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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채 Apr 19. 2023

사업 전략 직무에 대한 작은 고찰

현재 스타트업 씬에서 4년 차의 경력을 보내고 있다. 

스타트업에 조인하기 전 개인 사업했던 경험까지 경력이라 본다면 여기서 2년이 더 추가된다. 



콘텐츠 기획자, 제작자, 오퍼레이터, CS 담당자, 사업운영팀장 등 적지 않은 직무가 나를 거쳐갔다. 문과가 누릴 수 있는 알짜배기 경험들을 제법 내재화시켰다. 지금은 '사업 전략'이라는 포지션을 달고 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항상 고민이 따라왔다. 사업 전략이라는 직무는 도대체 뭘까. 주변을 둘러보면 개발자, 디자이너, PM, 오퍼레이터 등 구태여 자신의 직무를 설명하지 않아도 포지션만 듣고도 무슨 일을 하는지 명확히 떠오른 사람들이 즐비하다.



사업 전략이라는 거, 결국 내가 몸담고 있는 이 회사의 사업이 잘 되게끔 전략을 짜고 팀원들에게 고취시켜 나아가게 만드는 거 아닌가. 근데.. 이거 대표가 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계속 맴돌았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더라. 사업 전략이라는 포지션은 내가 업을 정의하기 나름이라는 생각. 그 어떤 포지션보다 주도적이고 일을 만들어내지 않는다면 애매모호함만이 가득 차 항상 의문이 가득한 직장 생활을 보낼 것 같았다.



스타트업의 사업은 투자 단계와 팀 규모를 막론하고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게는 되어있다. 특히 혼자 하는 사업이 아닌 팀원에게 인건비를 착실히 지급하는 회사라면 더욱 그렇다. 왜냐하면 돈을 받고 사람들은 어쨌든 일을 하고 있으니까. 문제는 그 방향이 옳은가, 그렇지 않은가 일 것이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사업전략가는 뚜렷한 개성을 나타낼 수 있다. 지금 나아가는 배가 방향이 옳은지, 혹은 더 빠른 지름길이 있는지 팀원 누구보다 차분하게 생각하고 정리한다.



가상의 예시를 들어보자. 초기 단계인 한 스타트업은 어떤 회사던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데이터 시각화툴을 개발했다. 이들의 목적은 저렴한 비용으로 그간 데이터 분석과 시각화에 애를 먹었던 여럿 스타트업들이 부담 없이 이용하고 큰 효과를 누리게 하는 것이다. 기능도 고도화되기보다는 사업에 필수적인 데이터를 보기 좋게, 이해하기 좋게 표현해 준다. 말 그대로 ROI가 제법 괜찮은 사업을 하고자 했다. 프로덕트를 런칭하고 많은 기업들의 관심을 받았다. 



그런데 일부 규모 있는 기업들이 찾아와 제안을 한다. '지금 가격정책은 너무 값이 싸다. 우리는 데이터를 분석할 때 좀 더 복잡한 로직이 필요한데 너희 프로덕트에 기능화해 줄 수 없냐. 그에 맞춰 훨씬 큰 금액을 월마다 지급하겠다.'라고 말이다. 대표는 재정건전성을 위해 이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고, 그때부터 팀 내 프로덕트팀은 개별 기업들의 커스터마이징에 초점을 맞춰 일이 포커싱 되었다. 그런데 고객의 디테일한 요구는 늘어만 가고, 그에 따라 개발된 기능은 범용적으로 다른 스타트업들에게 필요하지도 않았다. 모두가 바쁘게 일을 했고 사업은 나아가고는 있었지만 위태로운 방향으로 흘러갔다.



