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어쩌다가 "또" 스타트업에..?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

by Stephan Seo

다들 비슷한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오지선다 문제를 풀 때, 처음 골랐던 답을 고심 끝에 다른 답으로 고치면 꼭 원래 처음 골랐던 게 정답이던 경험. 단순한 심리적 현상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난 항상 이것을 확률적 현상으로 생각해왔다. 분명 '처음 고른 선택지'는 처음 고른 이유가 있고, 그것이 타 선택지보다 정답일 가능성이 확률적으로 높다고. 물론 이는 문제를 푸는 사람에게, 문제를 풀 수 있는 역량이 있다는 전제가 필요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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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객이 전도된 삶 바로잡기


첫 스타트업을 퇴사한 당일이 떠오른다. 2018년 4월 16일 금요일, 여느 퇴사자들의 이른 퇴근과 달리 나는 full 로 회사 근무시간을 채우고 6시가 넘어 귀가길에 오른다.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에 별다른 저녁 약속도 잡아두지 않았고, 곧바로 집으로 향했다. 안양 집에 도착하니 7시 남짓이 되었는데, 당시 조금 놀랐던 기억으로, 막상 나에게 여가 시간이 주어지니 이를 어떻게 써야할지를 전혀 모르겠던 것이다. '아 보통 다른 사람들은 퇴근 후 여가시간에 무엇을 하고 사는 걸까?' 아니아니, '나는 이제 여가시간에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지?' 이 생각은 번지고 번져서 여가시간 없이 살았던 지난 날들의 반성으로까지 이어졌다. 퇴사 후 내가 했던 첫 생각은 '여가시간을 갖자'였던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다음 날부터, 나는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이 무엇인지 실감하게 된다. 생각보다 삶에 필수적인 것들을 그간 바쁘다는 핑계로 놓치고 살았는데, 여가시간을 갖는 것보다도 그러한 필수적인 요소들을 메우는 것이 선행되어야 했다. '주객이 전도된 삶을 바로 잡자'는 마음으로 동사무소를 방문하고, 병원을 방문했다. 엉망진창으로 진행되던 예금과 적금을 정돈하고 자동 이체 플랜도 조정했다. 쓰지 않던 신용카드들을 폐기하고, 각 통장별 보안카드도 새로 발급했다. 의미없이 지출되고 있던 모바일 소액 결제들도 정돈하면서 모바일 요금제도 변경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괴롭혔던 사랑니 발치를 감행한다. 그것도 무려 4개를 동시에... 하루하루 일정은 바빴지만, 모든 투두들은 나 자신을 위한 투두였다. '정신없는 삶'에서 '정신있는 삶'을 되찾은 느낌이랄까. #부지런한백수의일일 이라는 해시태그로 SNS에 하루하루 나 자신을 돌아보는 일기를 연재하기도 했다.


2.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스물 여덟이라는 나이를 스스로 많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만 3년의 애드테크 커리어를 아깝다고 여기지도 않았다. 새로운 출발을 해도 무방하다는 마음가짐으로 여러 길을 검토하려 했다. 하여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선배, 친구들을 만나며 그들의 직장에서의 삶에 대해 묻곤 했다. 이 때 나름의 판단 기준이 있었는데 당시 자료를 가져와보면 대략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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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Photo_2020-10-10-17-31-10.jpeg 후보로 놓여있던 5개 선택지에 대해 각 기준별 점수를 매기고, 기준별 가중치를 고려하여 합산해보았다. 배점표 내의 숫자는 어느 한 회사에게 매긴 점수

지금 보니 기준이 상당히.. 까다로웠던 것으로 보인다. 얼핏 보면 4가지 기준으로 단순화(?)시켜 놓은 것처럼 보이지만, 각 4가지 기준 아래에 break down된 세부 기준까지 살펴보면 어지간히 조건을 붙여 놓았다.


입사할 회사의 사업 모델이 무엇이냐 - 무엇으로 어떻게 돈을 벌고 있는가 를 따져보았고, 이때 안정적이면서 공격적인 것을 바랐던 것으로 보인다(?) 유토피아를 그리고 있었던 것인지.. 어느 정도 캐시카우를 갖고 있으면서 새로운 사업들을 공격적으로 하는 조직을 바랐던 것으로 해석된다. 또한 그것이 참신할수록 (당연히) 좋았겠지.. 본 기준으로 인해 사실 공기업은 배제가 되었다.


