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 미리 보기
마지막으로 글로 배움을 정리한 지 벌써 두 달이 지났다. 꼬박꼬박 한 달에 한 편 이상의 배움 글을 남기곤 했는데, 이번 분기는 그러하질 못했다. 배움이 전혀 없었다면 남길 글이 없었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분기의 배움은 그저 쉬이 정리하지 못하였을 뿐, 이전 분기를 훨씬 웃도는 양과 질의 배움들이었다.
팀에서 진행하는 제품 실험 및 개선 작업들의 규모가 조금씩 조금씩 커지더니, 이번 분기에는 예전이라면 엄두도 못 냈을 기획을 3개나 진행했다. 멤버들의 역량도 성장했지만, 함께 합을 맞추는 협업 시너지 계수도 커졌으며, 무엇보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커진 것을 가장 큰 변수로 꼽을 수 있겠다. 덕분에 20%, 30% 그로스를 위한 기획이 아닌, 100%, 200% 그로스를 노려볼 수 있는 큰 기획들을 여러 개 진행해 볼 수 있었던 것이다.
특정 조건을 충족하는 유저들에게, 구독을 하지 않아도 1회 맛보기로 특정 프리미엄 기능을 사용할 수 있는 쿠폰을 제공했다. 한 번도 시도해 본 적 없는 '쿠폰' 방식, 그리고 알람 에디터의 코드를 건드려야 한다는 점에도 난이도가 상당히 높았던 기획이었다. 배포 이후 실질적인 무료체험 전환율에 도움이 되진 못했지만, '어떻게 쿠폰을 활용하는 것이 최적일까'에 대한 답을 찾아갈 수 있는 양질의 데이터들을 얻을 수 있었다.
마치 게임 속 캐릭터가 강화되듯, 유저의 기존 알람을 더 강화시키는 방식의 플로우로 프리미엄 기능 온보딩을 제공했다. 다채로운 애니메이션, 화려한 시각적 효과들을 가감 없이 활용하여 프리미엄 유저로서 특별함을 느낄 수 있게끔 진행되었다. 무료체험 기간의 시작 시점에, 유저의 프리미엄 사용 동기부여를 최대한 끌어올려볼 수 있는 기획인 만큼 최대한 자극적이면서 직관적으로 플로우를 구성하였다. 덕분에 유저들이 무료체험 기간 동안 평균적으로 더 다양한 프리미엄 기능들을 사용해 볼 수 있게 되었다.
프리미엄 기능을 일종의 '리워드'로 제공함으로써, 그 대가로 유저를 알라미로 유입시키는 기획을 진행했다. 서버 API 설계, 특정 조건 충족 여부에 대한 validation, 어뷰징 방지를 위한 방어 로직 등 합당하면서도 매력적인 리워드 구조를 기획하였다. 대다수의 서비스들이 이미 제공하고 있는 프로모션이지만, 타 서비스에 비해 로그인 여부, 구독 여부 등 경우의 수가 더 복잡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방법론과 달리 가야 한다는 점이 난해했다. 하지만 난해했던 만큼 멤버들과 함께 풀어 나가는 과정이 유독 재밌고 즐거웠다. 아직 데이터는 쌓이지 않았지만 얼마나 많은 유저들이 참여하여 얼마나 많은 친구들을 데려올지, 또 그들의 LTV는 어찌 될지 너무너무 궁금하다.
큰 기획들과 함께, 작지만 임팩트가 큰 실험들을 차곡차곡 진행하였다. 제한적인 리소스를 고려하여 개발 시간 1시간 내외의 가장 임팩트가 큰 요소들 위주의 실험들을 선별하여 진행했고, 그로스가 유실되지 않게끔 레슨을 누적해 나가며 후속 실험들을 이어갔다. 결과적으로 일련의 그로스 시리즈 두어 개를 줄기차게 이어간 것으로, 모아놓고 보면 작은 에피소드들을 엮은 하나의 큰 드라마일 수 있겠다.
구독 그로스에서 필수로 손꼽히는 인트로 구매화면에 대한 대대적인 개선들이 이어졌다. 신규 유저를 위한 앱 온보딩이 종료되는 시점에 뜨는 인트로 구매화면은 신규 유저 D1 리텐션에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리텐션을 함께 살피면서 목표 지표를 높여야만 했다. '어떤 메시지'가 유저에게 영향을 끼치는지, 또한 구매화면의 구성 요소들은 '어떻게 조합이 되어야' 가장 매력적인지 실험들을 여러 개 연달아 진행해 가며 최적의 조합을 찾아냈다.
지난 분기 가격테스트 위너를 적용하고, 이어서 연구독과 월구독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에 대한 실험이 이어졌다. 인트로 구매화면 못지않게, 구독 상품 구성은 매출에 직결되는 변수인 만큼 매출 증분에 끼치는 영향이 크다. 이번 분기에는 먼저 연구독, 월구독 2개의 선택지를 한 번에 제공하는 것이 최적인지 실험을 진행해 보았고 결과는 상당히 흥미로웠다. 오랜만에 각 구독 상품(SKU) 별 LTV를 재측정했고, 주어지는 상품 선택지 구성에 따라 결제 전환율 및 구독 유지율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확인했다. 현재 위너는 정해졌고, 해당 위너와 함께 시너지를 더 낼 수 있는 후속 가설들이 더 있어 조금 더 흐트러짐 없이 실험을 이어가야 하는 상황이다.