사업전략가는 이러한 상황이 우리가 사업을 시작한 이유와 본질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제일 먼저 깨달아야 한다. 물론 먼저 예측을 하여 전략을 세우고 가설을 검증하는 일도 사업전략가가 해야 할 일이지만 나아가고 있는 사업을 항상 경계하고 지켜보는 일 또한 무척이나 중요하다. 위와 같은 예시에서 해당 스타트업은 합리적인 가격으로 다수가 만족하는 프로덕트를 만드는 것이 본질이었으며 고도화된 기능은 다수의 VOC 수집을 통해 점진적으로 업데이트를 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맞는 방향이었다. 생각을 가다듬어 팀원 및 대표에게 방식이 틀렸음을 논리적으로 접근한다. 이후에 답은 정해져 있진 않지만 사업전략가로서 제 할 일을 한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대표와 일의 영역을 명확하게 구분해 놓아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사업 전략가와 대표는 일이 쉽게 겹친다. 사업을 다방면으로 살펴보고, 전사적으로 팀의 방향을 잡아주며, 가설 검증을 위해 스프린트나 AB 테스트의 목적을 설계한다. 이 일들은 대표가 한다고 해도 전혀 이질감 없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그래서 더더욱 일을 명확히 나누어야 한다. 대표가 팀에 사업전략가라는 별도의 포지션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채용을 했다면 사업전략가는 그에 맞게 대표에게 확실하게 구분 있는 R&R 를 제시할 권한이 있다.



대표는 관계에 집중하는 포지션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B2B 일수록 말이다. 사람 관계를 통해서 실 고객전환까지는 가지 못하더라고 그들의 정성적인 VOC를 시간 들여 듣고 체득해야 한다. 그리고 팀의 유기성을 항시 확인해야 한다. 서비스 병목현상만큼, 아니 어쩌면 그 보다 더 중요할 수 있는 팀원들 간의 병목현상을 캐치해야 한다. 



그리고 런웨이에 보다 집중해야 한다. 우리 팀이 생존할 수 있는 기간을 명확하게 회계적으로 정의하고, 그에 맞게 런웨이 중간마다 성취해야 할 것들을 정리해야 한다. 이를테면 투자 유치가 목적이라면 런웨이 몇 달을 남기고 어느 시점에 분명한 지표를 쌓는 결과물을 가져와야 한다. 그래야 IR에 녹일 수 있다.



이때 대표는 어떤 분명한 지표가 투자 유치에 도움이 될 수 있는지 명확히 모를 수 있다. 사업의 본질이나 미션은 그 누구보다 고민헀을 사람이지만 이 사업이 남에게 빛나보이게 하려면 어떤 구체적인 지표를 달성해야 하는 것은 또 다른 얘기니까. 이때 사업전략가와 구체적인 얘기를 나눌 수 있다. 런웨이에 맞춰 어떤 기간에 지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오더를 듣고 사업전략가는 나름의 데이터를 가지고 구체적인 북극성 지표 2~3개를 발라낸다. 그것은 체류시간이 될 수도 있고, LTV 가 될 수도 있다.



이렇게 명확히 대표와 사업전략가가 일감이 나눠지고 각자의 역할을 해낸 후에 전사적으로 팀원들에게 그동안 사업 전략적으로 고민헀던 어젠다를 꺼내고 방안을 가져가 팀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수정한다. 그리고 전사적인 합의가 이뤄졌을 때 사업전략가는 액션플랜을 기간별로 빠르게 짜서 다시금 전사적으로 공유한다. 비로소 사업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한다.



스타트업의 사업 전략 포지션은 어떤 직무인지 요즘 핫한 챗GPT 에게 물어보았다. '스타트업에서 사업전략 포지션은 보통 '전략 기획자'나 '비즈니스 개발자'라는 직무명으로 사용됩니다. 이 직무에서는 기업이 경쟁력을 유지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전략적으로 사업을 기획하고, 신규 비즈니스 아이디어를 발굴하며, 기존 비즈니스 모델을 최적화하고 성장을 이끌어내는 일을 담당합니다.... 이하 후략'이라고 한다. 내가 오늘 쓴 글은 아마 뒷부분, 기존 비즈니스 모델을 최적화하고 성장을 이끌어내는 부분에 해당할 것이다. 좀 더 앞단의 이야기도 쓰고 싶다. 혹시나 나처럼 내 직무의 애매모호함에 깊은 고민이 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나의 경험담을 통해 조금이나마 인사이트를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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