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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채 Sep 26. 2021

내 집처럼 드나들던 '남의집'을 떠나

2년 간의 스타트업 경험 이야기


그래 이런 느낌이었지.


텅 빈 백지에 글을 시작하려고 할 때 드는 숨이 턱 막히는 느낌. 굉장히 오랜만이다.

이 핑계로 2년 동안 브런치에서 글 쓸 생각을 안 했더랬다. 게다가 2년 전에 썼던 감성 충만한 글들을 보니 손발이 간질거려 잠시 서랍에 넣어두었다.



스타트업에서 2년간 몸 담고 퇴사했다.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남의집' 이라는 모임 커뮤니티 서비스에 2년간 사업운영 리드로 몸 담았다. 내 인생에서 굉장한 경험이었고 또 다이내믹했기에 뭔가 퇴사 기념 회고록 같은 것을 쓰고 싶었다. 혹시 몰라 대표님 (a.k.a 문지기) 에게 남의집 회사명 거론하면서 브런치에 회고 같은 거 써도 되냐고 퇴사일에 참치에 술 한 잔 하면서 허락도 받았다. 아, 참고로 좋은 말만 최대한 써달라는 말은 흘려 들었다.



얼마 전에 기사가 나갔지만 남의집은 최근에 투자 유치를 하였다. 투자한 곳은 당근마켓.

기사에 하이퍼로컬 생태계를 함께 조성해 나간다는 말이 멋있다. 올해 상반기부터 꾸려진 투자 TF 가 이번 투자 유치로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고, 나는 투자 확정 순간까지 함께 경험하며 나름의 유종의미를 거두고 이곳을 떠나게 되었다. IR 덱에 필요한 시장조사와 사업 지표 분석을 통한 의미 있는 성과를 정리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더군다나 피칭 자리에는 대표님과 거의 함께 동행했다. 대표님의 피칭이 끝나면 분위기를 종잡을 수 없는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지는데 이때 사업 운영과 관련된 질문에는 내가 답하면서 현장을 서포트했다.



이 기간 동안 꽤 많은 심사역 분들을 만나 뵈었다. 이 분들이 바라보는 시장의 견해와 안목, 그리고 투자를 위해 기업이 해야 하는 것들을 옆에 앉아 듣는 것만으로도 무엇보다 값진 시간이었다. 나 또한 이번 IR 업무에 정말 최선을 다했다. 앞으로 이렇게 집중하면서 일할 수 있을 순간이 얼마나 있을까 싶었다. 대표님에게 이번 IR 종합적으로 내가 몇 퍼센트를 기여했냐고 물었었다. 나름 공식적인 기여도 수치가 필요했달까. 대표님이 퇴사하는 날 나에게 슬쩍 말해준 기여도는 꽤나 흡족스러웠다.


이곳에 처음 발들이는 계기도 평범하지는 않았다. 2019년 8월. 대학 졸업 후 취직 안 하고 호기롭게 다른 길을 걷겠다고 선언했었다. 그 후로 개인사업자 내서 사업 놀이 2년 간 했을 때였는데, 성과나 벌이를 떠나서 제대로 된 팀이 없다는 것에 심히 지쳐있을 때였다. 팀빌딩을 꾸린다고 해도 기초공사 없는 모래성 같았다. 사소한 것들로 금방 무너지는 관계들이었다. 나에게는 모두가 계약으로 묶여 있는 팀이 필요했다. 그것도 빠르게 성장하는 팀. 그래서 스타트업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럴 때쯤 다시 기억은 2017년으로 돌아갔다. 브런치를 처음 알게 되어 이렇게 낭만적인 서비스가 있구나 하면서 두리번거릴 때 누군가의 사이드 프로젝트 연재 글이 눈에 들어왔다. 주변의 가정집들을 한 곳 한 곳 섭외하면서 집주인이 호스트가 되어서 모임을 열게끔 기획하고 운영했었는데, 이게 남의집 프로젝트의 시초였다. 지금 대표님이 한창 신나게 브런치에 연재를 하고 있었다. 나는 연신 재밌다. 재밌다. 하면서 읽어 내려가는데 '왠지 이 분 나중에 이걸로 제대로 사업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었다. 그리고 내 일이 바빠 까맣게 잊어버렸었다.



