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 모드 - 언뜻 불편해 보이지만 사실은 불편한게 아닌, 역설적인 UX
UI/UX 라는 단어 앞에 흔히 놓이는 수식어들은 '사용하기 편한', '매끄러운' 등, 굳이 나누자면 부정보다는 긍정에 가까운 형용사들이 붙곤 한다. 반대로 '사용하기 불편한', '뚝뚝 끊기는' 이 붙는 경우 좋지 않은 UI/UX라 생각되기 쉽다. 하지만 유저가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특정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고안된 '불편함', '끊김'은 역설적이게도 좋은 UI/UX 일 수 있다. 좋은 UI/UX 란 결국 사용하기 편하고 매끄럽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사용자의 문제를 해결주느냐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언뜻 불편해 보여도, 사실 불편한게 아닌 것이다.
러닝(running) 앱 서비스들은 달리기 도중에 달리기를 멈추고자 '중단' 버튼을 누르면 바로 중단되지 않고 "조금만 더 달려보면 어떻겠냐"는 다이얼로그를 띄우고, 한번 더 '중단'을 눌러야 그제서야 중단된다. 그 순간 숨이 가쁜 유저 입장에서는 언뜻 불편한 UX 지만, 멀리 봤을 때는 조금씩 더 달리며 기록 달성을 점차 높이게끔 도와주는 고마운 UX 이다.
우리 알라미도 마찬가지이다. 아침에 못 일어나는 유저들은 어떻게든 잘 일어나게 해주길 기대한다. 그래서 알라미의 알람은 쉬이 꺼지지 않는다. 침대 밖으로 나와 걷거나 스쿼트를 해야 하고, 화장실에 가서 세면대 사진을 찍어야 한다. 실제로 가장 많이 인입되는 유저 요청 사항 중 하나는 '알람이 울리는 도중에 전원을 끄지 못하게 해달라', '알람이 울리는 도중에 앱을 삭제하지 못하게 해달라'는 요청이다. 이 또한 언뜻 굉장히 이상해 보이는 UX 지만 (엥, 전원이 안꺼진다고?) 유저들의 기상 문제를 해결해주는 고마운 UX 인 것이다.
알라미 내 슬립(Sleep) 기능의 목적은 유저의 입면 문제를 해결하여 결과적으로 '잘 자고, 개운하게 일어나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유저 인터뷰와 서베이를 통해 일차적으로 '불안과 걱정'으로 인한 불면'과, '좋지 않은 입면 습관으로 인한 불면'으로 해결할 문제를 좁혀보았다. 그리고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불안과 걱정으로 인한 불면'을 해결하기 위해 수면 유도 음악(이하 슬립 사운드)을 출시했다. 솔루션 방향은 '불안과 걱정을 해결해주어 잠이 잘 오게 하자'가 아니라, '잠시라도 불안과 걱정으로부터 생각을 돌려, 잠이 잘오게 하자' 였다.
이 때 슬립 사운드 재생에 이어 '수면 모드'라는 기능을 더하였는데, 일반적인 음악 재생과 달리 슬립 사운드의 경우 목적이 '입면'이기 때문에 재생 이후 바로 잠들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주기 위함이었다. 수면 모드를 켜면, 잔잔하게 사운드가 재생되며 화면 밝기가 어두워지고 현재 시각이 표시된다. 더 이상 딴짓을 하지 말고 조용히 수면 자체에만 집중하자는 맥락을 조성하는 것이다. 수면모드는 유저 입장에서 필수는 아니었고, 본인 니즈에 따라 선택적으로 취할 수 있게끔 구현되었다.
좋은 취지를 갖고 출시한 기능이지만, 슬립 사운드를 재생하는 유저 대비 수면 모드 기능을 사용하는 유저 수는 미미했다. 입면 문제를 겪고 있는 유저들은 수면 모드 기능 없이도 잠을 잘 자고 있는 것일까? 실제 입면과 관련해서 트래킹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보니 판단이 어려웠다. 하여 일단 보수적으로 여전히 그들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고 가정하고, 그들의 문제 해결을 위해 어느 정도 솔루션을 강제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도해보고 혹시나 불편함으로 인한 유저 반발이 심하다면 다시 예전 버전으로 돌리면 되니 좀더 유연하게 생각해보기로 했다. 하여 기존의 재생 플로우는 60초 미리 듣기만 가능하게끔 변경되었고, 60초 이상 끝까지 듣기 위해서는 수면 모드를 무조건 켜야만 하게끔 플로우를 변경해보았다.
결과는 다행히 괜찮았다.
아니, 이제서야 비로소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주고 있다는 느낌이 나기 시작했다.
1) DAU 약 7~8배 증대 (900명 -> 7,000 명) !!
- Daily 수면모드 사용자 수가 크게 늘었다. 강제했으니 당연한 것 아닌가 싶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7~8배 증대폭은 상당한 폭이고 또 그것이 반짝 증대가 아니라 한달 동안 유지되며 천천히 우상향한다는 것은 기능의 재사용률이 유의미하게 높다는 의미이다.
2) 기능 리텐션(재사용률)도 증대..!
- 기능 리텐션의 경우 기존에도 33% 수준으로 나쁘지 않은 수준이었으나, 당시에는 정말 쓰고자 하는 유저들이 썼기 때문이었을 수 있다. 플로우가 변경된 이후에는 심지어 50%까지 기능 리텐션이 올랐다.(1.5배) 강제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써보고 내일도 써보고 싶어진 유저가 1.5배 늘었다는 의미니, 전반적인 유저들의 만족도가 높아졌다는 의미다.
3) VoC 는 튀지 않았다..
- 일반적으로 특정 기능에 변화가 생기면 관련 유저 티켓이 한동안 크게 증대한다. 특히나 그것이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 변화라면 더더욱 크게 튄다. 반면 문제를 해결해주는 변화에는 초기에 티겟이 유입되다가 급격히 사라지는 경향을 보이곤 한다.
- 이번 변화에 대해서도 티켓이 인입되긴 했으나 그리 많은 티켓이 인입되지 않았다. (불만 6개)
요컨대 알라미의 '수면 모드'는 어느 정도 선택적으로 수면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으로 출발했으나 사용률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주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하였고, 유저가 슬립 사운드를 들으려면 필수적으로 사용하게끔 불편함을 주었더니 사용률도 증대하였고, 사용 리텐션도 함께 증대하였다. 결과적으로 이전보다 유저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보다 가까워진 셈이다.
향후 더 확실한 수면 환경 조성을 위해, 수면 모드를 이탈했을 때에 주기적으로 푸쉬 메세지를 보내준다든지 (일명 ‘딴짓 방지’) 수면 모드 이탈 자체를 어렵게 만드는 플로우들이 현재 기획 중에 있다. 지난 기획들과 비슷하게 유저 입장에선 당장에 조금 짜증날 수 있어도, 입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어 사용률과 기능 리텐션이 좋게 나타날 것을 기대해본다.
간혹 기획을 함에 있어, 기존 유저들의 목소리가 무척 두려워 기획 자체를 망설일 때가 있다. 특히 그것이 특정 불편함을 야기하는 기획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그럴 때는 궁극적으로 해당 기획이 유저에게 도움이 되는 기획인지 되짚어보면 좋겠다. 물론 되짚어본다 해서 해당 기획에 대해 또렷하게 확신을 얻을 수 있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불필요한 수준의 망설임은 걷어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