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첫 스타트업과의 이별

진실되고 순수했던 감정

by Stephan S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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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초, 나는 나의 첫 스타트업 회사인 M사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것은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비단 한 순간의 불만이 트리거가 되어 나의 퇴사로 이어진 것이 아니었다. 모든 첫 경험이 그러하듯, 첫 회사가 갖는 의미는 일개 회사 그 이상의 것이었고 특히 그것이 스타트업이었기에 더욱 더 나의 의사결정을 어렵게 만들었다.


무엇이 나의 의사결정을 망설이게 했는가. 마치 연애의 감정과도 같이 당시 나는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 미묘한 심정이었으나 2년 반의 시간이 지난 지금 그것을 러프하게나마 돌아보면 아래와 같은 이유였던 것 같다.


1. 사람


함께 일한 동료들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흔히들 회사에서 가장 큰 스트레스가 회사 내의 사람들이라고 하는데, 오히려 반대였다. 그들이 있었기 때문에 나의 퇴사가 조금이나마 더 늦춰질 수 있었다. 가장 많이 스스로 되뇌였던 질문은, '이러한 동료들과 일할 수 있다는 장점이, 다른 모든 단점을 커버할 수는 없을까.' 물론 정답은 '없다.'였지만...


사실 학교든, 군대든, 동아리든, 연애든 '사람'이라는 변수는 예측 및 통제가 가장 어려운 변수이다. 레퍼런스 체크, 인터뷰, 교육 등으로 가려내려 해도 실제로 함께 하기 이전에 50%를 파악하면 다행일까. 야속하게도 최고의 동료가 최고의 복지라는 말이 있듯, 회사 생활 만족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변수 또한 '사람'이다. 일주일 중 5일의 주중 시간을 함께 보내는만큼 나 자신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최고의 복지는 최고의 동료이다.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당시의 동료들은 기본적으로 일을 잘했으며, 무엇보다 일을 더 잘하고 싶어했다. 본인의 성장을 꾀하기 위해 능동적으로 일하였고, 자신의 업무가 아닐지라도 동료를 도와 협업할 줄 알았다. 업무 외적으로도, 같은 또래다보니 일상 속의 고민들을 공유하고 서로 힘을 얻기도 했다.

M사는 그 이후에 업계 내에서 "인재사관학교"라는 별명을 갖게 된다. "인재"라는 것은 동료들이 일반적인 "인원"이 아니라 "업무 재응을 갖춘 인원" 이라는 의미일 것이고, "사관학교"라는 것은 M사가 "교육을 통해 인원을 인재로 키워내고, 밖으로 졸업을 시켜 배출한다"라는 의미일 것이다. 실제로 M사를 거쳐간 많은 사람들은 업계 내 여러 파트너사들로 흩어져 1인분 이상의 몫을 해내면서 특유의 넘치는 에너지로 큰 영향력들을 행사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시니어의 부재'가 큰 퇴사의 원인 중 하나였다. 1년 좀 넘게 근속한 이후 바로 나는 팀장이 되었고, 그렇게 1년 반이 더 지나고나니 나를 가이드 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타트업이라는 조직 특성상 '시니어'들을 채용하고 근속시키는 것이 어렵다. 문화상으로도 이질감으로 인해 적응이 어렵고, 애초에 그들의 연봉 조정부터가 난관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계약 관계만으로 시니어를 꾀어내긴 어렵기에, 지인기반 내지는 지분기반(?)이 아니고서야... 확실히 주변의 스타트업 중에 시니어들이 잘 갖춰진 스타트업이 드물만 하다. 산전수전 겪은 시니어들이 사내 주요 부서들을 맡아주면 사업적으로도 큰 도움이 되고, 심적으로도 크게 의지할 수 있다. 나아가 커리어 로드맵을 구상하는 데에도 실질적인 조언들을 구할 수 있다. M사에서도 수차례 시니어 채용을 시도하였으나 별다른 성공을 거두지 못하는 과정을 보면서 (그들은 모두 일찍이 퇴사하였다. 그것도 아주 요란스럽게..) 고민이 깊어갔다.