그리고 다시 2년 뒤, 2019년. 왜 도대체 불현듯 2년 전의 남의집 프로젝트가 떠올랐는지 모른다. 그래서 요즘은 어떤가 검색을 빠르게 해 보았다. 근데 타이밍도 참 기가 막혔다. 카카오벤쳐스로부터 시드 투자를 받아 이제 본격적으로 사업을 한다는 기사가 보였다. 뭔가 난 이거다 싶었다. 당시 나는 열정이 넘치다 못해 과할 때라 이제 막 시작하는 팀에게 최적화된 팀원이었다. 그래서 대표님에게 무작정 남의집과 함께하고 싶다고, 나 좀 데려가라고 메일을 보냈었다. 그것도 꽤나 장문으로.



정식 채용과정도 아니었고, 아무리 정중하게 글을 쓴다 해도 메일로 쓴 구애가 기분이 나쁠 법도 한데, 대표님은 메일 보낸 지 채 2시간도 안되어 한 번 보자는 답변을 보내왔다. 그렇게 당시 판교에 있던 남의집에 찾아가게 되었다. 첫 만남은 당연히 나를 보는 의심의 눈초리가 가득한 자리였다. 그래도 어찌어찌 내 진심(?)이 통했는지 다음에 또 보자는데, 이번엔 현 운영 프로세스를 개선하는 과제까지 주어졌다. 그런데 나는 내심 좋았다. 아무리 말로 내 장점을 늘어놓아도, 일당백이 필요한 스타트업에서 실무로 본인 인증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잘 되었고 나는 남의집 멤버로 합류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팀원으로 사업 운영 담당자 한 분, 그리고 콘텐츠 마케터 한 분 이렇게 두 분 계셨다. 내 기억으론 나는 당시 사업 운영 담당자의 운영 업무를 서포트하는 역할이었다. 당분간은 스타트업의 생태계를 배우면서 내 능력도 뽐내 봐야지 했었다. 근데 상황이 요상하게 돌아갔다. 개인 사정으로 인해 사업 운영을 담당하던 분이 내가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어 퇴사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때 마침 예약 툴로 활용하던 '네이버 예약' 서비스를 저 멀리 보내고 자체 예약이 가능한 1차 프로덕트가 론칭을 앞두고 있었다. 운영 담당자는 나 하나.. 결론적으로 다시 새롭게 판을 짜야했다. 호스트를 전환시키는 운영 프로세스, 그리고 정책 등 내가 새로 고민하고, 고민한 결과를 반영하기 위해 대표님에게 컨펌을 요청하는 과정이 이어졌다. 당시에 CS 도 홀로 담당했던 터라 그때 매일 출근할 때 심정은 '에라 모르겠다. 내 방식대로 옳다고 생각하면 걍 밀어붙이자! 바빠 죽겠는데 무슨!!'이었는데, 이런 마인드가 굉장히 주도적인 업무 스타일을 가진 팀원으로 대표님한테 둔갑되어 신뢰를 얻었던 모양이다.



아무튼 그렇게 차츰차츰 안정화가 되면서 사업의 규모도 성장하고 있었고 추가 채용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한 분, 한 분 직군별로 입사하게 되었다. 사업운영 쪽은 나 혼자에서 점진적으로 3명이 더 들어와 총 4명으로 꾸려졌다. 난 이 팀의 리드를 맡았다. 운영팀으로 추가 채용이 한창 진행될 즈음에 대표님이 슬쩍 나에게 팀 매니징하고 그런 건 관심 있는지 잘하는지 물었다. 나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이고 잘하고 싶은 일이라 답했던 것 같다. 실제로 팔로우형보단 리더형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런데 난 그게 앞으로 사업운영팀 리드 맡으라는 얘기인 줄은 몰랐지.)



