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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서히 Mar 31. 2024

[서평] 선셋 파크

폴 오스터/열린책들


요즘 저는 소설 읽기에 꽂혀 있습니다. 소설의 긴 호흡이 그리워졌다고나 할까요?

오랜 시간 동안 시각적 영상을 소비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나름의 휴식기였다고 자위하면서도 사실 마음 한 켠은 늘 묵직한 죄책감이 자리 잡았습니다. 책과 글에서 이렇게 멀어져도 되는 것인지, 시각적 영상의 편리함과 자극성에 길들여져 다시는 책을 펼칠 수 없게 되는 건 아닌지 불안감도 밀려 왔었죠. 


글 또한 저에게는 짧은 호흡과 긴 호흡의 글로 양분되는데요. 저에게는 소설이 긴 호흡의 글로 느껴집니다. 인물들을 파악하고 사건을 쫓아가면서 주제를 파악해 가는 과정은 꽤 정성스러운 일입니다. 그 과정을 끝까지 쫓아가지 못하면 소설 속 이야기를 끝내 알지 못한 채 책을 덮게 되어 버리죠. 요즘에는 유튜브 숏폼같은 짧은 호흡의 글도 많은 듯 합니다. 세상사는 일도 버거운데 독서할 때조차 엄청난 집중력과 정성을 쏟아야 한다면, 독자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일 수도 있겠죠. 그러니 잘 팔리는 책, 독자가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는 글을 쓰려면 호흡을 줄여야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백의 미도 적절히 활용하면서 말이죠. 


하지만 짧은 호흡의 글이나 영상에 익숙해 지는 것은 마치 유튜브 숏폼에 길들여지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어 저는 왕왕 의도적으로 소설을 읽습니다. 물론 이것은 제가 소설을 너무나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릴 때부터 할머니, 어머니, 사촌형제들로부터 옛날 이야기 듣던 것을 좋아하던 즉, '이야기' 자체를 좋아하는 성향을 가진 탓에 소설 속 기발한 상상력과 살아 움직이는 인물들의 향연은 제게 힘든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도피처이자 찬란한 꿈을 마음껏 실현할 수 있는 가상의 무대였습니다. 


폴 오스터는 그야말로 타고난 이야기꾼입니다. 뛰어난 창의력이라는 선물을 부여 받은 작가가 얼마나 위대한지 그의 글을 통해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세상 속 진부한 이야기일지라도 날카로운 관찰력과 타고난 필력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또 다른 시선으로 보게 해주고 주제의식을 극대화하여 가슴 속 뭉클함을 이끌어 내는 작가가 존재하는 반면, 폴 오스터처럼 신선한 이야기와 탄탄한 플롯을 제시하면서 세련된 문체로 독자를 사로잡는 작가도 존재합니다. 


폴 오스터의 소설에서 인물들은 한 명 한 명 살아 숨쉬는데 마치 제 주변에서도 언젠가 본 것만 같은 친근함이 풍겨져 나옵니다. 이 소설이 비교적 최근인 2010년에 씌여져 더욱 격세지감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겠지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요 배경인 뉴욕 브루클린, 소호가, 콜럼비아 대학교, 브로드웨이 등은 뉴욕 여행 경험자라면 한번씩 들러봤을 법한 장소들입니다. 그 장소들을 떠올리면서 소설을 읽는 재미도 쏠쏠했지요. 


[내용 요약] - 내용을 미리 알고 싶지 않은 분께서는 점선 부분 스킵해 주세요.


형과 다투던 중 사고로 형을 잃은 '마일스'는 깊은 죄책감에 사로잡혀 집을 나갑니다. 아버지와 새어머니는 그의 갑작스런 가출에 충격을 받지만 굳이 그를 찾으려 하지 않습니다. 집을 떠난 마일스는 '필라'라는 여고생을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고등학생인 필라와 자유롭게 연애할 수 없던 그는 어떤 사건에 휘말려 그녀와 떨어져 지내게 되고 뉴욕에 위치한 '선셋파크'라는 버려진 폐가에서 세 명의 친구를 만나 함께 기거하게 됩니다. 세 명의 친구인 빙, 앨리스, 엘런 역시 각자의 사연과 아픔이 있고 그들은 결국 경찰에게 발각되어 선셋파크에서 강제 퇴거당합니다. 강제 퇴거 과정에서 경찰이 앨리스를 밀어 앨리스가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자, 마일스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여 경찰을 폭행하고 결국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됩니다. 마일스는 자신에게 더이상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며 다시는 어떤 것에도 희망을 갖지 말고 현재, 지금만을 위해 살자고 다짐하면서 소설은 끝이 납니다.

미래가 없을 때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는 것이 가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지금부터 어떤 것에도 희망을 갖지 말고 지금 이 순간, 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
지금 여기 있지만 곧 사라지는 순간,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지금만을 위해 살자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 소설은 특이하게도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다만 현재, 그리고 지금만을 위해 살자는 강한 다짐속에 끝이 납니다. 소설 속 등장하는 마일스, 빙, 앨리스, 엘런과 같은 방황하는 20대 청춘들의 이야기에 온전히 몰입하다 보면 이러한 소설 속 결말은 전혀 낯설거나 어색하지 않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청춘들에게 대입해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결말이라 볼 수 있을 정도니까요.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는 희망에 사로잡혀 현재를 희생하고 가혹한 환경에서 견디던 청춘들은 반복되는 좌절과 실패를 통해 언젠가부터 미래를 준비할 수 없기에 미래를 준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일스가 현재에 집중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한 것은 그의 입장에서 보자면 큰 진전입니다. 과거에 얽매여 현재와 미래에 대해 늘 방관자적 삶의 태도를 유지해 온 그였기에 그의 마지막 다짐은 더이상 방관자가 아닌 주체적인 삶을 살겠다는 스스로에 대한 선언으로 이해됩니다. 


소설은 20대 청춘들의 이야기만으로 채워져 있진 않습니다. 아들인 마일스와 아내인 윌라 사이에서 고뇌하는 60대의 '모리스', 그리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받는 국가에서 고통받는 작가들의 처지를 간접적으로 고발하는 사회적 이슈도 다루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 생애 최고의 해>라는 1940년대 미국 영화를 거듭 등장시키면서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용사들이 겪는 후유증에 대해 20대인 마일스와 그 친구들, 그리고 60대인 모리스 세대가 함께 공유하는 모습을 그려냅니다. 

우리는 세월이 흘러갈수록 더 강해지는 것이 아니다.
고통과 슬픔이 누적되어 더 많은 고통과 슬픔을 견디는 능력이 약화된다.
그러나 고통과 슬픔은 피할 수 없기에, 말년에는 아무리 사소한 실수라도
젊은 시절의 큰 비극에 맞먹는 힘으로 울릴 수도 있다. 


폴 오스터는 그가 말하고 싶은 내용들을 개성 가득한 등장 인물과 주요 이야기 전개에 잘 버무려 자연스러운 전달력으로 우리 마음을 파고듭니다. 그 전달력이 과하지 않고 어떻게 보면 담담하다 못해 냉정함까지 느껴져 이것이야말로 잘 짜여진 소설의 표본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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