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하면 "내"가 있어야만 "다름"이 있기 때문
그렇게 총 92일간의 토론토에서의 삶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감 확보라는 소기의 목적 달성을 넘어서, 나의 커리어에 더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책과 인터넷으로만 접하던 서방 국가에 처음 발을 내딛은 나였다.
아시아 국가 - 베트남, 일본, 중국, 말레이시아 등 - 은 여행 목적으로 다녀온 적이 있지만, 유럽과 북미를 포함한 서양은 난생 처음이었다. 많은 친구들이 대학생활 초기에 유럽/북미로 배낭 여행을 다녀오거나, 대학생활 말미에 교환학생으로 다녀온다. 그리고 열에 아홉은 그것을 인생 경험으로 꼽는다. '무조건 다녀와야 한다.'
하지만 대학 생활 초기에는 '그럴 돈이 없다'는 핑계가 늘 있었다. 돌아보면 사실 꼭 그렇지만도 않았는데, (당시 카페 아르바이트와 과외 수입을 합치면 월 소득 170만원이 넘었던 기억이 있다.) 정확히는 해외 탐방의 가치를 그리 높게 여기지 않았던 것이다. 허나 이번에는 해외 탐방 목적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목적과는 별개로 주변의 많은 친구들이 누차 말해온 '무조건 다녀와야 한다'의 의미도 깨닫게 되었다.
'이렇게 내가 살아온 생활 양식과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지구 반대편에 존재했구나. 이러한 삶의 방식도 있는 것이구나.' 라는 "다름의 존재"에 대한 인식과 더불어, '그럼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나에게 최선인걸까?' 라는 내가 걸어온 길과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한 보다 포괄적인 관점에서의 재검토가 가능케 되었다. 투박한 표현이지만, 정말 세게 얻어맞은 것과 같은 충격이었고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가장 고마운 경험이었다.
가장 놀라운 학습은 '느긋함' 내지는 '여유'의 가치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1분 1초를 쪼개어 쓰던 나였다. 항상 1분 전보다 1분 후가 더 발전해있어야 한다는 강박증이 있었기에 잠잘 때를 제외하고는 바닥에 등을 대고 눕는 것을 극도로 싫어할 정도였다. 늘 한국 사회에서 높이 칭송받는 '근면성실함'이 몸속 깊숙이 배어버린 것이다.
땅이 넓어서 그런걸까. 토론토라는 도시는 유독 숲과 공원이 많았다. 다운타운으로 일컫는 도심 지역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딜가나 도처에 공원이 즐비했고, 그 규모는 서울의 동네 공원이 비할 바가 못되었다. 허나 더 놀라웠던 것은, 공원보다도 늘 그곳에 누워서 쉬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나야 뭐 백수로서 그곳에 놀러온 처지라지만, 평일 주중 낮시간에 공원에 누워서 쉬고 있는, 그 많은 사람들은 대체 돈벌이는 하고 있는건가 ? 마냥 행복한 표정의 그들은 근심 걱정일랑 찾아볼 수 없는 느긋함으로 세상 가장 편한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문득 생각해보니 토론토는 특산품 (식품과 공산품 모두)이 따로 없어서 대체로 수입품에 의존한 경제체제였다. 그렇기 때문에 생필품 물가가 저렴하지 않았고, 생활 비용이 만만찮게 들었던 도시였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재를 느긋하게 즐기고 있었다. '돈'과 '성공'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금세 뭐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 환경인데, 그러한 것들에 대한 열기는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조금 창피한 에피소드를 꺼내보자면... 대형 마트에서 장을 보고 나면 항상 계산대에는 대기 줄이 기다랗게 놓여 있었다. 갖춰진 계산대 (창구) 개수는 5-6 개로 적지 않은데, 2개 정도만 오픈해놓아 늘 대기 줄이 길었던 것이다. 늘어진 줄을 보면 계산대에서 일하는 직원의 마음이 조급해지고, 계산을 하는 손의 움직임도 빨라져야 할 것인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느긋하게 손님에게 그날의 안부를 묻고 가벼운 대화를 주고 받는다. 심지어 멤버십 카드 발급을 희망하는 손님에게 친절히 서류까지 작성시키고 천천히 카드발급까지 도와준다.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과정에서 속터져 하는 사람은 그 줄에서 오직 나 혼자라는 것이다. (또는 간혹 다른 아시아인이 줄 속에 섞여있다면, 그 또한 속터져 하는 사람 중 하나일 것이다.) 그렇게 줄 속에서 허비되는 시간은, 여러 여건이 갖춰졌을 때(열려 있는 계산 창구가 늘어나고, 직원들의 손놀림이 빠를 때) 대비 30분 정도일 것이다. 해당 시간동안 줄 속에서 사람들은 책을 읽거나 전화 통화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런 모습을 목격하면 스스로에게 되묻기 시작했다. '나는 정작 그 30분이라는 시간을 아껴 다른 곳에 쓰면서 남다르게 유의미한 가치를 창출해내는가?'
