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형용모순일지 모르는 이 표현에 대해 -
동일한 애드테크 업계에 속한 스타트업이지만, B사에서 첫 1주일을 보내면서 내가 느낀 이질감은 가히 놀라웠다. 내가 알고 있던 '스타트업', '애드테크' 에 대한 정의를 다시 한번 돌이켜보게 되면서, 가치관의 혼란으로 이어지기까지 했는데, B사에서의 2018년은 나로 하여금 '건강한 스타트업', '건강한 애드테크'에 대한 재정의를 건강하게 내릴 수 있게 해준 해였다.
'스타트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 하면, 왠지 모르게 공격적이고 진취적인 성향에, 능동적이고 자기 주장이 확실할 것만 같다. 하지만 꼭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회사의 메인 비즈니스 모델이 무엇이냐에 따라 주된 직무가 달라질 것이고, 직무에 따라 요구되는 자질과 성향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내가 처음 B사에 발을 들인 이후 가장 놀랐던 부분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그것을 밖으로 표출할 줄 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이 오프라인 회의 공간이든, 온라인 메일, 메신저든 - 적절한 매개체를 활용하여 각자의 의견을 개진했다. 업무적인 이야기일 때도 있고, 사내 생활과 관련된 이야기일 때도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토론' 내지는 '의견 교환'의 장이 빈번히 벌어졌고 이를 통해 문제 상황들을 능동적으로 해결해나가는 모습이 제법 멋지다고 생각하였다.
혹자는 이러한 것들을 '당연한 것'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과하게 신경쓰게 되는 한국의 교육과정 특성상, 본인의 주관을 뚜렷하게 표현하고, 토론할 줄 아는 사람들이 다수로 구성된 한국 조직이 존재하기란 생각보다 흔치 않다. 학창 시절만 돌이켜봐도, 손들고 발표하는 학생 수는 40명 중에 2-3명 뿐이지 아니었는가. 스타트업도 마찬가지다. 부득이하게 소수 리더들의 의사결정으로 진행되는 스타트업이 오히려 많다. (물론 경우에 따라, 독단적인 의사 결정을 위한 핑계일 수도 있지만..) 또 어느 혹자는 이러한 것들을 '불필요한 것' 내지는 '필요하긴 하되 과한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하나의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에 과한 커뮤니케이션 리소스가 쓰인다는 것이 이유이다. 허나 활발하고 건강한 토론 끝내 함께 빚어내는 프로덕트 (또는 프로젝트)야말로, 졸속으로 진행되는 것보다 훨 완성도가 높다는 것은 이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게다가 모두가 욕심을 갖고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니만큼, 프로젝트 진행 간에 구성원들의 동기부여 레벨도 훨 높다. 비단 업무 뿐 아니라 사내 생활과 관련된 수칙들도 자발적인 토론에 의해 수립되고 변화하니, 회사 생활 자체에 대한 동기부여 레벨도 상당히 높은 편이다.
B사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의견을 개진할 수 있게끔 여러 기제들을 마련해주었다. 격주로 진행되는 전체 회의에는 "B사 직원의 모든 질문에 답한다."라는 코너가 존재한다. 말그대로 모든 질문을 익명으로 받아 처리해준다. 단순하게는 '과자 종류를 늘려주세요' 부터, 무겁게는 '회사의 비전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주세요'까지 모든 주제에 대해 소통을 할 수 있는 장이다. 또한 CEO Talk 를 통해 대표가 직접 전사적인 사업 방향성과 굵직한 진행사항들을 직원들에게 상세히 공유를 해주고, 이에 대해 질문을 받기도 한다. 전사직원 모두가 참여하는 소통의 장이 격주로 진행되는 것 자체가 대단한 문화라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대표에 의한 중앙집권 구조, 절대왕권 구조라면, B사의 경우는, 2018년 당시 (그리고 지금까지) 매우 자치적인 민주주의 구조였다. 식상한 교과서적 표현을 빌리자면 '풀뿌리 민주주의'랄까. 대표와 각 리더들이 담당하고 있는 직무 범위는 제한적이었고, 권한도 함께 제한적이었다. 실무를 담당하는 직원 개개인들에게 각각 책임과 권한이 부여되는, 매우 자율적인 업무 구조였다. 심한 경우에는 팀간 싱크가 안맞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각 팀별 고유 영역을 서로 함부로 범하지 않았는데, 그러다보니 조직이 유기적으로 굴러가게끔 하기 위한 여러 Sync-up 미팅 기제들이 곳곳에 놓여있었다. 짧게는 30분, 길게는 60분 정도 소요되는 해당 미팅들이 발휘하는 힘이 매우 놀라웠다. 유관 부서 사이의 소통은 이러한 Sync-up 미팅을 통해 해소되며, 그 이상의 불필요한 커뮤니케이션 없이 자율적으로 업무를 하였다.
각 팀내에서는 모든 직원들이 직속 상사와 매주 일대일 (1:1) 미팅을 진행하며 한 주간의 업무 진행사항을 공유받고, 피드백을 주거나 우선 순위에 대한 재조정을 진행하였다. 얼핏 들으면 '오, 일대일 미팅이라니 신선하고 괜찮은데?' 또는 '일대일 미팅까지는 좀 과하지 않나' 싶을 수 있으나 일대일 미팅의 가치와, 이 가치를 위한 시간 투자는 생각보다 대단하다.
