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쓰려거든 뭐로 쓰든 미리 미리 쓰세요!
어제 또 발표를 하다가 울어버렸다. 와락 쏟아지는 눈물을 아무리 참으려 해도 참을 수가 없었다.
사실 발표를 준비하던 전날 밤부터 느낌이 쎄했다.
그리고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정확히 염려했던 슬라이드에서 눈물이 터져버렸다.
보통 희희낙락 보다 빡세고 힘들 때 눈물이 나오기 마련이다. 극히 드물긴 하지만 가끔 번아웃 상태가 올 때에 멜랑꼴리해질 때가 있곤 하다. 하지만 어제의 눈물은 힘듦이 원인이 아니다. 딜라이트룸에서의 발표는 대체로 팀으로서 함께 일궈낸 성과 내지는 레슨을 공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데, 그 성과 및 레슨은 '힘듦'을 통해 얻어진 때가 많다. 그러한 빡셈 공유 발표를 적어도 누적 70회 이상을 했지만 눈물이 차오른 적은 단 2회에 그친다. 그 2회는 어떤 공통점들이 있었을까.
그 2회의 발표를 돌아보면, 명확하게 눈물 버튼이 눌린 시점들이 있다.
그 시점의 슬라이드를 돌아보니 답이 나왔다.
첫 '발표 중 눈물' 경험은 나 조차도 예상치 못하였고 또 처음 겪는 일이라 스스로도 놀랐는데 - 무탈히 발표를 이어가다가 마지막 파트에서 'Special Thanks to' 를 보는 순간 울컥 감정이 올라왔다.
해당 발표는 제품 팀의 '2-3년 여의 오랜 숙원 과업'이였던 멀티플 미션을 출시하고 그 후기를 경험하는 발표였다. 여러 논의와 갈등을 거치다가 진전 없이 오랜 기간 휴지기를 갖고 있었는데, 그 즈음 다시금 논의를 부활시켜 결국 모두가 만족할만한 UI/UX 로 빠르게 잘 마무리를 지었던 과업이었다. 해당 프로젝트의 막판 멤버는 나를 포함하여 4명이었지만, 그 결과물이 오기까지 치열하게 헌신했던 다른 동료들에게도 감사를 표하고 싶어서 만들었던 'Special Thanks to' 였다. 하지만 그 순간 더 크게 느꼈던 감정은 고마움 보다는 미안함이었다. 뭔가 뒤에서 마음 고생은 고생대로 다 하고, 막상 출시의 영예는 누리지 못하게 만든 것 같아 미안했던 것 같다. 그 고생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결과물로 이어지지 못했을 것인데, 그들의 헌신과 노력을 모두가 꼭 알아줬으면 했던 것 같다.
와락 터졌던 그 눈물은 그렇게 딜라이트룸의 1호 '발표 중 눈물' 이 되었다. 재밌는 건 딜라이트룸에 9년간 없었던 '발표 중 눈물' 사례가 채 1호 이후 한달이 지나지 않아 2호, 3호 생겨났다는 사실..
돌아보니 그 즈음 우리 조직 문화의 특성이 발현된 것으로 보인다. 그 어느 때보다 제품과 비즈니스가 성장하던 때였는데, 동시에 우리의 조직 문화도 함께 무럭무럭 성숙해지고 있었던 때였던 것이다. 동료를 '함께 협업하는 사람' 이상으로 '함께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서로 아끼고 깊게 애정하는, 그 특유의 문화가 '발표 중 눈물'로 드러났던 게 아닐까 싶다. 흔히 이야기하는 '동료애'가 정말 진하고 깊은 딜라이트룸이다.
이번 발표도 정확히 그러했다. 다른 팀으로 떠나보내는 동료에게 그간 우리 팀에서 고생 많았다는 메세지를 전하는 슬라이드에서 눈물이 터졌다. 함께 티키타카 일하는 재미를 잃게 된 것이 슬펐던 것이 아니었다. 차일피일 미뤄왔던 '감사의 표현'을 제 때 전하지 못한 채 타팀으로 떠나 보내게 된 것이 미안했던 것이다.
그 동료는 항상 묵묵히 2-3인분을 해내는 슈퍼스타였기에, 다른 멤버들 보다 1:1 도 적게 했고, 협업 과정에서 내가 가장 신경을 덜 썼던 멤버였다. 그러면서도 나를 신뢰해주어 난이도 높은 기획, 번거로운 기획 등 뭐든 마다 않고헌신적으로 개발에 임해준 동료였다. 덕분에 얻은 제품적인, 인간적인 배움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 바쁘다는 핑계로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전하지 못하였다. 미루고 미루다가 분기말 워크샵에서야 감사를 전하게 된 것이다. 심지어 그 발표 자료를 워크샵 전날 새벽에 급하게 만드는 것 조차 속상했던 것 같다. 이 정도 기여를 보여준 동료라면 선물이라도 준비했어야 하는 거 아닐까. 워크샵 새벽 당일까지도 나와 함께 막판 QA 를 달려주는 동료인데 ...
그래서 여기서의 배움은, 고맙다는 말을 미루지 말아야겠다는 배움이다. 아끼고 애정하는 만큼, 시간을 더 내고 마음을 더 써야 한다. 돌아보니 간사하게도 함께 할 때는 그 고마움을 fully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사람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말이 있듯 나도 이번 기회에 그 소중함을 더 절실히 깨닫게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더 미안했던 것 같다. 고마운 마음을 제 때 표현도 못했는데, 심지어 생각보다 훨씬 더 고마웠던 동료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런 시점에 눈물이 터졌던 것 같다.
아휴... 후유증이 생각보다 길다. 그 먹먹함이 쉬이 가시질 않네. 껄껄.
두고 두고 감사를 표하며 회복해야겠다.
평소에 고마움을 느낀 모두에게 연락을 돌려봐야지 -
동료애 문화가 강한 딜라이트룸. 10년이 지나 이 시절을 돌아보면, 어떤 추억으로 자리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