2. 자율 - 권한과 책임


자유롭게 나의 생각을 펼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것, 그것은 큰 매력이었다. 다른 회사에서 나의 연차에 가능할까? 어느 정도 정해진 업무 수칙은 있었지만 수칙 자체가 말랑한 편이었고, 더군다나 나는 상당히 자유로웠다. 경영진도 젊고, 회사도 젊었기 때문에 상호간의 믿음에 기반한 자율 근무가 가능했던 것이다. 나이가 좀 더 들고 보니 그것은 당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정말 큰 특혜였다.


단순히 업무 환경이 자유로웠다는 의미가 아니다. 업무 자체가 자유로웠다. 물론 큰 방향성은 존재하였다. 글로벌 팀을 구축해야했고, 광고 운영팀을 매니징 해야했다. 다만 구체적인 투두들이 주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아직도 기억하는 M사에서의 나의 행복한 모습은, 오전 시간에 카페에 앉아 주간/월간 플래닝을 짜는 모습이다. 진심으로 우리 회사가 잘되었으면 하는 강한 열망과, 내가 달려가야 하는 큰 방향성의 연장선에서 나의 투두를 직접 양산해 나가면서, 영겁의 세계를 스스로 일궈가며 영위하던 나였다.

자율의 완성을 위한 수많은 제반 조건 중 단연 1등은 책임이다

하지만 그러다보니 조금은 멍청한(?) 시행착오가 빈번했다. 이론학습이 부족한 상황에서 바로 실습도 아니고 실전에 돌입한 케이스다보니 더 빠른 길을 택할 수 있었음에도 삥 돌아간다거나, 아예 잘못된 길로 들어선 적도 종종 있었다. 그럴 때마다 크나큰 책임감 (부담감) 을 느끼곤 했는데, 지금 돌아봐도 어린 나이에 감내하기에는 다소 무리인 무게였다. 특히 회사의 성장이 빨랐다보니, 한 광고 캠페인당 예산이 1억이 넘어가면서부터는 주어진 자율로부터 느껴지는 기쁨보다는 책임에서 오는 압박감이 더 심해졌다. 애석하게도 이러한 상황에서 내가 의지하고 자문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부재했고,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내가 팀원들의 책임까지도 짊어져야 했다. 그들에게 업무적인 가이드를 제시해야 했고, 그러한 가이드로 인해 발생한 결과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 했다. 가끔은 그들이 만든 사고에 대해서도 대신 책임을 지곤 했다.


위 2 가지 특징은, 그것 자체로서 매력이기도 하면서 나를 힘들게도 하였던 요소였다. 힘든 부분도 컸지만, 돌아보면 그것들의 매력은 그 힘듦을 커버하기에 충분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크리티컬한 이유로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3. 무형의 것에 대한 지속적인 회의감


앞선 글에서도 언급하였지만, 업계가 빠르게 변하는 와중에 나는 실무에서 손을 떼었기 때문에 점차 도태되어 가는 느낌을 저버릴 수 없었다. 실제로 이러한 실무적인 전문성은 매니징을 함에 있어서도 중요한 자질이었기에, 스스로 생각하기에 나의 매니징은 점차 공허한 매니징이었다. 나는 실무에 대해 점점 갈증을 느끼기 시작했고, 결국 2017년 하반기에는 덜컥 큰 캠페인 하나를 도맡아 진행하게 되었는데 리소스상 실무와 매니징을 병행하는게 불가한 구조였다보니 실무에서도 매니징에서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현재의 조직 구조 하에서 '나는 영원히 실무는 못하겠구나'라는 절망감이 이러한 공허함을 더 크게 느끼게 만들었다.

과연 나의 머릿 속에 전문성은 쌓이고 있는걸까.

