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리다고 놀리지 말아요

스쳐가는 얘기뿐인 걸

by Stephan Seo

그렇게 2015년 8월 17일부터

나의 애드테크 업계 커리어가 모바일 앱 마케팅 스타트업에서 휴학생 신분으로 시작되었다.


이전 글 : 0. 어쩌다가 스타트업에 왔어요 ?


투박한 도제식 교육의 힘


스물 다섯의 나이에 인턴으로서 회사에 입사했지만, 실제로 인턴이 하는 일이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과 다르지 않았다. M사에서의 인턴십이란, 일종의 probation 기간이 오히려 더 가까운 개념이었다. (인사적인 차이가 있었을 수는 있겠다.) 초기 스타트업답게 신입에게 달콤한 허니문 기간 따위는 없었다. 입사 첫날부터 바로 실전이었고, 부족한 부분은 주어지는 스터디 자료와 본인만의 성실성으로 메워야 했다.


unnamed5.jpg 2015년 버전의 모비스케이프, 지금은 사라진 회사도 많지만 현재에 비하면 확실히 업체 수도 적고, 플레이어의 다양성이 매우 부족했던 2015년이다.


당시 입사 이후 약 10일간의 학습기간이 주어지는데, 10일이 지나면 실제 시험지로 시험을 치렀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요리를 하려면 세상에 존재하는 주요 식재료 쯤은 숙지해야되듯, 업계의 주요 플레이어들의 이름과 대표 이름, 그들의 광고 상품과 특성 등을 달달 외워서 하얀 백지 시험지에 서술하는 방식이었다. 웬만한 암기과목 보다도 숙지하기 어려웠지만 (왜냐하면 서로 헷갈리니까..) 이것들을 완벽하게 외워내기 위해 몇일 밤을 새웠던 기억이 난다. 지금까지 공부했던 그 어느 것보다도 100% 암기 기반의 시험인지라 조금 당혹스럽기도 했다.


당시에는 조금은 무식한 방식이라 생각되었지만 돌아보니 가장 확실하고 솔직한 방식이었다. 덕분에 업계 진입 2주차에 업계 내 주요 플레이어들을 줄줄이 꿰고 있는 사람이 되었고, 실무 진행도 보다 큰 그림 하에서 수행할 수가 있어 독립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어엿한 (정규직과 실무적으로 다를 바 없는) 인턴이 되어 있었다.


이후 회사생활의 곳곳에서 이러한 투박한(?) 방식의 면면들을 볼 수 있었는데, 가령 업계 네트워킹 행사에 참여하더라도 그냥 참여하여 즐기는 것이 아니라, '명함 200장 교환하기' 등 다소 1차원적인 KPI 가 주어지곤 했다. 그런데 그것이 나중에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더이다.


아직 학생 신분인 내가, 회사에 기여할 것들이 많다니


생각보다 내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물론 나중에 알고 보니 일반 대기업들도 생각보다 구멍이 많아서 어떻게 굴러가는지 신기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어, 이는 비단 스타트업만의 특이점은 아닌 것으로 결론이 난 바 있지만... (생각해보면 당시에 나를 포함해서 학생 신분이 6-7명 정도 되었는데도 괜히 자신감을 갖지 못하고 위축되었던 것이 새삼 못났다.)

14568090_10210310276017780_4506261570598948328_n.jpg 구석 자리에 앉아 리서치와 상품기획, 피피티 제작에 여념이 없던 시절

피피티(파워포인트 프레젠테이션 파일)부터 전부 뜯어고쳤다. 이를 하나의 프로젝트로 잡고 "상품소개서 기획 및 제작"을 위클리로 가져갔던 기억이 난다. 신규 입사자를 위한 스터디 자료도 마침 내가 직접 신규 입사자로서 학습 후 시험까지 치렀으니, 복습도 할겸 총대를 잡고 재편을 담당했다. (그것들은 아직까지도 M사의 제안 자료의 뼈대를 이루고 있고, 신규 입사자 온보딩의 자료로 쓰이고 있다는 후일담이..) 또한 사내 일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 희소하여 유창하지 못한 나의 일본어 조차도 큰 기여로 이어졌다. 일본 스타트업 A사와의 파트너십에서 이어진 광고 캠페인 집행은 뒤에서 언급할 카카오 매체와의 콜라보로 장장 1년 기간 동안 월 2-3천 만원의 예산으로 장기 집행되게 된다. 특히 일본 쪽은 레퍼런스 제작이 시급하여 주전공(앱 마케팅)이 아닌 분야에 대해서도 가릴 것 없이(바이럴 마케팅, 인플루언서 마케팅 등) 수주하여 진행했던(고통받았던) 기억이...


스타트업의 매력은 인풋의 아웃풋이 매우 빠르게 나온다는 점이다. 회사에 기여한 바가 가시적인 결과값으로 바로 확인되니 그만한 동기부여 기제가 따로 없다. 더군다나 이제 막 훈련을 마친 훈련병이 곧바로 전쟁터에 (자발적으로) 내몰린 상태였으니 소기의 업적이라도 얼마나 기쁘고 뿌듯했을까.


