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보는 아름다움을 좇다가 그 시선의 끝에 나를 발견한다
아기는 눈을 꼭 감은 채 으앙 하고 울며 세상에 태어난다. 갓 태어난 아기는 세상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당연히 엄마 아빠도 눈이 아닌 목소리와 냄새, 손끝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아기를 낳고 병원에 있을 때도, 조리원에 있을 때도 아기는 눈을 잘 뜨지 않았다. 대부분 감고 있었고, 눈을 떠도 한 눈만 떴다. 눈곱이 자주 생기는 아기였고, 안약 연고를 처방받았다. 차츰 눈곱도 줄어들고, 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집에 데려와서는 모빌과 초점 책을 열심히 보여주었다. 생후 2개월쯤 되자 아기는 부모를 알아보는 듯했다. 분유를 먹이고 트림을 시키기 위해 아기를 안고 집안을 돌아다녔다. 아기의 눈이 오래 머무는 곳과 바라보면 방긋 웃음이 터지는 곳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기는 책장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매일매일 보여주는데도 지루하지 않은지 책장의 책등을 유심히 살펴본다. 나도 아기의 시선을 따라간다. 작은 그림, 형형색색의 색과 다양한 폰트로 꾸며진 책등을 오래 본다. 6개월이 된 아기는 책장에 손을 뻗는다. 거실 한 면을 자리한 책장은 정사각 칸이 여러 개로 나뉘어 있는데, 아기는 책장 한 칸 한 칸 유심히 만지는 것을 좋아한다. 아기는 칸마다 손을 뻗어 높낮이가 다른 책들의 책머리와 책등을 만진다. 가벼운 책들은 제법 꺼낼 수도 있다. 하루에 네 번 이상은 책장을 보는데 항상 진지하게 책들을 보고, 만지다가 까르르 웃는다. 아기의 눈엔 책들이 어떻게 보이는 걸까. 무엇으로 보이는 걸까.
책장만큼 좋아하는 게 생겼다. 바로 커튼. 아기방에는 암막 커튼과 홑 커튼이 나란히 걸려있는데 아기가 좋아하는 건 홑 커튼. 홑 커튼은 꽃무늬가 그려진 얇은 커튼으로 창문을 열어두면 커튼의 얇은 막을 통과한 은은한 빛이 출렁이고, 불어오는 바람에 사라락 움직인다. 아기는 커튼을 황홀하게 쳐다본다. 아름다움이 여기 있다는 눈빛으로. 그냥 있던 커튼인데 아기의 눈을 따라 나도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커튼에 빛과 바람이 그려놓는 연주를 눈으로 본다. 아기는 이내 손을 뻗어 잡으려 한다. 나는 손으로 살짝 스치듯 만지는 방법을 알려준다. 아기는 커튼을 손가락으로 스치다가 한 번씩 잡아본다. 꽉 움켜 집는 순간, 빛과 바람의 연주는 멈추고, 손에 잡힐 듯한 아름다움도 손아귀 밖으로 빠져나간다. 아기는 잠시 당혹스러워하다가 손을 펼친다. 그 순간 자신이 잡으려 한 아름다움을 눈으로 본다. 아기는 아마 차츰 알아갈 것이다. 어떤 아름다움은 소유하려는 순간, 사라지고 만다는 것을. 그저 춤추게 하고 그 안에 머무를 때야 아름다움이 내 안으로 흘러온다는 것을.
아기가 겨우 백일쯤 지났을 때, 나들이로 화목원에 갔다. 분유와 손수건, 유아차 등 갖가지 아기용품을 챙겼다. 제법 더운 날씨에 화목원 안 메타스퀘이어 숲으로 갔다. 날이 너무 더운 거 아닌가, 모기에 물리는 거 아닌가 걱정하는 와중에 아기는 유아차에 누워 연두와 초록의 나뭇잎이 흔들리는 광경을 마주했다. 아기는 눈을 크게 뜨고, 눈을 감지도 않고 오랫동안 나뭇잎들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았다. 아름다움을 목격한 사람의 눈빛이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나와 배우자는 아기가 홀리듯 보는 모습에 신기해했다. 나도 유아차 옆 벤치에 누워 나뭇잎이 흔들리는 광경을 바라봤다. 장관이었다. 아기의 시선을 따라갈 때 내가 놓친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6개월 아기는 이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열심히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먹고, 느끼면서 매일 조금씩 세상을 알아갈 것이다. 내가 보는 아기는 아직 불행보다 행복을 많이 경험하는 것 같다. 자주 웃고, 잘 자고, 잘 먹는다. 아파서 병원에 간 적도 없고, 두려워하는 일도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자라면서 행복한 감정뿐만 아니라 다양한 감정을 느낄 것이다. 실망, 두려움, 걱정, 불안, 분노, 슬픔, 무력감, 미움. 그게 삶이니까.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모습이니까.
나는 부모의 사랑을 받은 적이 없어 아기가 있는 삶을 상상하지 못했다. 또한, 세상의 요 모양 요 꼴을 보면 새로운 생명을 이 세상에 초대하는 게 맞는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배우자는 아기가 있는 삶을 꿈꿨다. 우리 부부는 자연 임신이 어려웠으므로 시험관을 해야 했는데, 그래서 더 신중했다. 아기를 우리의 세계에 초대하기로 마음먹으면서 그저 아기에게 우리가 가진 사랑을 듬뿍 주자고, 세상엔 어둠도 있지만, 빛도 있으므로 빛을 자주 보여주자고 이야기를 나눴다. 아기가 우리의 품에 있는 동안 우리의 삶으로 알려주기로 했다. 늘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세상은 이미 펼쳐져 있는 책이기도 하지만, 무엇을 볼지 결정하는 건 우리의 시선에 있음을. 삶의 어둠과 아픔을 모른 척하자는 의미가 아니라 우린 언제든 빛으로 기울 수 있고, 유머와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고.
아기가 자라면서 느낄 수많은 부정적인 감정과 앞으로 겪게 될 사건 사고를 떠올리면 몸서리쳐진다. 세상은 아름답지만은 않다고, 때로는 위험하기도 하다고 언젠가 아기와 이야기를 나눌 날을 상상하면 마음이 아프다. 그렇다고 나의 걱정과 염려를 아이에게 전가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결국은 사랑. 아기가 이 녹록지 않은 세상을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힘껏 사랑할 수밖에. 사랑의 힘을 믿을 수밖에. 아기가 사랑받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타인과 세상 또한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고, 사랑하기에 지키고 싶은 걸 지키게 되기를. 사랑하기에 삶의 소중함을 깨닫고, 찬란함을 만끽하고, 도움이 필요할 때는 기꺼이 도움을 청하고, 때로는 먼저 손을 건넬 수도 있기를. 삶의 풍파 속에서 순간순간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머물 수 있기를. 아기가 앞으로 만날 수많은 아름다움과 사랑도 상상해 본다. 뭉클해진다. 운이 좋다면 나도 아기의 시선을 따라 아름다움을 목격하고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순간순간이 우리의 마음에 작은 조명으로 빛나겠지.
아기가 나를 본다.
아기를 향해 웃는 나를 보고 아기가 까르르 웃는다.
아기가 보는 아름다움을 좇다가 그 시선의 끝에 나를 발견한다.
아기를 키우는 일의 고단함이 몸과 마음에 박혀있지만 지금, 이 순간 나와 아기 사이엔 웃음이 있다.
행복과 삶의 기쁨이, 찬란한 아름다움이 있다.
240718