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스타트업 2년차의 돌연 캐나다행

막연한 두려움을 직접 마주하면, 생각보다 그 크기가 크지 않더라

by Stephan Seo

그리고 2016년 3-4월, 기존 인력의 2배 가량 되는 인력을 충원하면서 회사는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데,

와중에 돌연 나는 5월부터 8월까지, 캐나다에서 3개월 동안 머물며 원격 근무를 하겠다는 결정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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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왜?


이제 막 맡은 바 업무의 숙련도가 높아지고 사내에서의 좋은 퍼포먼스로 입지를 다져가던 때에, 또 새로운 인력들의 대거 충원되면서 조직적인 변화가 시작되던 때에 (지금 돌아보면 그 쯔음이 M사의 앱 마케팅 비즈니스의 태동기였다고 생각된다. 당시 충원된 인력들의 우수한 업무 소화력과, 당시 개편되었던 조직 구조로 인한 업무 효율 증진이 더해져 업계 내에서 M사의 입지가 도드라지게 된다.) 나는 3개월 간의 캐나다행을 결심한다.


"더 늦기 전에," 라는 마음으로 비행기 티켓을 끊었고, 리더와의 면담을 통해 일본 클라이언트 운영 건 담당, 주요 제안서 제작 등 원격으로 근무할 수 있는 업무 범위를 협의하였다. 당시 M사 동료들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의아했던 나의 캐나다 행에는 아무도 모르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막연한 두려움에 대한 정면 돌파

애초부터 글로벌향의 비즈니스로 출발했던 M사였기 때문에 (모바일 앱 마케팅은 국경이 없는데다가 어떤 의미에서는 해외에서 더 고도화되어 있다. 이는 뒤에서 추가로 더 설명하기로.) 사내에는 글로벌 팀이 존재하였고, 주로 해외 앱(게임/비게임) 클라이언트의 국내 시장에서의 앱 마케팅을 지원하였다. 나는 국내 팀 소속이었지만, 영어를 곧잘 하였기 때문에 어쩌다보니 '팍토르'라는 앱 클라이언트를 담당하게 된다.

스크린샷 2020-08-16 오전 1.40.47.png 해외 클라이언트 팍토르가 나의 깊은 마음 속 "앓던 이"를 이르집어 내었다.

싱가포르 데이팅 앱서비스인 팍토르는 TMI 이지만 싱가포르의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기여를 했다는 이유로 (?) 싱가포르 정부로부터의 여러 가지 지원금과 포상을 받는 등 이제 막 떠오르는 신예 데이팅 앱이었다. (현재는 '스와이프'로 이름이 변경된 것으로 알고 있다.) 처음으로 해외 진출을 시도하면서 고른 국가가 한국이었고, '글로벌' 클라이언트를 지원하면서 '앱 마케팅'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가 국내에 드물었기 때문에 M사가 선정된 것이었다. (다음 편에서 다룰 이야기지만, M사의 마켓 내 포지셔닝 전략과 브랜딩 전략은 리터럴리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어나더 레벨...이었다.)


컨퍼런스 콜을 통해 미팅이 진행되었고, 종합적인 앱 마케팅 전략 (ASO - AppStoreOptimization 부터 바이럴, UA - UserAcquisition, 브랜딩까지) 제안 및 수주까지 순탄히 진행된 편이었는데 그 과정에서의 나의 멘탈이 문제였다. 멀쩡히 대한민국의 제도권 교육을 빠짐없이 이수해 놓고는 (심지어 외고에서 영어를 전공해놓고는) 영어로 커뮤니케이션을 함에 있어서 알 수 없는 심적 부담감을 느끼는 것이었다. 불필요한 강박증(동일한 메세징에도 여러 가지 서로 다른 표현으로 전달해야 된다는 집착, 문법과 어휘 선정에 대한 집착 등) 은 사실 건강하지 못한 나의 마음 어느 한 구석에서 발로한 것인데, 이는 '내가 단 한번도 서구권 국가를 살아본 적이 없다'라는 정말 자질구레한 자격지심이었던 것이다. "그게 뭐 대수냐!"라는 내적 위로는 무의미한 헛발질만을 되풀이할 뿐이었고, 가장 확실한 해결책으로서 잠깐이라도 그곳에서 살아보며 "실제로 대수가 아님"을 느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것이 스물 여섯의 나이에, 때아닌 3개월 만기(晩期) 유학을 떠나게 된 배경이다.


