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거품이 꼈을까. 그리고 이제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스타트업 시장이 꽁꽁 추워졌다는 건 벌써 1년도 지난 이야기로 느껴진다.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 큰 기업들의 대규모 구조조정이 잇따르며 모두가 시장 내 추위를 느꼈다. 기사로 보도되지 않았을 뿐 수많은 국내 스타트업들도 갑작스럽게 구조조정을 감행하거나 서비스를 종료하면서, 업계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들도 유저의 관점에서 시장이 악화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자금 줄이 마르고 있구나.' 또는 '스타트업 거품이 꺼지고 있구나.'
내가 생각하는, 스타트업이 추구해야 할 가치
사실 스타트업 거품에 대해서는 나 또한 거부감이 좀 있었다. 2015년 중순 업계에 몸담은 이후로 가장 가까이에서 이 생태계의 유기적인 성함과 쇄함을 봐온 나로서는 스타트업을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들이 스타트업 가치의 진정성을 훼손한다고 느끼곤 했다. 스타트업의 근본적인 가치는 시장 내 진정한 혁신을 일으켜 사람들의 삶 또는 비즈니스 업계에 긍정적인 변화를 유의미하게 끼치는 것이라는 것을 더 조명했으면 했다. 더불어 일(work)과 삶(life) 가장 굵직한 인생의 두 축이 단절된 것이 아니라 함께 섞일 수 있고(blending), 그리하여 인생의 토탈 행복이 훨씬 더 높아질 수 있음을 증명해 가는 것도 스타트업이 사람들의 삶에 기여하는 큰 가치라고 생각했다.
지난 2018년, 아마존의 CEO 제프 베조스Jeff Bezos는 악셀 슈프링거 시상식에서 아마존 신입사원들을 위한 메시지를 발표하던 중 자신은 ‘워라밸’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워라밸은 일종의 제로섬 게임으로, ‘일’과 ‘삶’ 중 어느 하나를 택하여 한 쪽이 플러스가 된다면, 다른 한 쪽은 마이너스가 되는 거래관계이기 때문이다. 이에, 베조스는 일과 삶을 저울에 올려놓고 견주어서는 안 되며, 이 둘이 하나의 조화로운 ‘원circle’을 이루고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즉, 그는 일과 삶을 시간적 제약 속에서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관계로 본 것이다. (출처 : 기업시민 연구소)
'거품이 끼고 있다'라고 느낀 것은 위 가치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음을 느낀 때부터였다.
대충 포장만 좀 잘하면 투자 가치 올려서 단기간에 큰돈 벌어볼 수 있겠다!
오 스타트업은 꼰대 문화가 없으니 눈치 안 보고 칼퇴하는 삶을 살 수 있겠다!
서로 다른 가치관일 뿐이지만, 그 다른 가치관이 '다수'가 되면서 스타트업 업계의 전반적인 건강이 악화되었다고 생각한다. 뭐랄까 - 가령 학교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뿐 아니라 인성 교육도 챙겨야 하는데, 단순 돈벌이로 생각하는 선생님들이 다수가 되는 순간 공교육 생태계가 위태로워질 수 있는 것과 비슷한 생각이었달까...
VC, PE 등 투자 회사에 다니는 선후배들을 만나면 이 문제를 더 체감할 수 있었다.
"A 회사 서비스 되게 잘 될 것 같은데, 현업에서 보는 너 생각은 어떠냐"
>> "엥 그 회사 DAU 1천 명도 안되고, 아직 PMF 도 못 찾은 것 같던데용"
또 가치를 부풀리는 각종 보도자료를 봐도 쉬이 느낄 수 있었다.
'스토어 평균 수치 대비 상위 25%에 랭크되었다'
>> '스토어에는 무의미하게 업로드된 앱들이 수백만 개라, 어지간하면 상위 25%일 텐데'
'한 달 만에 5만 명 유저 획득'
>> '마케팅 비용을 얼마나 사용했는지는 다루질 않았네'
그렇게 거품들은 끼어갔고, 실태가 22년도 중순부터 드러나면서 칼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수익화에 집중하기 시작한 시장
칼바람이 한바탕 불면서 많은 서비스들이 종료되고, 인력을 대폭 줄였다. 그리고 제품이 나아가야 할 여러 로드맵에서 '수익화' 선택지의 우선순위가 높아졌다. 2022년 하반기부터 그 변화를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신선 제품만 고집하던 마켓컬리는 뷰티컬리를 출시하며 뷰티 제품으로 라인업을 확장했다. 돈을 관리해 주던 가계부 뱅크 샐러드는 유전자 검사 등 건강 관리 기능을 출시하며 제품 정체성 변화를 꾀했다.