직무 (포지션)에 대한 조건들도 지금 보니 흥미롭다. 가장 먼저 적어둔 것이 '팀 체제'가 체계적인가 이다. 체계 및 분업이 없음에 대한 피로감이 잔뜩 묻어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도 업무 범위가 좁지 않고 넓기를 희망했고 특히 글로벌 관련된 포지션을 선호했다. 더불어 일 자체가 '재미' 있어야 하면서 너무 어렵지 않기를 바랐던.. 모양새이다.


'나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가'를 볼 때에, 색깔적(?) 성장과 가치적 성장을 나누었는데 각각의 의미가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색깔적 성장은, 일종의 "평판" 내지는 "브랜딩"을 의미했다. 커리어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 퇴보하지 않는가? 또는 기존 커리어와 무관하더라도 '일하는 회사원'으로서 성장을 할 수 있는, 레벨이 높은 조직인가 를 따지며 나 자신의 브랜딩에 '득'이 되는 선택지를 찾고자 했다. 가치적 성장은, 말그대로의 성장을 의미한다. 여러 의미로서 (실무적, 인사적, 문화적 등) 경험치를 많이 쌓을 수 있는 조직인가 -내적 가치와, 충분한 연봉을 제시할 수 있는 조직인가 - 외적 가치를 두루 살폈다.


끝으로 워라밸을 조건으로 걸어두었는데, 그것도 단기, 중기, 장기로 나누어 보았다. 첫 1년의 워라밸, 3-5년 즈음의 워라밸, 10년 후의 워라밸을 왜 굳이 구분하였는지... 기간에 따라 내가 부여하는 워라밸의 중요도가 달라질 것이고, 회사의 워라밸 또한 기간에 따라 달라질 것을 염두에 두었던 것으로, 그만큼 장기적인 관점에서 향후 커리어를 고민했던 것을 방증하는 대목이라 할 수 있겠다.


3. 이성과 감정의 다툼 - 직업 선택만큼은 이성에 충실하자


차분한 마음으로, 차가운 이성에 기반하여 작성한 위 채점표는 어느 한 회사 (B사)에 최고점을 주었다. 하지만 당시 심신이 상당히 지쳐있던 나는, 감정의 지배를 받아 해당 결과값을 부인하였다.


B사가 채점표 위에 놓이게 된 때는, 직업 탐색겸 친한 동료들 (학교 선후배, 업계 내 지인 등... 지금 세어보니 약 10명 이상의 지인이 종사하고 있었다.)이 다수 다니고 있는 B사에 놀러갔을 때였다. 가볍게 티타임을 하러 갔는데, 뜻밖에 어느 한 포지션에 대한 입사 제의를 받게 된다. 4일 말미의 고민 시간을 갖기로 하고 그간 다른 회사들 탐방을 병행한다. 그리고 맞이한 주말에 모든 선택지들에 점수를 매겨보니 B사가 최고점이었던 것이다.


제안을 주었던 선배의 집에서 매실차를 마시며 나는 답을 주었다. 나의 대답은, 해당 제의에 대한 거절이었다. "뭔가 매우 많이 다이나믹할 것 같은데, 나는 당분간은 조금 평온하게 지내고 싶다." 지금 봐도 상당히 위 채점표의 기준(공격성, 재미, 성장 등)과는 매칭되지 않는 해설이었다. 이에 선배의 대답이 의외였다. "너가 지금 심신이 지쳐서 올바른 판단을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몇일 더 시간을 줄테니 차분히 한번 더 생각해봐라."

나의 채점표를 몰래 보았던 것인가. 실제로 24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나는 선배에게 연락을 한다.


"저, 지원할게요."



그렇게 나의 6주간의 백수 생활이 청산된다.

지난 2016년 캐나다에서의 3개월 동안에는 "주체로서의 삶"을 찾았다면,
2018년 백수로서의 1개월 반 동안에는 "여유가 있는 주체로서의 삶"을 찾았다.

재밌게도 나는 처음 골랐던 선택지와 동일한 선택지, 스타트업을 택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2년 반이 더 지난 지금, 나는 스타트업이 내게 가장 잘 맞는 옷이라는 확신을 갖고 일을 하고 있다.


B사에 처음 발을 내딛고 맞닥뜨린 신선한 충격의 연속들 ..은 다음 편에 이어서 적어보자 -

잘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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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M사로 이끌어줬던 0.어쩌다가 스타트업에 왔어요? 의 후배는,

이번에도 나를 B사로 이끌어주었다.


그 후배도 여러 커리어 고민 끝에 B사에 종사하고 있었다.


선배와 매실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눈 그 다음 날,

한통의 메세지가 후배로부터 도착한다.


"우리 회사 하나도 안빡세^^"


그렇게 나는,

빡센 B사에서의 삶을 맞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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