 꽃인 저택에서 생활할 수 있었을까? 벌 천지일 것 같은데. 벌 공포증이 없었을까.




관련 기사

https://m.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1809231027001#c2b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109151528009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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