하물며 길거리에 거지도 정말 많았는데, 서울의 거지들과 다르게(?) 항상 반갑게 시민들에게 인사를 건낸다. 심지어 담당 구역에서 소일거리(?)도 적극적으로 도맡아 수행하였는데, 대표적인 것이 '편의점 앞에서 편의점 문 열고 닫아주기'였다. 그들의 인사나 호의(?)를 무시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절반 정도의 사람들은 그들의 인사에 대꾸를 해주고 대화를 이어가거나 먹을 것을 나눠 주기도 했다. 캐나다 인들이 그렇게 착하다더니.. (그리고 실제로 그들의 착함 및 친절함은 이곳 저곳에서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거지들도, 그들을 대하는 시민들도 모두 이렇게 여유로운 마음을 가질 수가...
한국인 기준으로 보면, 그들의 음주 문화도 사실 형편없다. 알콜의 종류도 그리 다양하지 못하고 (그들이 마시는 술들은 모두 한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반면, 그 반대는 성립하지 못한다.) 알콜을 마실 수 있거나, 구매할 수 있는 장소도 제한된다. (일반 마트에서 구매가 불가하고, LCBO 로 규정된 마트에서만 구매가 가능하다.) 게다가 알콜과 함께하는 액티비티 마저도 지루하기 짝이 없다. 그저 포켓볼과 다트 던지기가 그들의 entertaining activity 의 전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러한 열악한(?) 알콜 환경에도 그들은 이를 충분히 여유롭게 즐긴다. 느긋하게 Pub에서 맥주를 마시며 포켓볼을 치고, 별도의 장소 이동 없이 그곳에서 맥주를 두어 잔 더 마신다. 그리고 그곳에서 지인들과 웃고 떠들다가 22시가 넘어가면 집으로 귀가한다. 모든 술자리가 대체로 이러한 형태의 반복이다. 기본적으로 소주와 스크린 야구로 1, 2차까지 즐기고 그것이 부족해서 3차를 외쳐대는 한국과는 사뭇 다르다.
토론토가 아주 무료하고 따분하면서 큰 스트레스가 없어 행복한 천국이라면, 서울은 정말 다이나믹하고, 익사이팅의 끝판을 달리는 지옥이겠구나 싶었다. 행복이 자극적인 만큼, 스트레스의 자극도 이루 말할 수 없이 크기 때문에...
당시 나는 스물 여섯살이었고, 스타트업에 조인한지 약 1년 가량 되었던, 파릇파릇한 2년차 사회인이었다. 괜찮은 4년제 학교에서 괜찮은 전공을 수료했고, 학점을 비롯하여 각종 어학 성적 등소위 스펙이라고 일컫는 부분에 있어 딱히 부족한 부분은 없었다. 더군다나 대학 내에서 프로젝트성으로 진행했던 사회적 기업 창업이 제법 좋은 성과를 내고 있었고 (참손길 지압힐링센터 2호점이 잘 안착하고, 3호점 4호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던 때였다.) 시각 장애인들의 시내버스 이용을 위한 앱 개발 또한 여러 공모전에서의 지원금을 통해 진행되며 앱 릴리즈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수익모델이 없었다는 점과 지자체의 관심 없이는 지속이 어렵다는 큰 난관에 부딪혀 접고 말았지만..) 와중에 모바일 업계 내의 스타트업에 종사하며 가파른 성장을 겪고 있었으니 당시의 나는 높디높은 자존감에 세상 무서운게 없던 당돌한 스물 여섯 살이었다. 그럼에도 늘 불안함을 느끼고 있었고, 여유가 넘치는 캐나다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내 삶의 주인이 누구인가'라는 기본적인 질문을 되뇌이며 나 스스로가 속빈 강정은 아닐까 돌아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캐나다인들은 사회적인 "인정" 가치에 집착하지 않는다. 남이 뭘하든, 또는 남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전혀 개의치 않는 삶들을 살고 있다. 그래서인지 #1에서 이야기한 '여유'와 '느긋함'이 거리 곳곳에서 느껴졌던 것일지 모른다. 그러면서도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고, 행복한 일상을 영위하며 타인에게까지도 많은 배려를 배푼다.
일례로 외관을 꾸미는 것과 관련하여 이야기를 하자면, 애초의 꾸밈의 레벨(?)이 한국보다 한참 낮았다.
헤어스타일부터 그리 다양한 스타일링이 존재하질 않는다. (남자는 대머리 / 숏컷 / 긴머리 3 가지로 분류가 되더라) 또 마트에서 가장 잘 팔리는 물품 중 하나가 염색약이다. 그냥 대충 집에서 각자들 스스로 원하는 색으로 염색을 하는게 그들의 문화이다. 한국에서는 커트부터 파마까지 스타일링의 개수는 족히 100개가 넘을 것이고, 그것들 내에서의 파생상품까지 취급하면 500개가 넘을 것이다. 또 분명히 시즌마다 유행하는 "OOO 머리" 로 일컫는 트렌드가 존재한다.