어차피 이 업계는 글로벌

물론 모바일 업계, 애드 테크 업계가 국경이 없는 업계라는 점도 위의 니즈에 불을 지핀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이미 많은 앱 서비스가 원빌드로 여러 국가에 동시 서비스 되고 있고, Programmatic buying 을 비롯한 여타 "규격"과 "약속(Protocol)", 그리고 이에 기반한 "기술"들은 해외에서 더 발달하고 있다. (한국은 거래액이나 매출 규모, 모바일 앱 '서비스'의 고도화, 유저들의 모바일 친숙도 등의 측면에서 발달해 있지만, 특이한 대행사 문화로 인해 국제 표준이나 기술력 측면에서 많이 뒤처진다.) 조선시대의 조선통신사처럼 해외의 선진 문물을 답습하기 위해 떠났다면 미국으로 향했겠지만 (혹자들은 내가 그러한 이유로 떠난 줄 알고 있다.) 그리 진중한 목적을 갖기에 2년 차는 너무 어린 때였다. 그저 향후 나의 커리어 빌딩에 있어서 필연적으로 해외 국가와의 커뮤니케이션이 요구될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고, 그 때를 대비에 막연한 심적 부담감을 깨부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을 뿐이다. 와중에 토론토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동생이 워킹홀리데이로 토론토에 1년째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착을 위한 제반사항 - 유심카드, 은행계좌, 숙소 등을 마련하기가 훨씬 수월하였다.



시작이 반이더라

20160801_132100.jpg 11시간의 비행 끝에 벤쿠버에 도착을 했는데...


토론토 직항이 아니라 벤쿠버를 경유하여 입국하였는데,
벤쿠버 입국 심사에서부터 나는 취조실로 끌려가게 된다.


(입국 심사장에서)

심사관 : "토론토에 영어 공부하러 왔니?"

나 : "아니, 그냥 여행 왔어."

심사관 : "흠 조회를 해보니 등록된 학교나 학원도 없네, 정말 놀러온거야?"

나 : "응, 한국에서 좀 힘든 일이 있었어서 잠시 쉬러 왔어"

심사관 : "음.. 3개월 동안 토론토에서 어떤 여행을 할건데 ?"

나 : "딱히 계획은 없어. 그냥 토론토 이곳 저곳 돌아다닐거야"

심사관 : (음 뭔가 수상하다. 불법 노동을 하려고 온 것 같다. 취조실로 넘기자)


그렇게 나는 이상한 길을 따라 취조실 앞에 줄을 서게 되었고, 다소 상기된 얼굴로 여러 생각에 빠지게 되었다. 그 중 가장 크게 들었던 생각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 돌아보니 정말 나같은 입국자도 없겠다 싶었다. 어느 누가 아무 계획도 없이 3개월간 토론토에 오겠는가.


'동북아시아 변방 국가의 선한 사람인 나에게.. 설마 무슨 일 있겠어?' 라는 생각도 잠시, 취조실에서 이슬람계 사람이 나오더니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가 이내 쫓겨나고 만다. 심사관들의 대화를 엿들었는데, 결국은 그들의 국가로 돌려보냈다고. 심사관들의 덩치는 나보다도 (나도 덩치가 큰편인데) 훨씬 컸고, 고압적인 표정과 자세로 일관했다. 나의 바로 뒷사람이 손을 들고 본인은 캐나다인인데 왜 이곳으로 보내졌는지 모르겠다고 하자, 바로 몇 가지 검사를 하더니 미안하다며 내보내줬다. 미루어 짐작컨대 매우 보수적이고 빡빡한 조건으로 입국을 허가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그렇게 2 시간을 서있었고, 토론토 환승 비행기는 나를 두고 떠났다.

나를 취조실로 불러들인 심사관은 덩치큰 백인 아저씨였다. 매우 긴장한 상태로 들어간터라 내용이 구체적으로 기억이 나진 않지만, 대략 나는 불법 노동을 하러 온 것이 아님을 어필하는 데에 중점을 두며 이야기를 전개했다. 이미 일하고 있는 회사의 명함과, 회사 홈페이지에 게시된 나의 사진을 보여주며 나는 한국에 직장이 있음을 어필하였고, 돌아가는 비행기 티켓을 조회하여 보여주며 나는 토론토에 영원히 거주할 생각이 전혀 없음을 강조했다. 그리고 비교적 쉽게 (허무하게도) 금방 탈출할 수 있었다.


돌아보니 영어에 대한 심적 부담감을 떨쳐내기 위해 떠났던 3개월 만기 유학은, 이미 1일차 입국과정에서부터 그 목적이 달성되었던 것 같다. 고마워요 심사관.. (이름이라도 기억해둘걸..)

그리고 그 고난은 다음날인 2일차로 이어지는데, 캐나다 에어는 나의 캐리어 2개 중에 1개를 다른 곳으로 보내버렸고, 그것을 되찾기 위해 수십통의 전화 통화를 하고 있는 나의 모습에서 이미 영어에 대한 심적 부담감이란 온데 간데 없었다.

IMG_5605.JPG 새벽에 도착하여 느즈막이 잠에서 깨어나, 토론토에서 맞이한 첫 햇빛


그렇게 총 92일간의 토론토에서의 삶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감 확보라는 소기의 목적 달성을 넘어서, 나의 커리어에 더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앓던 이는 바로 빼버리는 게 답이다.

(쇠뿔만 단김에 빼지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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