물론 그 과정에서 읭(?)스러웠던 부분도 많았다.


아 이것이 맨땅에 헤딩이구나


2015년 9월 인스타그램 광고상품이 출시되었고 (지금은 인스타가 광고판이지만.. 그 때만 해도 클린했더랬다.) 테스트 광고 집행을 통한 레퍼런스 제작이 시급했다. 또한 당시 카카오의 광고 플랫폼 (이들의 이름이 매년 바뀌는 데다가 daum 쪽 서비스와 kakao 쪽 서비스가 통합되면서부터 네이밍에 카오스를 겪고 있는 터라 이름이 가물가물하다.) 도 집행 레퍼런스가 필요했는데 - 놀랍게도 M사에서는 아무도 집행해본 적이 없어서 나를 가르쳐줄 사람이 없었다.

10431690_10207558181017125_2657723647477897303_n.jpg " Life is short, " M사의 사훈(?) - 삶은 짧기 때문에 기회가 보일 때 발빠르게 선점하여야 한다는 가르침이 있었다
"승환님이 직접 리서치하고, 제안해서 수주한 다음에 집행해보시면 되어요."

아니 이게 말이 쉽지..라는 생각도 잠시, 이런게 스타트업이라는 깨달음과 동시에 발빠르게 리서치를 시작했다. 지금 돌아보면 가진 것 없는 (인적 네트워크, 리서치 툴 등) 인턴이 참 맨땅에 열심히 헤딩을 한 것 같지만, 그 굳은 살들이 지금의 멘탈 맷집으로 이어진 것이겠거니 싶기도 하다.


이듬해 M사는 카카오 공식 대행사로 선정이 되면서 몸집을 더 키워나가게 된다. 작년에는 네이버 공식 렙사로도 선정되었다는데, 이는 또 어떤 이가 맨땅에 헤딩을 하면서 키워낸 것일까 새삼 궁금해지는 것이었다.


어리다고 놀리지 말아요


하지만 이 모든 과정에서 생각외로 나이에 기반한 '무시'와 '평가절하' 들이 왕왕 있었다. 당시 나는 스물 다섯 살이었고, 회사의 평균 나이는 서른 한 살 쯤이었는데, M사는 수평적인 문화였음에도 한국적인 문화로 인한 불편함이 잔존했다. 특히 이는 워크샵, 회식 자리 등에서 빛을 발하였는데 반말은 기본에, 어린 애 취급을 하는 말투, 그리고 원치 않았던 여러 조언들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회사는 너무 열심히 다니는 거 아니다.'

적어도 스타트업에 (그것도 아주 초기 단계에 놓여있는 스타트업에) 다니면서 이런 말을 조언이랍시고 어린 친구에게 건내다니..본인 얼굴에 침뱉는 격 아닌가 ? 무슨 유교 문화 강한 어느 조직의 부장님 같은 멘트를 ..

어쩌면 그들의 그러한 모습이 나로 하여금 '5년 뒤에는 저들보다 훨씬 멋진 사람이 되어야지' 라는 마음가짐을 하게 만든 것일지도. (그리고 그렇게 5년이 지난 지금 나는 어떤 모습일까?)

15776981_10211203674512184_6273716285288473771_o.jpg 밤새 알콜과 함께 일본어 번역을 하며 제안을 했던.jpg

마케팅 외의 여러 사업 개발(여러 앱서비스)로 어수선했던 조직은 15년 연말이 되면서 개편(정리정돈)이 되었고, 내가 몸담고 있던 마케팅 본부가 메인 비즈니스로서 조명을 받게 되면서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조명을 받을 수 있었다. 그 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 수 있는) 젊은 나이의 체력을 무시할 수 없었다. 당시에는 주중에 야근은 일상이었고, 주말 업무까지 불사할 정도로 열정이 넘치고, 체력이 이를 받쳐줄 수 있었다. 회사가 커지는 것과 나의 월급은 상관관계가 약했음에도 실무 경험에서 얻는 나 자신의 성장에 동기부여 되어 (= 성장뽕에 취해) 미친 듯이 일을 했던 시기이다.



그러는 와중에 나의 계약 기간 (험난했던) 6개월이 끝났다.

2016년 연초 M사는 대규모 조직 개편 (사실 인원 수는 많지 않았지만)을 진행하였는데, 이는 일종의 업무의 분업화였다. 나는 이 과정을 또 경험하고자 M사로부터의 정규직 전환 제의를 받아들였고, 스물 여섯살 상반기 한 차례 추가 휴학을 신청한다.

그리고 2016년 3-4월, 기존 인력의 2배 가량 되는 인력을 충원하면서 회사는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데,

와중에 돌연 나는 5월부터 8월까지, 캐나다에서 3개월 동안 머물며 원격 근무를 하겠다는 결정을 내린다.




어리다고 놀리지 말아요.

어리니까 무서운 거에요. 밥그릇 조심 !

이전 01화0. 어쩌다가 스타트업에 왔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