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my adult girl
미국에서 인턴을 할 때였다. 6개월 차쯤 되었을까, 슈퍼바이저를 제외하고 모두 인턴만 있던 우리 팀에 새로운 정직원인 Kailey가 들어왔다. 그것도 되-게 예쁜 고양이상 언니.
같은 팀이었지만 세부적으로 Kailey는 US, 난 CA팀이었기에 밥 먹을 때를 제외하곤 자주 마주할 일이 없었다. 하지만 워낙 밝고 사교성이 좋은 Kailey 덕분에 이런저런 얘기도 많이 하고, 가끔씩 점심시간에 트레이더조로 장 보러 가고, 둘이 산책도 자주 나가면서 부쩍 친해졌다. 7살이란 나이차이가 무색할 정도로 대화 코드도, 취향도 너무 잘 맞았고 난 서서히 그런 언니에게 스며들었다. 혼자 맥주를 마시다가도 맥주를 좋아하는 언니 생각에 카톡도 보내고(맥주 3분의 1캔 마시고 저녁 5시까지 잤다고 말하니까 경악하며 술 알려줘야겠다던 Kailey...), 언니가 살던 동네가 궁금해서 혼자 놀러 가보고, 한국에서 택배가 오면 한정판 간식도 나눠주고, 나름대로 나의 애정을 많이 표시하려고 노력했다.
어느 순간부터 언니는 내게 'baby girl'이라고 불렀고 난 언니를 'adult girl'이라고 부르며 우리의 우정은 한층 더 깊어졌다.
Kailey랑 둘만의 데이트는 미국에서 두 번이었다. 첫 번째는 풀러턴(Fullerton)이었다. 선물할 아르헨티나 와인(Kailey 남편이 아르헨티나인이라서, 나름 섬세하게 신경을 써봤달까... 말벡은 없어서 못 샀다.)을 한 병 사서 급하게 우버를 타고 애너하임(Anaheim)으로 갔던 기억이 난다. 그녀와 그녀 남편이 키우는 귀여운 강아지랑 인사도 하고 우린 정말 미국 스러운 펍에 가서 둘이 가장 좋아하는 기네스로 1차를 했다. 쉴 틈 없이 먹으면서 얘기하다가 2차로 분위기 좋은 와인바에 갔다. 화이트 와인과 치즈&샤퀴테리 보드를 시켰고, 야외에서 공연까지 즐겼다. 이대로 들어가기 아쉬웠던 우리는 마지막으로 칵테일바를 갔고 난 거기서 술에 훅 달아올랐다. 그리고 두 번째는 내 인턴 생활이 끝나기 직전이었다. 어바인(Irvine)에 위치한 아주 멋진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언니 앞에서 힘들었던 상황을 얘기하며 울었고 언니는 그런 나를 꼬옥 안아주며 토닥여주고, 대신 화도 내주었다. 우린 그렇게 와인을 2병을 깠고, 기분 좋게 취했던 우린 20살이라도 된 것처럼 꺄르르 웃고, 형부가 올 때까지 주차장에서 냅다 누워 뒹굴었다.
정말 신기했다. 스스로 술을 절제 못하는 게 싫어서 아주 천천히 취하기 전까지만 마시는데, Kailey랑 있으면 그게 안 됐다. 그냥 마음이 너무 편안하고 언니가 너무 좋으니까 기분 좋게 달아오른 기분을 유지하고 싶어 술을 계속 마시게 된다. 그렇게 사람이 너무 좋아서, 또 그날의 분위기와 모든 게 조화로워서 절제하지 못하고 마신건 Kailey와의 2번의 약속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Kailey한테 전해 듣기를, 형부도 놀랐다고 한다. 첫 번째 약속에서 취한 날 집까지 데려다줄 때, Kailey가 신나서 차 안에서 계속 노래 부르고, 웃고, 엄청 하이텐션이었다는데 이렇게 기분 좋아 보인게 오랜만이었다고 한다. (와중에 Kailey는 취해서 본인이 노래 부른 게 기억 안 난다고...) 은서랑 정말 편하게 잘 놀았구나 생각했다 했고. 두 번째... 둘 다 취해서 주차장에서 웃고 떠들다가 같이 주저앉고, 뒹굴 때도 마찬가지다. Kailey가 취해서 주차장 설명을 잘 못했는데 형부가 소음만 듣고 우리를 찾아왔었다. 멀리서부터 여자 2명이 주차장 바닥에서 뒹굴면서 놀고 있으니... 그거 보자마자 휴대폰부터 부여잡고 사진과 영상을 잔뜩 남겨놓은 형부... 여하튼 형부한테 첫인상과 마지막 인상을 정말 강렬하게 때린 나였다.
하여간 서로에게 이토록 편안하고 유대감이 깊은 관계였다. (Kailey도 그렇게 생각하길 바라며)
그리고 그날 우리는 약속했다. 아르헨티나든, 다른 유럽이든 그 어느 곳이라도 같이 꼭 여행 가기로, 꼭 다시 만나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