그렇게 별의 별일을 다 겪으며 사업운영팀과 정말 재밌게 일했다. 서로 너무 친해진 게 문제라면 문제긴 했다. 일할 때 빼곤 나 갈구는데 진심인 자들이었다. 그래도 일할 땐 한 없이 나를 신뢰해주고 따라주는 팀원들이었다. 경직되지 않게 항상 농담이 가득한 대화를 지향했고 일에 대한 부정적인 피드백도 최대한 간결하게 끝냈다. 요런 분위기 조성이 나 편하자고 한 건 아니었다. 작은 스타트업이니 사업운영팀 내에서 모든 CS를 처리하고 있었는데 O2O 서비스가 으레 그렇듯이 감정적으로 버거운 CS들도 많았다. 그런 감정 소모가 지속되는데 팀 내 분위기마저 경직되거나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일이 힘들어도 팀원들에게 기대게 하고 싶었지, 팀 때문에 힘들어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운영팀이 아닌 다른 팀과도 재밌게 보냈다. 특히 퍼포먼스 마케터는 나랑 죽이 잘 맞았다. 가끔 어쭙잖은 사자성어로 촌철살인인 척하는 재밌는 친구였다. 이를테면 '근묵자흑'을 들먹이며 나에게 선을 긋거나, 내가 필요할 때 바쁘다고 저리 가라 하면 '토사구팽'을 중얼거리면서 사라지던 친구였다. 일적으로는 문제 정의하고 원인이 뭔지 근본적으로 찾아내려는 습성? 그런 것들이 좀 맞았다고 할까. 더군다나 문과 중의 문과인 나에게 이과적인 마인드와 접근법을 몸소 체득하게 해 준 슨생님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업무 요청할 때 서로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특히 SQL에 무지했던 내가 필요성을 절실히 느껴 혼자 배우고 적용해보려고 아등바등할 때 옆에서 큰 힘이 되어줬다. 사업을 데이터 기반으로 보고 결정하는 능력과 그 데이터를 쉽게 뽑아내고 분석할 줄 아는 능력은 스타트업에서 가히 필수인 것 같다. 특히 몸소 분석했던 데이터가 사업적으로 의미가 있냐 없냐를 판단하여 향후 액션 논리에 담을지 말지를 결정하는 순간은 꽤나 큰 쾌감을 가져온다.



남의집에선 여러 새로운 시도들도 경험했었다. 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가 활성화되었을 때 야심 차게 진행해봤던 남의집 '홈오피스', 그리고 내 집 못지않게 하나하나 소중하게 꾸민 공간을 가진 가게 사장님들의 이야기를 듣는 남의집 '동네가게' 등 기존의 가정집에서 모임을 하는 서비스와 성격이 조금 다른 이런저런 실험을 해보았었다. 새로운 시도는 결과를 떠나서 의미가 큰 경험이다. 스타트업을 꿈꾸는 분들이 있다면 스타트업의 장점으로는 확실히 빠르게 가설 세우고, 액션 하고, 시장 반응 보는 것이 좋다. 아마 기업 규모가 클수록 의사결정권자들이 많아지면서 굵직한 일들은 속도있게 실험은 못할 거다. 단점으로는.. 실패하더라도 본인이 잘 극복하고 알아서 인사이트 잘 챙겨갈 수 있냐는 것? 나는 뭔가 새로운 시도의 결과가 안 좋았을 때 훌훌 털고 일어내는 것을 잘 못했다. 그간의 노력이 보상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아깝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런데 스타트업에서는 빠르게 털고 일어나 다음을 기약하는 자세가 필요해 보인다. 그래야 변동성이 심한 환경에서 이겨낼 수 있다.



퇴사 이유는 두루뭉술하게 말하자면 나에게 전환기 혹은 휴식기 같은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강해서였다. 퇴사한다니까 주변에서는 생각보다 캐묻진 않았다. 이제 막 투자받아서 제대로 사업해보는 것 같은데 왜 나가냐고 미쳤냐고 소리는 들을 줄 알았는데 그냥 다음 스텝을 응원한다 정도? 아마 날 오래 봐오던 사람들은 내가 허구한 날 뭔가를 선택하고 길을 틀고 하는 것들이 익숙해서 그런가 보다. 퇴사한 지 2주도 채 안되었지만, 이번엔 진짜 한 두 달은 푹 쉬어봐야지 했지만 벌써부터 몸이 근질근질하는 건 뭔가 싶다.



내가 2년 전 처음 팀에 합류했을 때와 지금의 나를 비교하면 능력치나 경험면에서 말도 안 되게 성장했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극 초기 스타트업에 합류했을 때의 최고의 장점인 것 같다. 다만, 이러한 능력치와 경험치는 내가 앞으로 어떻게 어디서 누구와 뭘 하는가에 따라 탄력받을 수도 있고 그냥 거품처럼 사라질 수도 있는 것 같다. 결국 내가 하기 나름이랄까. 31살의 나이가 누군가에겐 한없이 젊어보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이미 어느 분야에 프로가 되야하는 나이일 수 도 있다. 여태 그래왔듯이 다음 길도 생각보다 괜찮을 거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글을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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