그로스 레슨이란 마치 은행 금리의 복리처럼 누적되어 가며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자잘한 분석 미스조차 없게끔 신중해야 하고, 뽑아낼 수 있는 인사이트를 최대한 뽑아내야 한다. 이는 상당히 논리적이면서도 직관적인 두뇌활동을 요구하기에, 여러 스레드를 동시에 운영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적당한 맺음선에서 진행 중인 스레드들을 마무리 짓고 대기 중인 다른 스레드들을 이어갈 예정인데, 그 맺음선이 도래해야 비로소 배움을 정리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인트로 구매화면과 구독 상품 구성 스레드는 아마도 다음 분기 초쯤 마무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디자인 리소스와 iOS 개발 리소스가 빠듯한 현시점을 감안하여 구독 스쿼드와 슬립 스쿼드는 스프린트 단위로 멤버별 리소스를 공유하여 유연하게 운영하기로 했다. 이는 다른 분기에 비해 명확하게 물리적인 리소스가 부족했던 것을 의미하며, 더불어 두 팀의 톱니바퀴의 아귀가 잘 맞아떨어지게끔 중간중간 PO 끼리 각 팀 상황을 싱크하며 유연하게 팀을 이끌어야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획의 우선순위 및 예상 스토리포인트까지 고려하여 미리미리 앞뒤 스프린트 플래닝을 조율해뒀어야 했다.
이번 분기부터, 제품 내에 연동되어 있던 CRM 솔루션인 브레이즈를 더 체계적이고 임팩트 있는 방향으로 활용하기 위해 전문 파트너사(마티니)와의 협업을 구축하여 10여 개의 캠페인을 기획 및 운영하게 되었다. 개발 디펜던시가 없는 만큼, 제품 자체 그로스 실험 보다도 훨씬 더 빈번하게 이터레이션을 돌 수 있었는데, 구독과는 상관없는 지표 (앱 리텐션)를 메인으로 다루다 보니 놓여 있는 컨텍스트가 크게 달라 seamless 하게 가설 검증을 팔로업하기가 쉽지 않았다.
파트너사와의 협업 프로세스는 다행히 생각보다 빠르게 안착했고, 덕분에 슬립과의 협업 기간으로 비는 공백 기간을 브레이즈 캠페인으로 메워볼 수 있었다. 지난 신규 유저 온보딩 변화로 인해 낮아졌던 특정 프리미엄 기능 방문 비율을 높이기 위해 인앱메세지 캠페인들을 여럿 진행하기도 했고, 무료체험 기간 동안 프리미엄 기능을 지나치게 적게 사용하는 유저들에게 다른 유저들의 평균 사용 횟수를 알려주는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했다. 물론 내부 제품 가설만큼 꼼꼼히 챙기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검증해보고 싶었던 가설들을 최소한으로나마 살필 수 있어서 좋았다.
#1. 규모가 커진 기획들 - 기획의 질적 성장
#2. 작은 실험들 - 끊김 없는 이터레이션
#3. 빠듯한 리소스 - 티키타카 운영의 묘
요컨대 이번 분기의 특징을 정리하면,
6개 스프린트가 아닌 4개 스프린트 동안, 난이도 높은 3개의 기획을 포함한 12개의 기획들을 줄기차게 끊김 없이 이어갔던 분기였다. 또한 나머지 2개 스프린트에는 다음 스프린트에 대한 채비와 함께 브레이즈 캠페인을 레버리지 하는 데에 힘쓰기도 했다.
그렇다 보니 확실히 여느 분기보다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배움이 클 수밖에 없는 분기였다.
달리는 내내 성장의 기쁨과 재미가 가득했지만, 혹여나 핸들이 고장난 트럭이 되어버리는 건 아닌지 염려가 되기도 했다. 리소스 협업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 중인 여러 기획들을 챙기기도 바빴고, 소중한 기획들이니만큼 분석까지 마친 이후에도 다시 한번 다른 각도로 살펴볼 구석들이 없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시간도 필요했다. 또한 중장기적으로 올바른 길을 달리고 있는지, 단기적으로 더 효율적인 가설들은 없는지 돌아볼 시간도 필요했다. 그러면서도 아무 생각 없이 쉬는 시간도 필요했다.
그렇다 보니 확실히 여느 분기보다도 배움을 정리할 시간이 없는 분기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나도 팀도 제품도 분명 성장한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다음 분기에는 이번 분기를 포함한 그간의 배움들을 차근차근 곱씹으며 글로 남겨보려 한다.
전후로 쌓일 데이터가 더 풍부해질 즈음일 테니, 오히려 더 심도 있는 배움들을 담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구독 스쿼드의 짜릿했던 23년도 2분기를 앞으로 나는 잊지 못할 것 같다.
배움과 별개로 그 짜릿함을 글로 담아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