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이상 막을 수 없는 변화의 소용돌이
런던에 온 지 2년 차, 이젠 핸드폰이 터지지 않는 런던의 지하철이 더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밥값과 교통비를 제외하고 모든 생활비를 티켓 사는 데 쓰고 있는 공연 덕후로서 연극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영국으로 유학을 올 수 있던 것은 축복이었다. 그렇게 신나게 극장을 다니다 보니 내가 보았던 공연들을 정리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런던에서 공연보기] 리뷰는 그런 대단치 않은 이유로 시작하였다. 이 리뷰에선 내가 지금까지 본 공연 중 너무 유명한 공연(맘마미아, 라이언킹처럼) 보다는 한국에 잘 소개되지 않는 연극/뮤지컬 공연을 위주로 소개하려 한다. 공연을 전문적으로 배운 적은 없고 전공은 미술이지만, 앵겔 지수의 커다란 파이를 공연 티켓에 쓰고 있으니 못할 게 뭐냐는 생각이 들었다. 티켓값을 생각하면 뭐 하나는 남겨놔야 할 것 같았달까.
첫 시작은 현재 Duke of York Theatre 에서 공연 중인 헨릭 입센의 <로즈메르스홀름>이다. 헨릭 입센은 <인형의 집>, <민중의 적>, <헤다 가블러>등의 작품으로 한국에서도 매우 유명한 극작가인데, <로즈메르스홀름>은 한국에서 그리 알려진 바가 없다. 한국어 번역본도 없는 것 같은 이 공연의 제목을 처음 봤을 때 발음이 대체 뭔지 읽을 수가 없었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는지, 후에 찾아본 주연배우 헤일리 에트웰의 글에서 그 누구도 이 극의 제목을 제대로 발음할 수 없는 것 같다는 말이 나왔다. 알파벳이란...) 영미권 국가에서도 <로즈메르스홀름>은 헨릭 입센의 다른 극본들에 비하면 많이 공연된 적 없는 대본이라고 한다.
어쩐지 처음 포스터를 봤을 때 익숙한 느낌이라고 생각했는데, 영화 <Shape of water>의 포스터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물에 잠긴 남녀, 여성은 남성을 바라보고 있고 남성은 여성을 보고 있지 않다. 비극적 사랑 이야기를 예견하게 만드는 이 포스터에 그다지 큰 관심이 가진 않았지만 헨릭 입센 작품이라는 것을 알고 예매를 결정했다. 물론 할인 티켓이 나온 것도 한몫했다.
<로즈메르스홀름>은 입센의 후기 작품으로서, 로즈메 가문의 소유인 로즈메르스홀름 저택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로즈메 가문은 존경받는 지역 유지 가문이며, 주인공인 존 로즈메는 전직 목사이자 로즈메르스홀름의 소유주이다. 연극은 존 로즈메의 아내, 비타가 죽은 지 1년 후를 기점으로 시작한다. 이 집에는 죽은 아내 비타의 친구이자 미혼 여성인 레베카 웨스트가 존과 함께 살고 있다. 죽음의 그림자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음울한 분위기 속에서 집에 유일한 활기는 변화를 추구하는 것은 레베카 웨스트이다.
뻔한 사랑 이야기인 것처럼 보이나, 입센의 작품이 그러하듯 사회와 개인의 갈등, 사회적 도덕과 개인의 의무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목사이자 마을의 존경받는 가문의 주인인 존 로즈메는 신에 대한 믿음을 잃은 상태로 방황하면서 혁명적 사상을 지지한다. 레베카 웨스트는 가장 정치적이면 안될 '여성'이지만 이 극에서 가장 정치적인 야망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다. 이 작품의 경우 현재 유명한 영국 극작가인 던컨 밀란이 각색한 것으로 이러한 레베카 웨스트의 모습을 더욱더 부각했다.
공연장에 들어서면 바로크 시대 그림처럼 연출되어있는 사실주의 무대를 볼 수 있다. 이 거대하지만 음울하고 불안정한, 그리고 낡아버린 저택의 모습은 그 자체로 무너질 유산처럼 보인다. 완전한 자유주의로 변화하려는 세상과 그것을 저지하려는 자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들이 이 극의 주인공들이니 무대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극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다 떠나서 무대 자체가 예쁘지 않은가? 특히나 조명의 역할이 두드러진다고 느꼈는데, 사실주의 조명으로 분위기를 연출함과 동시에 마치 하나의 그림 같은 느낌을 내는 것이 정말 좋았다. 런던에서 보는 많은 공연들이 공연 중간중간마다 놀라울 정도로 고전 명화 같은 연출을 해낼 때가 있는데, 여기엔 늘 저런 그림 같은 조명 디자인이 큰 역할을 한다.
극의 줄거리는 이렇다. 존 로즈메는 마을의 존경받는 가문의 가주이고 일선에서 물러난 목사이자 아내와 사별한 남자이다. 그는 아내의 친구인 자유주의자 레베카 웨스트를 사랑하게 되고 종교적 신념에 의문을 품으면서 방황하고 있다. 레베카는 존에게 그의 영향력을 이용해 자유주의 진영을 지지하는 글을 신문에 실기를 바란다. 그는 다가오는 선거에서 자유주의를 지지할 예정이라고 그의 처남이자 친구인 크롤에게 말한다. 보수적인 교장 크롤은 그의 계획을 방해하기 위해 레베카와 존의 관계를 부정한 관계라고 비난하는 듯한 글을 지역신문에 올린다. 이에 존은 레베카에게 청혼을 하지만 레베카는 거절한다.