스타트업의 특성상 하루하루가 정신 없다. 일대일 미팅과 같은 기제가 없이는 직속상사와 진득하게 특정 아젠다에 대한 토론은 커녕 사소한 업무에 대한 공유도 쉽지 않다. 바쁜 와중에 딱 일주일에 한번 30~60 분 정도 컴팩트하게 진행 중인 실무 내용에 대해 공유를 하고, 또 반대로 매니저는 전사 방향성에 입각한 피드백과 우선 순위를 재조정 해주는 것만으로 매니저와 실무자 사이의 싱크가 해결될 뿐 아니라 업무의 진행 속도와 방향이 최적화된다. 이렇게 신선하고 괜찮은 것도 팀원이 5명이라면 해당 팀장은 주 마다 5회씩 진행을 해야 되기 때문에 제법 빡세다. 여기서 중요한 건 1주일만 하는게 아니라 1년 52주 내내 꾸준히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렇게 bottom 라인부터 탄탄하게 싱크를 맞춰가며 실무단의 의견들이 top 의 의견들과 조율되며 회사가 움직인다는 것이 놀라웠다.
스타트업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복지들이 많았다. 여느 대기업들을 다니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당연한 복지로 보일 수 있지만, 회사의 존망을 수시로 논하는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갖추기 어려운 복지들이다. 이는 그 복지 자체들에 대한 놀라움 보다는, 그러한 복지들을 운영하고 있는 B사의 인사 철학이 존경스러웠다. 비용을 아끼지 않는 대신에 그로 인한 동력 증대로 매출을 늘리겠다는 철학. 그것이 성공으로 이어질지 실패로 이어질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철학을 고수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 업계에서는 보기 드문 것이었다.
수많은 동아리와 스터디가 존재했고, 각각의 인원 수에 맞게 예산이 제공되었다. 특정 조건 (인원 수)만 충족하면 동아리와 스터디를 직접 만들고 예산을 지원 받을 수도 있다. 점심시간이면 여러 스터디들이 삼삼오오 모여 스터디를 진행했고, 저녁이면 또 삼삼오오 모여 동아리 활동을 하러들 움직이는 모습이 신기했다. 또 공식적으로 '리더 활동비'가 지급되어 리더들은 팀원들과 별도의 커피챗, 식사를 회사 돈으로 할 수 있었고, 각 팀별로 회식 예산이 다달이 지급되어 풍족한 식사를 팀과 함께 주기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직원들의 '자발성', '적극성'과 함께 어우러지니 각 복지제도들의 임팩트는 더욱 대단해 보였다. 또 매월 '자기 계발' 명목의 지원금이 10만원씩 제공되었는데, 직원이 100 명 가량 되는 것을 생각하면 회사 입장에서는 정말 큰 복지를 제공하는 셈이었다. 그것으로 많은 직원들이 꾸준히 운동(헬스, 테니스, 수영 등)을 하거나 강의 (개발, 언어, 마케팅 등)을 수강하거나 - 등 각종 자기 계발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도서 구매도 무제한 지원이다.
이러한 철학이 기반에 회사 인사 문화 바닥에 자리하고 있다보니, 입사한 지난 2년 반의 시간 동안 수많은 복지들이 추가적으로 만들어졌다. 근속에 따른 유급 휴가 부여, 개별 도전 과제 달성(ex. 다이어트, 독후감, 앱 개발하기 등) 에 대한 상금 지급 등 여전히 스타트업으로서 상상하기 어려운 복지들이 생겨나고 있다.
주관이 강하게 뚜렷한 직원들이, bottom-top 으로 소통하고 의사결정할 수 있는 조직 구조 하에서 각종 복지를 누리며 신나게 일하는 스타트업, 그것이 내가 느낀 B사의 첫 인상이었다. 과하게 눈이 높아졌을 수도 있으나 그것이 내가 정의하는 '건강한 스타트업'의 초석을 이루게 되었다. 이 외에도 탄탄한 개발 조직의 존재, OKR에 기반한 분기 목표 수립과 리뷰 프로세스, 애자일(Agile)한 개발 문화에 대한 지속적이고 실질적인 고민, 똑똑하고 일 잘하는 인재들.. 나의 눈을 멀게 만든 매력들이 셀 수 없다. 그래서 가장 impressive 했던 3 가지를 꼽는 것이 쉽지 않았다.
2018년 5월 입사 이래로 나는 그간 너무도 목말랐던 "실무"를 원없이 진행한다. '광고 수익화'를 배우고 익힘으로써, 비로소 UA 로 시작되고 수익화로 끝나는 앱 비즈니스의 AtoZ 를 갖추게 된다. 과정 상에서 나 자신의 실무적인 강점과 약점을 명확하게 인지하게 되고, 향후 커리어에 대한 몇 가지 소거가 진행된다. 그 중 가장 명확했던 것은 - 한국 대기업/공기업에는 절대 가지 않으리.
2018년 이라는 해는, 행복을 느끼며 고군부투하며 큰 성장을 경험한 해였다. B사 자체도 당시 만 6년의 스타트업이 갖는 고질적인 문제들이 발현되기 시작한다. 회사도 나도 함께 큰 성장통을 겪은 2018년을 돌아보니,
'개개인의 커뮤니케이션이 갖는 힘에 대한 깨달음, 그 힘이 충분히 발휘 될 수 있을 정도로 열려 있는 B사, 그 속에서 행복했던 나와 회사의 성장' 으로 기억된다.
2019년과 2020년이 제법 혼돈의 시간들이어서 그런지 2018년이 문득 그립고 소중하다.
물론 혼돈의 시간 속에서 얻은 성장의 크기가 더 컸던 것 같기도 하다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