의상도 마찬가지다. 기본 어패럴 브랜드 (SPA 브랜드부터 스포츠 브랜드, 명품 브랜드 등)는 차치하고 각종 온라인 쇼핑몰들이 뜨겁게 성행하는 국가가 한국이다. 반면 캐나다는 이러한 것들에 집착이 전혀 없었다. 오로지 본인이 편한 것이 가장 좋은 옷이라는 관념으로 하의에 일반 레깅스만 입고 다니는 여자가 거리의 30% 가량 되었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한국은 레깅스를 입을 때도 둔부 부분을 치마 또는 짧은 바지 형태로 덧입거나 덧대어 만들어진 레깅스들을 입는데, 심지어 캐나다인들은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밋밋한 레깅스만 달랑 입고 다녔다. H&M과 같이 SPA 스러운 브랜드가 주류였고, 딱히 온라인을 통한 구매는 활발하지 않았다. 특히 남자들의 옷차림은 심각하였는데, 오바를 보탤 필요도 없이 길거리 거지들과 분간이 어려울 지경이었다. 덥수부룩한 헤어스타일과 수염, 반팔티셔츠에 츄리링 바지... 어쩌면 내가 거지라고 생각했던 몇몇 사람들은 거지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그들은 남들의 시선을 1도 신경쓰지 않는, 오직 본인 편의에 따라 외관을 꾸미고 싶을 때만 꾸미는, 그런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 몸매 관리, 식단 관리 등도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지만.. 대략 일맥이 상통하는 이야기들이라 중략 ...)
나는 캐나다에서의 3개월 동안, 캐나다인처럼 살아보려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것에 익숙해지려고) 부단한 노력을 했다. 만 25년 인생을 남들의 "인정 가치"에 기대어 살아왔다보니 (또 그들의 인정이 동력이 되어 달려왔다보니) 마치 삶의 동력을 잃는 것 같은 벙찐 느낌이 들 때도 있엇지만 어느새 한국으로 돌아올 즈음에는 남은 나의 삶을 그려보는 데에 있어서 타인의 시선의 제약 없이 훨씬 자유로운 판단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끝으로 내가 몸담고 있는 '모바일 스타트업'의 기회가 오히려 세계 곳곳에 더 많이 놓여있음에 설레고 벅찼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기준으로 한국은 모바일 선두 국가 중 하나였고 아직 다른 국가들은 뒤에서 열심히 따라오고 있던 터라... 탄탄한 내공을 갖춘 뒤에 그 경험을 들고 해외로 가면 뭐라도 될 것 같은 느낌이 들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캐나다인들은 그들만의 메신저 앱도 없이 그저 기본 메세지 앱으로 연락을 주고 받았다. 지하로 들어가면 모바일 데이터 작동이 되지 않아 연락이 끊기기 일수였고, 유통되던 모바일 기기 마저도 저가형 디바이스들이었다. 기본적인 인프라가 이러하다보니, 그 이외의 부가적인 앱 서비스들을 기대하긴 무리였다.
'간단한 앱서비스 하나만 잘 런칭하며 떼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은데..!'
"갈팡질팡"
- 나도 대기업이나 금융 공기업, 아니면 고시 공부나 로스쿨 입시를 택해야 하는 걸까
- 그 의사결정을 더 늦기 전에 갈무리하여 남들보다 빠르게 성공가도를 달려야 하지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나의 꿈에서 발로한 선택이었을까, 아니면 사회적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함이었을까.
이 모든 내적 갈등은 뜻밖에도, 캐나다 3개월 살이에서 의도치 않게 해소되었다.
여유를 한껏 머금은 채, 나 자신이 원하는 선택지를 충분히 고민하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향후 4년 정도는 미련없이 스타트업에 나를 던져보자는 결정을 내린다.
다시 오피스로 복귀한 나는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학교 졸업을 위해 학과 수업과 회사 업무를 병행하기로 협의하고, 주경야독이 아닌 주경독 야경독의 삶을 하반기에 보내게 된다. 그리고 종강을 기점으로 연말부터 M사에서 스펙타클한 18개월을 추가로 보내게 된다. 팀의 리더 자리를 맡아 여러 사람들을 매니징하게 되고, 동시에 새로운 팀을 창설하여 TFT 처럼 별도의 조직으로 디벨롭하게 된다. 더불어 1,000 명이 넘게 참석하는 업계 행사를 기획 및 진행하기도 하고, 외부 파트너사에 강연을 직접 하러 다니기도 한다.
행복한 성장 경험과 더불어 웃지 못할 힘들고 지치는 경험들까지, 크게 좋았던 점과 아쉬웠던 점으로 나누어 담아보려 한다.
난 비록 지옥이라 할지라도 다이나믹하고 자극적인 한국이 제일 좋더라.(잘 맞더라)
토론토 심심했어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