비게임 앱에서 등한시되던 '광고 수익화', '구독 수익화'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관련된 티타임 및 강연만 수십 차례 진행하였다. 또한 AB180의 2023년 MGS (Modern Growth Stack)의 주된 아젠다도 제품으로 돈을 버는 방식이었고, 구글의 2023년 App Summit의 주된 주제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유니콘'을 대체하는 '켄타로우스형 스타트업' 이라는 표현들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제 투자업계도 스타트업을 바라볼 때 성장 가능성 뿐 아니라 현재의 수익성을 함께 보겠다는 것이다.
스타트업의 하락세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 벤처캐피털 베세머벤처파트너스(Bessemer Venture Partners)는 최근 “유니콘의 시대가 저물었다”고 선언하며 앞으로 성장성에 중심을 둔 '유니콘' 대신 현실적인 관점의 수익성(사람)과 미래를 바라보는 성장성(말)을 충족시키는 '켄타우로스형' 스타트업에 적극적인 투자를 하겠다고 나섰다. 출처 : 문화뉴스(https://www.mhns.co.kr)
균형 있는 제품 성장의 수단
사실 수익화를 최우선시하는 것도 건강하지 않은 접근이긴 하다. 단기적으로 돈이야 벌리겠지만, 지속 가능성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제품의 본질에 자금을 투자하며 유저에게 제공할 수 있는 가치를 공고히 해야 하고, 또 합리적인 마케팅을 통해 유저 획득도 꾸준히 해야 한다. 여기서 적절한 수익화는 제품가치증대와 유저획득에 필요한 자금을 제공해 줄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증대된 제품 내 가치와, 획득한 유저들로 인해 매출은 더 증대할 것이고, 안정적으로 선순환을 그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간 많은 서비스들이 수익화 꼭지를 거의 챙기지 않았고,
이를 투자 유치로만 갈음하려 했던 것이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자금 조달을 '수익화' 보다 '투자 유치'에 과하게 의존하게 되면
'제품가치증대'에서 '본질적인 가치' 보다 '보이는 가치'에 집중하게 되어 건강하지 않게 될 수 있다.
'유저 획득'에서 '합리적인 획득' 보다 '보이는 획득'에 집중하게 되어 건강하지 않게 될 수 있다.
수익화를 우선시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또한 투자 유치를 받지 말라는 것도 아니다. 제품/서비스 속성에 따라 그 가중치는 크게 다를 수 있다. 그저 적정 단계에서 자체적인 수익화 꼭지를 챙기기 시작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모두가 힘을 내야 할 때
갑작스러운 시장 변화에 대응하며 허리띠를 바짝 조이고 각고의 노력을 한 많은 회사들로부터 좋은 소식이 들려온다. 8년 연속 적자에 2022년 550억 적자를 기록했던 당근 마켓은, 2023년 하반기 흑자 전환을 예고하고 있다. (공식 보도자료는 아직 없는 것 같다.) 광고 매출이 크게 견인한 것으로 추정된다. 가장 가까이에서는 알라미의 광고 수익화 서비스(DARO : Delightroom Ad Revenue Optimizer)를 이용한 제품들이 BEP를 거뜬히 넘기기 시작했다.
슬픈 소식들도 여전히 들려오고 있다. 작년 초 아직 투자금이 남아있던 서비스들이 1년 여의 런웨이를 거쳐오며 결국 투자금이 동나게 된 것이다. 22년 발 칼바람은 사실 멈추지 않고 계속 불고 있었던 것.
본글 초입부에 내가 정의했던 스타트업의 가치로 돌아가보면,
시장 내 진정한 혁신을 일으켜 사람들의 삶 또는 비즈니스 업계에 긍정적인 변화를 유의미하게 끼치는 것
인생의 토탈 행복이 훨씬 더 높아질 수 있음을 증명해 가는 것
그 쉽지 않은 길을 걷고 있는 모든 스타트업 종사자들에게 힘내자는 메시지를 전해본다.
수익화 관련해서 도움이 필요하신 분들, 편히 연락 주세요. :D
가벼운 커피챗도 좋고, 별도의 무거운(?) 세션 진행도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