또한 주요 비즈니스 모델이 대행업이다보니, 뚜렷한 제품을 기획/개발/판매 하는 비즈니스와 달리 유형의 것에 대한 결핍이 컸다. 본래 조인할 당시에는 대행 서비스 이외에도 크리에이티브 기획, 애드네트워크 플랫폼 개발, 퍼블리셔 수익화 플랫폼 개발 등 모바일 앱 마케팅 통합 솔루션으로서 다양한 사업 계획이 있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미디어 렙사 비즈니스로 무게중심이 옮겨지면서 이러한 결핍감이 더욱 가속화 되었다.


모바일 애드테크 업계에 발을 들이면서, 젊은 나이에 실무적인 전문성을 갖춘 업계의 원로가 되는 것이 목표였는데 현재의 업 자체가 tangible 하지 않은 데다가 그러한 업을 매니징 하는 입장이었으니 회의감이 깊어갈만 했다. 결국 알맹이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이래라 저래라 디렉팅만 하는 전형적인 대기업 부장님이 되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않을까? 라는 푸념이 이어졌던 것이다.




스타트업을 경험해본 사람은 이해하겠지만, 스타트업에서의 3년은 일반 회사에서의 3년과 다르다. 하루하루가 전쟁이기에, 한달 한달에 매출액이 달라지며 매년마다 사업의 방향성이 달라진다.

결코 짧지 않았던 나의 첫 회사를 떠나면서 느꼈던 나의 감정은, 이제 조금은 어렴풋해졌지만, 그것이 기뻤거나 슬펐거나 할 것 없이 분명 순수하고 진실된 감정이었다.


3월 초 나는 A4 2장 분량의 장문의 이메일을 적는다. 위의 내용들을 포함하여 더 많은 나의 생각과 의견들을 담아 인사팀과 대표님께 전하였다. 의도했던 바는 신라시대 최치원의 시무 10조와 같은 것이었는데, 의도치 않게 다소 감정을 많이 섞게 되어 아쉬웠던 기억이 난다.


2년 반이 지난 지금 M사는 업계 내의 top tier 렙사로 발돋움하였고, 연 매출 1,000 억을 앞두고 있는 로켓이 되었다. 아련한 나의 첫 회사에서의 경험이 큰 자산이 되어 나 또한 퇴사 이후 2년 여의 시간 동안 새로운 도전과 성장을 맛보게 되었고, 지금 현재도 열심히 달리고 있다. 사람의 인생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언젠가 어디에서 또 다시 함께 새로운 사업을 함께 할지도. 그 때까지 더 멋진 사람으로 거듭나야겠다.


2018년 4월 퇴사를 하면서 나는 아무런 행선지를 정해두지 않았다.

나름 지칠대로 지친 상태였기에, 모든 선택지를 열어놓고 있었다. 로스쿨로의 진학, 일반 대기업에의 입사, 공기업에 대한 재고민, 다른 스타트업으로의 이직 등 리터럴리 모든 선택지를 열어놓았다. 일단은 백수로서의 삶을 즐기기로 결심하게 되는데, 3주도 지나지 않아 커리어 방향에 대한 결정이 내려진다.




모든 선택은 기회비용이 발생한다. 득과 실에 대한 계산을 어줍잖게 했다가는, 후회스러운 선택을 반복하기 마련이다. 명확한 득과 실 판단에 기반한 선택은 설령 그 선택이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졌다 할지라도 후회가 없고, 다음 번의 선택에 큰 경험 자산이 될 수 있다. 물론 그 득과 실 판단이 항상 쉬운 것만은 아니다. 계량이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이 첫 번째 어려움이고 이성보다 마음이 앞선다는 것이 두 번째 어려움이다. 지금의 나조차도 여러 선택들이 어려운데, 스물 여덟의 내가 늦지 않게 (약간의 지체가 있었지만) 큰 선택을 하였음이 내심 기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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