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tephan Seo Mar 09. 2019

삶의 소비에서 삶의 생산으로

나는 언제부터 글쓰기를 멈추었는가

과거 싸이월드가 SNS 마켓을 점유하던 시절, 흔히 "싸이어리"로 일컫던 싸이월드 내의 "다이어리"는,  이용자가 글을 작성할 때마다 일종의 내부 재화인 "포도알"을 제공하곤 했다. 미니홈피라는 컨셉으로 등장한 싸이월드였지만, 사진첩/동영상 보다도 한 때 인기를 끌었던 싸이어리는, 미니홈피 주인의 데일리 삶을 글로써 공유함으로써 그들의 삶을 타콘텐츠보다도 디테일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는 채널이었고, 나아가 겉으로 보이지 않는 이면의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는 채널이었다. 나 또한 그러한 싸이어리를 고교시절 그리고 대학교 새내기 시절 꾸준히 애용하였고, 그렇게 모은 포도알이 10만개에 이르렀으니 얼마나 많은 글들을 써왔는지 짐작이 될 것이다.


언제부턴가 나는 글쓰기를 멈추었다. 

싸이월드에 이어 등장한 페이스북에도 종종 글을 쓰곤 했다. 그 주기가 일주, 한달 벌어지더니 기어이 글을 안쓰는 지경에 이르른 것이다. 

1차적인 변수는 SNS 채널 자체의 변화이다. 싸이월드에서 페이스북으로, 그리고 인스타그램으로 이어지는 채널의 변화에서 보이는 특징은, 유저 경험적으로 불필요한 기능이 제외되고, 콘텐츠의 생산이 훨씬 간편화되었다는 점이다. 자연스레 해당 채널 내에서의 콘텐츠의 양은 넘쳐흐르게 된 반면, 과거에 싸이월드를 가꾸고, 다양한 종류의 콘텐츠로 속을 가득 채우던 때와는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많이 가볍고(light) 또 휘발적(instant)으로 변하였다.

이와 별개로 나의 생각의 게으름이 큰 원인이다. 주된 나의 글 주제는 그 날의 나의 생각이곤 했고,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미처 머릿 속으로 정돈하기 힘들었던 나의 생각"을 글로써 정돈하며 가다듬었던 것이며 그 과정에서 - 필요하다면 관련된 다른 글을 읽어본다든지, 타인의 의견을 들어본다든지 - 하며 나의 미숙한 가치관을 조금이나마 "완숙"에 가까워지게끔 채찍질 했던 것이다. 이러한 나의 생각의 부지런함은 군시절 종이 일기장을 끝으로 멈추었다. 애석하게도 사고의 정리와 가치관의 정립은 단기적으로 내게 줄 수 있는 인센티브가 없기 때문에, 자본주의 시장에 내놓인 나는 하루하루 시간을 쪼개어 "돈"을 생산하는 데에 투자했고 온통 나의 머릿 속에는 몸 담은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과 내가 맡은 R&R의 연간 목표 / 분기 목표 / 주간 목표 뿐이었다. 조금 더 장기적인 시각으로 내 삶을 바라보겠다며 취해본 생각들 마저도 나의 커리어 빌딩 내지는 사업 아이템 구상, 직무에서의 성장 등이며 - 그로 인해 각종 스터디, 업계 모임, 자기계발활동 등이 늘어나면서 더욱이 하루하루 나의 삶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은 사라져갔다. 물론 생업에서의 부지런함으로 얻게된 가치는 비단 금전적인 가치 뿐이 아니다. 만약 해당 가치에 올인을 할 것이었다면, 나의 전공을 살려 금융권으로 나아갔거나 전문직으로서의 커리어를 밟아 나갔을 것이다. 그저 스타트업에서의 커리어 빌딩을 통해 얻은 그러한 가치들에 대한 나의 생각을 그간 정돈해오지 못한 것이 안타까운 것이다. 나의 가치관을 정립해가며, 이에 걸맞는 삶과 커리어를 추구한다며 스타트업계에 뛰어들었으나 2015년 이후 4년이 흐르고 있는 지금 막상 나를 돌아보니, 안쓰럽게도 벌써 관성에 끌려 나의 하루를 생산하지 못하고, 소비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내가 혐오하던 인간상의 모습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형성해가고 있던 것이다. 


생각의 정돈 없는 질주 속에서 문득 위와 같은 생각이 든 것은 바로 어제였다. 

내가 그간 벌려온 일들이 - 그것은 대인관계일 수도 있고, 직장에서의 업무/프로젝트일 수 있으며, 개인적인 성장을 위한 활동들일 수 있다. - 해를 거듭할수록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고, 드디어 하루 24시간 한달 30일이라는 유한함(finity)이 Alert를 주면서 알 수 없는 벙찜이 한동안 있었다. 2019년이 시작된 이래 2달의 시간 동안 평일, 주말할 것 없이 소위 말하는 "일정"이 그득그득하였고 - 그로 인해 얻은 가치와는 별개로 그 과정에서의 나의 생각들은 여전히 게을렀다. 소비는 쉽고 생산은 어렵다. 소비만 일삼는 나의 관성으로 어느 덧 나는 나의 29살의 1/6을 묵직하지 않게 소비하고 말았다.


이제 글쓰기를 다시 시작한다.

그것은 나의 삶을 생산해내기 위함이며, 이후 보다 묵직하게 소비하기 위함이다. 

생각을 기록/정리(recording) 하면서 전반적인 나의 삶을 끊임없이 재설계 (recoding) 하는 것.


여전히 바쁜 삶이지만 불필요한 시간 소비를 멈추고, 하루를 돌아보는 여유를 가져보고자 한다. 

글을 안쓴지 오래된 만큼, 과거의 일을 주제로 하는 글과 근래의 일을 주제로 하는 글을 번갈아 쓰려 한다.

그간 쓰고 싶었던 크고 작은 주제(그러니까 나의 생각)는 두서없지만 아래와 같다.


a) 한국의 스타트업 

b) 한국의 모바일 앱 서비스  

c) 한국의 공교육

d) 사회적 경제 - CSR - 


e) 호의와 권리 그 사이

f) "다름"을 받아들이는 자세의 변화 

g) 자의식 과잉의 외부 경제 (external diseconomy)

h) 불평불만 의 세상 (full of complaints)

i) 다수가 권력이 되는, 조직 문화의 맹점

j) 

...



매주 주말 아침에 규칙 연재
글이 쓰고 싶은 평일에 불규칙 연재



2019년 3월 5일 늦은 10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