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 문제가 아니라, 안 하는 게 문제예요
아이디어 불패의 법칙을 비롯한 여러 좋은 글들에서 입을 모아 이야기합니다. 좋은 아이디어, 될 만한 아이디어가 비즈니스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말이죠. 틀린 말이 아닙니다. 저도 기획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다 보니, 10%의 개선보다는 10x를 할 수 있는 능력을 항상 갖추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큰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이디어 레벨에 너무 오래 머문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글들은 사람들이 10x를 고민하지 않고 10% 개선에 그친다는 점을 문제로 꼽지만, 제가 생각했을 때 10x는커녕 10% 개선 조차 하지 않고 제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것입니다.
재밌는 건 주변의 좋은 아이디어들은 딱 들었을 때 "와 신박하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지?"는 생각보다 드물다는 점입니다. 대부분은 "와 좋다. 안 그래도 이런 거 필요했는데" 내지는 "아 나도 비슷한 생각 했었는데, 내가 해볼걸"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아이디어들이죠. '안 그래도', '나도 생각했었는데'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누가 먼저 시도해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이게 좋은 아이디어인지 아닌지 가장 잘 판단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그냥 한번 해보는 것'이기도 하고요.
저는 그냥 한번 해보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이때 중요한 건 '힘을 빼고' 해보는 것인데요, 그래서 '그냥 한번'이라는 부사어를 붙여봤습니다. 한 번에 완전을 기하는 것은 결코 좋지 않습니다. 실제로 확률적으로 첫 시도에 완벽할 수도 없고, 그 시간에 그냥 한번 빠르게 한번 해보는 것이 더 빠르게 정확도 높게 완벽해질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죠.
여기서 정말 좋은 점은, 좋은 아이디어 후보들은 도처에 널려있다는 점입니다. 회사에서의 업무 미팅, 캐주얼 담소, 점심 식사 때에 나누는 이야기들 속에 좋은 시드들이 정말 많고요, 회사 밖에서도 업계 지인들과의 티타임, 술자리에서 오고 가는 이야기마다 좋은 아이디어 후보들이 한두 개씩은 꼭 있습니다. 잘 메모해 두었다가 최소한의 기획을 뽑아보고 (기획 시간 30분 이내) 괜찮다 싶으면 그냥 한번 해봅니다. 그렇게 여러 차례 시도를 하는 과정에서 10x를 위한 기획을 가장 가까이에서 뽑아보는 거죠.
처음 딜라이트룸에 입사했을 때, '멀티플 미션'이라는 기능이 여러 이유에서 개발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해당 기능을 원하는 유저들이 많았던 터라, 사실 그냥 한번 출시해 보면 되는 건데 뭔가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지지부진하고 있었죠. 저는 그걸 그냥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기획을 간소화하여 바로 출시했습니다. 미션 간의 순서를 조정하는 기능도 넣어야 되지 않겠냐는 피드백이 문득 기억이 납니다. 힘을 너무 바짝 준다고 느껴서 그냥 한번 출시해 보고 유저 피드백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갔죠.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순서 조정을 희망하는 유저 요청은 한 건도 없었지만 말입니다.
이후에도 출석체크, 친구초대, 메인 배너, CRM 등 제품 내 다양한 영역들에서 '그냥 한번' 빠르게 피쳐를 내곤 했습니다. 안될 이유가 참 많았는데도, 되는 선에서 먼저 출시를 해보곤 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다 제 아이디어가 아니었습니다. 동료들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의 아이디어들이었습니다. 저는 그냥 잘 주워 담아서 해본 것이고요. 물론 아쉽게도 임팩트를 내지 못한 기능들도 있습니다만, 적어도 실질적인 제품 레슨들을 내어주어 제품 로드맵을 꾸려가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죠.
