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함을 견디는 차력쇼를 거부하며
얼마 전 친구들과 대화가 친구 지인 A의 이야기가 나왔다. A는 아는 사람으로부터 소개받은 일자리를 다니던 중 사장의 개인적 행사에 하루 동원되었고, 그는 일자리를 소개해준 사람에게 화를 내어 관계가 틀어졌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전혀 문제의식이 없이 듣고 있었는데, 그 정도 행사에 동원된 것은 내 기준에서 그럴 수도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나는 '그게 그렇게 큰일인가?'라고 생각을 했다. 우리는 학부생 때부터 교수님 오프닝과 설치를 도우러 다녔고 공연계의 지인들은 ‘선생님’의 공연에 무급으로 불려 갔으며, 공연을 제외하고도 사적인 일에도 자주 동원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게 부조리하다고 여기지 못했다. 교수님의 전시에 ‘알아서’ 찾아가서 눈도장을 찍어야 하는 것도 우리에게는 조금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이 듣던 친구는 불쾌해하며 화를 낸 A가 이해된다고 했다. 나는 그래도 그 정도는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냐 하였고, 친구는 내게 "너 꼰대 안되게 조심해야겠다"라고 말했다.
당황했지만, 찬찬히 생각해보니 그 말은 사실이었다... 이 예술판에서 나는 절대 불합리한 꼰대가 되어 후배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에 참지 말라고 말해줘야지!라고 결심한 게 무색하게 나는 부조리에 익숙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새삼 내가 몸을 담고 있는 업계가 불합리로 범벅이 되어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의 일상과 공적 업무시간이 구별되기 어려운 예술인의 삶은 이곳저곳에서 불합리가 작동하기 좋은 환경이다. 게다가 너무나 좁고 작은 판, 소위 선생님들의 눈밖에 날 때 각오해야 할 수많은 불이익 등은 부조리함을 체화시킨다.
가장 큰 불합리함은 예술가가 '예술= 노동'이라고 여기기 어려운 임금이다. 딜레마는 여기서 출발한다. 나는 내가 예술 노동자라고 여기지만, 예술 노동을 하고 나서 받는 돈을 보자. 이게 과연 노동에 대한 대가라고 여길 수 있는 수준인가? 그것도 적게는 3달 길게는 3년간의 시간을 들여 만들어낸 내 노동의 결과에 대한 대가가 고작 이 정도란 말인가? 알바를 해도 이것보다는 많이 번다. 그런 생각이 들면 참을 수가 없다. 나는 많은 예술인들이 예술의 노동성을 자발적으로 무시하는, 즉 “우리는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예술을 하는 거야!”라고 말하게 되는 경위- 모든 불합리의 시발점 같은 말이다- 가 여기 있다고 생각한다. 예술이라는 것을 신성한 무언가로 만들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는 것이다.
저임금과 함께 예술을 노동으로 여기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사회의 시선이다. 사회에서 예술은 철저하게 향유자 입장에서 규정된다. 이를테면 지금처럼 위기 상황에서 공연과 예술은 아주 손쉽게 취소된다. 그러한 결정을 내리는 이들 중 누구도 그곳이 일터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곳은 언제나 누군가에겐 일터였다. 저임금, 혹은 무급으로 일할 때조차 이곳은 일터였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쉽게 묵살당하고 너무 쉽게 처리된다. 얼마 전 마포구에서 인디밴드 공연 직전 취소를 시킨 사태에 대한 질의에 "칠순잔치 같은"이란 말을 볼 때 새삼스럽게 예술 창작자들이 노동자가 되지 못함을 느낀다. 그들은 직업 예술인을 노동자가 아닌 좋아서 하는 취미생활을 하는 사람 정도로 여기는 것 같다. 물론 가끔 나도 내가 일 년에 예술로 번 돈을 계산해 볼 때 그런 생각이 들긴 한다.
그러다 보면 부조리함은 오히려 견뎌야 하는 차력쇼가 된다. 우리는 “예술가”니까. 선생님들의 전시, 선생님들의 공연에 무급 노동을 하는 것은 열정으로 버텨야 할 일이 되며 의리로 당연히 해야 할 일이 된다. 면전에 대고 욕을 하고 기합을 주는 감독은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그런 것이라고 말한다. 예술이란 무릇 고통에서 자라는 법이라는 말을 믿는다. 술자리 몇 번 가지고 페이를 챙겨주지 않는 것은 인간적이며 배고픈 예술가에게 당연한 일이 된다. 그리고 그런 자리에서야말로 진정한 예술에 대한 이야기, 진정한 예술가로서 자아를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게라도 믿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예술 노동이라는 이 지난하고 어려운 노동이 결코 불합리에 젖어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질문하는 직업을 가진 이들이 스스로의 노동환경에 질문 없이 젖어있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예술도 노동이다. 이게 일이기 때문에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더 진정성 없는 작품을 만들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관행 없이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해서 작품이 안 나오지도 않는다. 배우를 학대하지 않아도 작품은 잘 나올 수 있다. 모욕감을 주지 않고도 작가는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일하는 사람이지 감내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어렸을 때는 내게 그런 말을 해줬던 사람들이 없었다. 마치 더 처절한 차력쇼를 해야만 '나를 더 파고들어야만' 작품이 잘 나오는 줄 알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내 주변의 예술인들과 이야기하는 것은 더 절박한 예술혼이 아니다. 우리는 늘 업무 팁을 교환한다. '9 to 5'으로 일 하기, 주말엔 쉬기, 아무리 잘되어도 다음날을 위해 퇴근해서 일하지 않기 같은 팁들. 그런 팁들을 보면 우리는 노동자로서 오래 일하는 환경을 만드는 데 골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창작자는 노동자이다. 이 쉬운 명제를 다들 쉽게 놓친다. 아마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라는 가치를 역행하는 직업을 선택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달려야 하는 사회에서 언제나 멈춰서 달리는 주자들에게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뛰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라고 묻는 아주 성가신 존재들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가도 예술이 아닌 삶을 살아야 하는 노동자이다. 그것을 자주 생각하며 오늘도 내 노동의 대가가 찍힌 통장을 들여다본다. 이직 준비가 필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