크롤은 레베카가 존을 자신의 정치적 도구로서 이용할 뿐이라고 비난한다. 크롤은 레베카가 자신의 양아버지와 사랑하는 사이였음을 알아내고 실은 그 양아버지가 그녀의 친아버지라는 사실을 레베카에게 알린다. 그 사실을 몰랐던 그녀는 큰 충격을 받고 저택을 떠나려 한다. 그녀는 존에게 자신이 그를 정치적 도구로서 이용하기 위해 접근한 것이 사실이며 그의 아내 비타가 정신적으로 쇠약해질 때 자신은 그녀를 더 악화시켰다고 고백한다. 그녀는 처음 접근한 이유가 존의 영향력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지만 점차 그와 사랑에 빠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사실로 인해 그의 청혼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고 그녀는 울며 말한다. 그들은 더 이상 서로를 믿을 수도 그들 자신을 믿을 수도 없는 상태에 빠진다. 존은 그녀에게 이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비타가 자살했던 방법 그대로 저택의 도랑에 몸을 던져 자살하자고 말한다. 그들은 함께 저택을 빠져나가고 잠시 후 저택의 고용인들과 크롤이 그들의 자살을 알게 되며 극은 끝난다.
레베카 웨스트라는 캐릭터는 굉장히 독보적인데, <인형의 집>에서 보다 진보적이고 자신만의 신념을 가진 캐릭터이다. <인형의 집> 속 노라가 자각 없이 가부장제에 매몰되어있다가 깨달음을 얻고 집안을 뛰쳐나와 자신을 찾기 시작했다면, 레베카 웨스트는 노라의 딸 세대에 더 가까운 느낌이다.( <인형의 집>은 1879년 작이고 <로즈메르스홀름>은 1886년 작.) 그녀는 자라면서 변화하고 있던 정치적 상황에 큰 관심을 가지고 실제로 그것에 공헌하고자 하는 여성이다. 레베카는 이미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행동하는 캐릭터이기에 사회의 관습과 도덕에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는 반항적 위치에 있다. 이런 독보적 캐릭터는 후대에도 영향을 미쳤다. 일례로 20세기 영국의 유명한 여성 비평가이자 작가인 '레베카 웨스트'는 (본명 시실리 페어필드) 이 극 속 레베카 웨스트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영국 문학사에 중요한 인물인 그녀는 여성 참정권 운동과 사회운동에도 활발하게 참여했다.
극의 메인 플롯은 사랑인 것처럼 보이지만, 극이 흘러가는 동안 계속해서 중요한 주제로 올라오는 것은 정치와 변화 그리고 도덕 혹은 믿음이다. 각색을 한 작가는 의도적으로 레베카 웨스트를 더욱더 정치적 발언을 하는 페미니스트로 만든 것 같다. 레베카 웨스트는 극 중 가장 흔들림 없는 신념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해왔던 인물이었기에 그녀가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사라져 버렸을 때 느낀 공포, 불안, 절망이 그 누구보다도 클 수밖에 없었다. 그 대상이 특히나 그녀가 주체적인 인간이 되도록 지원해줬던 양아버지였기에 더더욱. 마블 영화와 드라마에서 에이전트 카터 역을 맡았던 헤일리 에트웰의 연기와 인상은 강한 신념을 가진 레베카 웨스트와 잘 어울렸다. 헤일리 에트웰은 가디언지에 자신이 레베카라는 페미니스트 캐릭터에 매료돼버렸다고 쓴 바 있다.
각색 작가인 던컨 맥밀란은 이 작품을 굉장히 현대적이고 정치적으로 만들어냈다. 특히나 자유주의와 보수주의에 대한 각 인물들의 대사와 입장을 현대 관객들이 공감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냈다. 이안 릭슨의 연출 역시 좋았다. 극 중 하녀와 고용인들이 지속적으로 대사 있는 존재들, 즉 귀족과 부르주아들의 대화와 모습을 지켜보거나 엿보는 모습을 의도적으로 보여준다. 스릴러적인 느낌을 더해주는 이들의 시선은 분열된 상류사회를 관찰하면서 틈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극의 결말은 원 대본과 다르게 각색되었다. 극본은 레베카와 존의 죽음을 목도한 관리인이 "죽은 여자가 그들을 데려가버렸어!"라고 공포에 질려 소리 지르는 것으로 끝난다. 그러나 본 공연에서는 관리인의 대사는 없고 그들을 찾으러 나가는 관리인 뒤로 크롤이 무대에 서있는다.
결말에서 크롤 혼자 서있던 집으로 물이 밀려들어오는데, 밀려드는 물의 이미지는 놀라우면서도 직관적이었다. 이는 레베카와 존의 자살을 확신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시각적 장치이기도 하지만 변화의 물결 자체를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로즈메르스홀름으로 상징되는 구세대의 유산이 잠식되고 이제는 막을 수 없는 자유주의 혁명이 그것을 막아보려 했던 크롤을 적신다. 존과 레베카는 죽었지만 변화는 더 이상 막을 수가 없다. <인형의 집> 속 노라가 집을 나가는 것으로 변화를 시작했다면 각색된 <로즈메르스홀름>은 변화의 물결을 집안으로 들어가도록 하며 이 변화를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음을 보여준다. 변화는 곳곳에 스며들어 모두를 숨죽이게 만들고 억압했던 로즈메르스홀름을 부식시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