문화 기획은 이보다 조금 더 어렵긴 합니다. 제품과 다르게 '아이디어의 좋음' 정도를 수치화하기가 어렵고 또 Roll back 이 어렵습니다. 또 유저의 목소리를 면전에서 들을 수 있기도 하고요. 그렇기에 진행 간에 세심함이 더 요구되긴 합니다만, 근본적인 골자는 동일합니다. 좋은 기획이 여기저기 널려 있고, 그걸 잘 주워서 그냥 한번 해보는 것이지요. 근데 이제 약간의 세심함을 곁들여서.. '약간'을 강조한 이유는 세심함에 집착하다가는 아무 시도도 못하게 되어 10% 개선도 못하게 되기 때문이고요.
이번 분기 조직 문화 쪽 기획 역할을 맡은 이후 약 두 달간 여러 필요한 시도들을 그냥 한번 해보았습니다. 우선 1) 타운홀 미팅을 한차례 개편 했어요. 시간대를 금요일 오후에서 오전으로 옮기면서 좀 더 참여율을 높이고, 건강한 타운홀의 바이브가 점심시간까지 이어지게끔 해보았어요. 구성원들 사이의 2) 밍글링 진작을 위해 알라밍(4-5명씩 조를 편성하여 분기 1회 1시간 일찍 퇴근하여 밍글링 하는 이벤트)을 기획했고, 점심시간에 마리오 카트를 할 수 있게끔 3) 닌텐도를 세팅해 봤어요. 매 분기 진행되는 분기 워크숍도 이번에는 4) 송년회 느낌을 더하면서 동시에 구성 자체에 변화를 줘봤고요. 한번 꼭 해보고 싶었던 5) 해커톤도 진행해 봤어요. 관련해서는 실질적인 효능(즐거움, 유익함 등) 및 레슨 (이렇게 하면 더 좋았겠다.)이 많아서 별도 글로 한번 회고해보려 합니다. 6) 리더십을 위한 교육 세션도 기획이 되어 곧 진행될 예정이고, 억지를 좀 섞어서 7) 리더들끼리의 북 스터디도 진행 중에 있어요. 이 외에 채용 관련해서도 8) 인턴 기수제 운영도 한번 해보고 싶어서 모집 & 인터뷰 중에 있고, 뾰족한 시니어 채용을 위해 '9) 채용 멱살잡이 미팅'을 이끌며 채용 파이프라인도 스프린트처럼 돌려보고 있습니다.
역시나 이 모든 아이디어들은 제 머릿속에서 나온 것들이 아니에요. 늘 있었던 아이디어, 어디선가 보고 들은 아이디어들을 잘 주워서 실행으로 옮겼을 뿐입니다. 실제로 옮겨놓고 보니 또 제품 기획과는 다른 점이 있더군요. 레슨이 휘발되기 쉽다는 점인데요, 그냥 해보는 것의 핵심은 레슨의 누적이기 때문에 이 부분을 보완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갖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또한 그냥 한번 해봤기 때문에 깨달을 수 있었던 점이죠.
글을 적다 보니 문득 궁금해집니다. 그냥 한번 해보지 않고 미루는 이유가, 심사숙고하기 위함이기만 할까요?
그냥 하면 정말 안될 가능성이 높을 것 같아서 더 숙고해보고 싶은 것일 수도 있겠다만, 단순히 겁이 나서 안 하는 것이 더 클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저도 겁이 납니다. 매우 평안한 상태에서 위 시도들을 해왔다면 거짓말입니다. 하지만 이 시도를 통해 얻게 되는 변화와 레슨들이 너무 기대되기 때문에, 심하게 달콤할 것을 알기에, 그 불안함을 누르고 시도해 보는 것이지요. 생각보다 이 시도들은 '인생을 걸 정도의 과감함'을 요구하진 않아요. 실패해도 크게 다치진 않는다는 뜻이지요.
정말 진심으로 무언가의 변화, 성장, 나아가 혁신을 원한다면 오늘부터 바로 그냥 한번 해보세요.
어떤 아이디어를 시도해 볼지는, 어제오늘의 대화 속에서 고르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